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아이
어제, 오늘 마음이 아리고 슬픈날.
화성에서는 아리셀 전지공장 화재로 20여 노동자들이 돌아가시고, 한 시절 동고동락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 했던 ‘영원한 청년’ 정종준이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54세, 사랑하는 세 딸과 아내를 두고 하늘로 훨훨 날아갔다. 화성 화재는 외국분들이 대부분인데.... 어떡하냐. 이거...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김재영군으로부터 부고 받고 주섬주섬 옛 기억을 지금으로 가져왔습니다. 그와 함께했던 사회적(강제된) 가난으로 인한 질곡과 희망의 시대를 기꺼워합니다. 종준이가 있어서 즐겁고 유쾌했고 힘을 얻곤 했습니다.
시흥2동, 새봄교회
지금 금천구 시흥2동은 벽산아파트단지이지만 1990년대까지는 전형적인 달동네였다. 동네 맨꼭대기 허름한 건물에 새봄교회가 자리 잡았고, 많은 청년·학생들이 빈민운동차원에서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던 공간입니다. 예배, 새봄 유아원, 새봄 주말진료소(서울대 의·치대학생)를 기본사업으로 청년회 장년회등 마을 조직으로 움직였습니다. 해마다 주민잔치는 온 동네의 에너지발전소였습니다. 나는 강제징집·녹화공작 피해자로 자취방 긴급체포상태에서 영장 없이 군대 끌려가 철원 3사단(백골부대)에서 군대 생활 했습니다. 1985년 8월 15일, 제대하자마자 8월 말에 시흥2동에 자취방을 하나 얻어 시흥동 생활을 시작합니다. 한 해 선배 78학번 권춘택 신부가 먼저 활동하고 있을 때.....
그때 마을 청년으로 만난 친구 종준이와 재영이... 그들도 벌써 50대 중반...
‘허허허허’ 웃음이 약간은 나이 먹어 보였던 종준. 남김없이 유쾌했던 친구. 문제해결을 위해 골몰하고 막걸리 마시는 모습이 일품이던 ‘영원한 청년’ 종준이가 그리워 사무치는군요. 작년 초 내 장편다큐 <1975.김상진> 서울시사회장에 찾아온 그 너털웃음.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되고 말았군요. 머리가 희끄무레 50대 중반인데 여전히 청년으로 보이던. 그러던 그가 작년 여름 갑자기 쓰러져 뇌사판정을 받고 투병하다 어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사진으로나마 그와 함께했던 길을 걸어갑니다. 오늘 광명 중앙대병원장례식장에서 이별을 합니다. 하지만 내 삶결이 이어지는 날까지 그의 곁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야지 마음먹습니다. 잘가시게! 정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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