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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Jul 29. 2022

카리브해에서, 고래상어와 수영하기

현재까지 발견된 어류 중에서 가장 크고, 이 넓은 바다에 칠천 마리도 살지 않는 매우 희귀한 동물. 나름 상어임에도 불구하고 목구멍은 직경 3cm밖에 되지 않으며, 한 시간에 최대 5킬로도 가지 못하는 느릿하고 온순한 생명체.      


오늘은 카리브해 한가운데에서 고래상어와 수영을 했다.     


수족관이 아닌 바닷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고래상어를 만나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다. 딱 6월에서 9월, 사람들은 수온이 가장 높고 따뜻한 바다에서 고래상어의 주식인 크릴새우의 이동을 쫓아 한 시간 넘게 배를 몬다. 잡아 놓고 보는 것이 아니기에 상어가 헤엄쳐 오는 쪽을 예상해 물속에 뛰어드는데, 혹시라도 상어가 놀랄까 봐 보트의 엔진까지 멈춘다. 이렇게 공을 들여도 얼굴 한 번 보이지 않고 바닷속 이천 미터로 잠수해버리곤 하지만, 그건 상어 마음이다.     


다른 국가의 고래상어 투어와 다르게 멕시코의 자연보호 정책은 굉장히 엄격하다. 수질 보존을 위해 유카탄 반도의 타버릴 것 같은 햇볕 속에서도 선크림 한 번 제대로 바르지 못하고, 만지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며 먹이를 따로 주지 않고 멀리서 다이빙해 접근하는 방식을 택한다.   

   


통통배보다 작은 흰색 보트를 타고 가다 물 위로 검은색 지느러미가 삐죽 보이면, 그 한참 앞에서 딱 두 명만 셋을 세고 다이빙을 한다. 보트가 내뿜는 세찬 물방울들을 헤치고 가이드의 팔을 잡은 다음, 숨을 참고 스노클링 고글로 바닷속을 보면 물 밑의 거대한 세상이 얼굴을 드러낸다. 처음엔 온통 뿌옇다가, 가이드가 외치는 소리에 따라 고개를 돌리면 저 멀리서 놀랄 정도로 커다란 고래상어가 배 밑으로 천천히 헤엄쳐 온다.  

    

터질 듯한 심장을 잡고 그대로 숨을 참아 상어를 살펴보았다. 코앞으론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흰색 점이 박힌 피부 위에는 작은 빨판상어들이 올라타 있다. 정면에서 보면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은 기다란 입. 나는 구명조끼를 입고 수면에 둥둥 떠 있었기에 상어에게는 큰 방해 요소가 아니었다. 홀린 듯 오리발을 천천히 저어 상어 위를 헤엄치며 따라갔는데, 내 아래로 지나가는 상어의 거대한 지느러미가 너무 가까워 내 배를 거의 스칠 정도였다.    

 


나는 단 한 번도 나를 압도할 정도로 거대한 바다 생물을 본 적이 없다. 내 상상을 채운 유튜브 속의 고래와 상어들은 한 뼘도 되지 않는 스크린의 크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멕시코 칸쿤의 바다에서 본 고래상어는, 내 머릿속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정도로, 너무 벅차 눈물이 고일 정도로.... 정말 거대하고, 또 아름다웠다.      


상어를 보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자꾸만 코로 숨을 쉬었는데, 이 때문에 고글과 입으로 짠물이 가득 들어와 두세 번 얼굴을 밖으로 내밀고 숨을 쉬어야 했다. 고래상어와 만나는 이 중요한 순간에! 결국 나중엔 물이 들어오든 말든 바다에 일단 얼굴을 처박고 상어를 보았다. 짜디짠 숨을 얼굴이 터지기 직전까지 참으며, 뿌연 물속으로 희미하게 상어가 멀어질 때까지. 우연히라면 절대 만나지 못할 바닷속 고래상어와 육지의 나, 이 둘이 단 몇 센티의 차이를 두고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경이로웠는지 모른다.   


   

바닷속에서 인간은 완벽한 약자가 된다. 플라스틱 숨구멍 없이는 3분도 버티지 못할, 손톱만 한 새끼 물고기보다도 죽음 앞에 더 가까이 놓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연약한 인간이 바다에 대한 몇 분의 호기심과 무거운 산소통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줄다리기하는 사이, 고래상어는 해수면과 심해 사이를 제약 하나 없이 자유롭게 오간다.      


바닷속에서 나는 인간이 고래상어보다도 뭐 하나 나을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속 친구들에게 아기 고래상어와 나를 두고 대장을 뽑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고래상어가 압승을 거두지 않을까? 고래상어와 헤엄쳤던 몇 분, 나는 무력함과 겸허함을 동시에 배웠다.     

 

우리는 우주를 동경하지만, 사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하나의 우주는 바다에 있다. 그 우주 속을 자유롭게 누비며 자신의 질서로 살아가는 생명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온 지구가 집이었던 그들을 유리 벽에 가두고 바라보며 즐거워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을 반성한다.


수족관 속 얕은 신기함보다도 깊은 바다의 신비함을 동경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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