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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꼬 Feb 21. 2023

내가 찾던 핑계. 너였구나, 농촌 유학

게으른 욕심쟁이, 농촌 유학 결심하다

저는 게으른 욕심쟁이입니다. 사는 동안 많은 욕심을 기웃거리며 그 욕심들을 채워보려 고군분투하는 삶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채워진 욕심도 있고, 채워지다가 만 욕심도 있고, 채우려다 실패하거나 포기한 욕심도 있습니다. 물론 채워진 욕심은 한 손으로 세어도 손가락이 남지만, 채우지 못하거나 포기한 욕심은 남의 발가락까지 가져와 세어도 모자라죠.


여하튼 이런 제가 꽉 채운 18년의 직장인의 삶을 그만두고 전라남도 구례로 내려가기로 했니다. 그것도 터울 진 두 아이를 데리고 말이죠. 30대 들어와서도 한참이 지나 철이 들기 시작해 이제 좀 직장에서 또라이 보존의 법칙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인정받나 보다 했더니 다른 욕심이 생겨버렸네요.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던 일, 시작조차 못했던 일을 하러 두 아이와 함께 농촌으로 유학 갑니다.


 

저는 영어 교육 프로그램 기획, 개발자로 18년간 일했고, 마지막은 제법 인원이 되는 팀의 팀장으로 일하다 퇴사를 했습니다. 절 모르는 사람들은 그러지요. 애들 영어 교육 걱정은 없겠다고. 하지만 누구보다 걱정입니다. 엄마가 영어로 밥 벌어먹고 사는데, 애가 영어 못한다고 하면... 내가 만드는 프로그램의 신뢰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고요. 줏대 있이 엄마표 영어를 지향하는 겉모습 속에는 벌벌 떨고 있는 자아가 숨어 있는 건 저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습니다. 이제 드러내 보려고요. 줏대 없이 갈대였던 속마음을요. 구례에서 강제적 미니멀 라이프와 사교육 단절을 통해 갈대 같은 엄마표 영어가 어떻게 살아남게 될지, 아님 아예 꺾여 버릴지, 부끄럽지만 까발려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엄마의 유전자를 받은 아이와 함께 하기에 '엄마표 영어로 서울대 가기'... 혹시 이런 거 생각하시면 안돼요. 그런 기대라면 부응하지 못하겠노라 지금 이실직고 말하겠습니다.  


살 집을 둘러 보던 날

이제 40대 중반이 되어 갑니다. 그런데 공자님이 말씀하신 불혹은 언제 오는 걸까요? 저는 저를 사랑합니다. 게으르고 욕심 많고 예민하고 가끔 못되기도 한 저를 측은하게 생각하고 아껴주고 싶습니다. 근데 아직 그 방법을 잘 모르겠어요. 미혹되지 않고 판단하여 아직 찾지 못한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예뻐해 주고 싶은데 말이죠. 찾을 시간이 없었서 그럴까요? 아니면 온전히 나로 살아 본 적이 없어서 그럴까요?


태어나기를 간장 종지 크기로 태어나 무수히 깨지고 깨져 왔습니다. 그 깨진 조각에 제가 다치기도 했고, 남을 다치게도 했죠. (가끔 샤워하다 소리 지르게 되는 사건의 중심에 저와 함께 계셨던 분들...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이제 깨진 조각이 얼기설기 맞춰져 밥그릇 정도는 된 것 같아요. 근데 더 커지고 싶어요. 역시 욕심쟁이 답지 않나요. 시골에서의 삶에서 나로 살아보는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좀 더 여유 있게 스스로를 예뻐해 주고, 그 마음으로 두 아이 바라보고, 타인도 바라보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뭔가 삶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떡 하니 나타나 에게 회사를 그만 둘 이유가 되어 준 농촌 유학. 다녀와서의 삶이 지금의 삶과 다름이 없다 하여도 나와 아이들의 마음에는 무언가 하나쯤 자리 잡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물론 게으르기 때문에 느리기도 느리고, 효율적이지도 못하겠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기억들이 쌓여가는 날들을 기대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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