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이 여리고 불안감이 많다. 할 일이 늘어나면 부담감에 온 정신이 불안에 떨고, 남 눈치를 보며 스스로를 자책하며 매일을 마무리한다. 마음이 너무 힘들 때, 나는 낙산사에 간다. 이유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그 곳에 가는게 좋다.
낙산사에 오르면 한 구석에 가 조용히 절을한다. 너무 힘든 날엔 그저 조용히 앉아 눈을 감는다. 그러면 하나 둘 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 간절히 온 마음으로 기도하는 소리, 절을 하며 무릎이 닿아 쿵쿵 울리는 소리,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희미한 소리. 그 소리를 따라 나도 조용히 내 소원을 흘려보냈다. 주로 앞두고 있던 시험 합격이나 인턴 합격 따위의 일들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나와 함께 절에 가고 싶다고 했다. 엄마의 손을 잡고 평소보다 천천히 걸음을 맞추며 산을 올랐다. 절에 다다르자 엄마가 조용히 색색거리며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업고 다니던 엄마가 어느새 산 하나 채 넘기 힘든 예순살이 되었다는 신호였다.
평소라면 조용히 절을 하고 돌아왔을 텐데, 그 날 엄마는 기념품점에 가고 싶다며 나를 잡아끌었다. 그 곳에서 엄마는 내게 손목보다 족히 한 뼘은 넉넉한 묵주 팔찌를 건넸다. 금방이라도 쓸려날 듯 커다랬지만 엄마는 꼭 내 것이라고 했다. 팔찌는 꼭 목성같은 짙은 갈색이었다.
그 뒤로 낙산사에 가지 못 할 만큼 일상이 바빠졌다. 절에 가지 못할 때 마다 나는 묵주팔찌를 톨리기 시작했다. 한 알에 내 시험 합격을, 한 알에 내 행복을. 또 한 알에 내 무운을 빌었다. 손톱 끝으로 둥그런 묵주가 돌아갈 때 마다 날카로운 내 불안의 모서리도 함께 닳아져가는 듯 했다.
하루는 엄마가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머뭇거리던 엄마는 자신이 수술을 해야할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그 말에 내가 뭐라 답했는지 아직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저 언제고 보드라웠던 것 만 같았던 엄마의 손은 어느새 세월의 흔적만이 울퉁불퉁히 자리잡고 있어 꼭 숨이 차 오르기 힘들었던 산이 솟아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내 안의 목성이 생겨났다.
그렇게 나는 다시 묵주를 돌렸다.
나는 묵주 한 알에 엄마의 건강을, 한 알에 엄마의 행복을. 또 한 알에 엄마의 무운을 빌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지만 영원한 게 있었으면 했다.
가끔 엄마의 시간을 멈추고, 그 사이로 내가 뛰어가고 싶어질 때가 있다. 춥다며 자꾸만 몸을 웅크릴 때, 온 몸이 붓는다며 부은 손으로 내 손을 잡아올 때. 그러나 세상을 영화가 아니며, 내겐 그런 능력 따위는 없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알량하게 묵주를 돌린다. 그러면서 이름 모를 수많은 신에게 가장 무겁도록 염원하는 것들을 간절히 빌어본다.
우리 엄마 안 아프게 해주세요, 우리 엄마 행복하게 해주세요- 따위의 것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