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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L Apr 11. 2022

봄날의 곰

3일의 낭만에 대하여

누가 버렸을까요? 아직 뽀송뽀송하고 노르스름한 털,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 통통한 팔과 다리, 내쳐진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소를 띤 앙증맞은 주둥이, 녀석은 곰 인형이었습니다. 분리수거함이 따로 없어 재활용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길 건너 빌라, 그 현관 앞에 박스와 함께 나동그라져 있었죠.

  

곰 인형의 몸집은 앉은 키로만 따진다면 나와 비슷해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서러운 일이 생겼을 때 꼭 끌어안고 울거나, 문득 외로운 날, 나란히 의자에 앉아 수다를 떨면 딱 좋을 크기였죠. 어린 시절 나는 이런 곰 인형을 선물 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나중에’, ‘조금 더 지나서’, ‘큰 집으로 이사 가면’, ‘성적이 올라야지’ ‘등수는 그대로잖아’라는 다양한 핑계를 만드시며 끝내 사주지 않았고 그대로 세월이 흘러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곰 인형을 사줘야 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제법 쓸만해 보이는 물건이라고 해도 버린다고 내놓으면 ‘쓰레기’ 일 뿐이지만, 녀석에게는 왠지 마음이 쓰였습니다. 눈, 코, 입이 달렸고 표정이 있으니 단순한 천 조각으로 치부해 버릴 수는 없었거든요. 심지어 귀엽기까지 하니, 어떤 존재든 눈에 띄고 볼 일입니다.             


아직 멀쩡한 곰 인형인데 저대로 버려지긴 아쉽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주워갈 수는 없는 노릇, 출근을 위해 마을버스를 타러 가는 동안 힐끔힐끔 돌아보며 녀석의 모습을 마음에 담았습니다. 청소차가 수거해 간다면 오늘이 녀석의 마지막 날일 테니까요.           


그날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기억이 흐릿합니다. 다만 출근한 뒤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집을 나오면서 무엇을 봤는지, 그래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렸죠. 집으로 돌아올 무렵,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느적거렸습니다. 이미 만석인 마을버스에 올랐을 때는 스마트폰을 쥘 힘도 없었죠. 유독 힘들었던 퇴근길, 집 앞에서 녀석을 다시 만났습니다.    




우리 동네는 등산로 초입에 있습니다. 그래서 등산객들을 위한 조그마한 쉼터가 있죠. 작은 관목들로 둘러싸인 공간은 열 평 남짓, 바닥은 모래가 채워져 있어 가끔 길고양이들이 뒹굴뒹굴하며 모래찜질을 하고 갑니다. 쉼터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인지 아이들이 앉아서 놀 수 있는 모형비행기와 기차, 또 등산객의 갈증을 달래라고 아리수가 퐁퐁 솟아오르는 식수대도 설치되어 있죠.      


그 쉼터에서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바로 나무로 만든 그네 벤치입니다. 유명 유원지의 포토존에 설치되어 있을 법한 그네 벤치는 두 사람이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기도 좋고 혼자 앉으면 느긋하게 책을 읽기에도 그만입니다. 심지어 산동네다 보니 벤치의 전망도 나쁘지 않죠.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 사이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잠시 호젓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곰은 그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누군가 상자 더미에서 녀석을 구조해 그곳에 옮겨 놓았던 거죠.      



쉼터는 동네의 낭만을 책임지는 공간이었지만 등산객이 없는 평일에는 썰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런 곳에 귀여운 곰 한 마리가 나타났고 벤치 위에 앉아, 미소를 짓고 있으니 동네 분위기가 사뭇 달라 보였어요. 잠시 동화책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만끽했지만 계속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가방에 팽개쳐둔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SNS로 전송! 들뜨고 흥분된 기분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댓글도 달았죠.         


‘집 앞에 버려져 있던 곰돌이,

누가 공원 그네에 올려놨다.

아주 잘 어울리네,

역시 인생은 귀엽고 볼 일이야.’      


누가 곰돌이를 데려온 걸까요? 누가 이런 낭만적인 행동을 했을까요? 역시 녀석의 귀여움은 치명적이었나 봅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자꾸 돌아보게 만든 것으로 부족해 기어코 불러 세워 자신을 구조하게 만들었으니까요. 덕분에 내 눈앞에는 동화 같은 풍경이 펼쳐졌고 그 아늑한 분위기에 취해 잠시 피곤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여전히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여유를 즐기는 녀석에게 나는 ‘굿모닝’을 외치며 마을버스로 걸어갔습니다. 그날 하루의 기억은 또렷합니다. 몇몇 친구들이 어제 SNS에 올린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고 알람을 확인하느라 곰돌이 사진을 몇 번이나 더 바라보았는데요, 그러다 보니 왠지 마음이 느긋해졌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가볍게 산책하는 여유도 생기더군요. 그날도 처리해야 할 일들은 많았지만, '오늘 다 못하면 내일 하면 되는 거고, 원고 마감만 늦지 않는다면 좀 빈둥거린들 어떠하랴?' 싶었습니다. 그러다 곰돌이 생각이 났어요. 


‘그 녀석 아직도 거기 있을까?’    


퇴근길 마을버스는 역시나 만석이었습니다. 늘 지치고 힘 빠지는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집 앞에서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들뜨더군요. 마을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쉼터를 향해 걸음을 내달렸습니다. 이쯤 되면, 녀석의 동그란 뒤통수가 보여야 하는데, 없더군요. 벤치는 텅 비어 있었어요. '아...' 작은 탄성이 나오더군요. 아침까지만 해도 쉼터를 둘러싸고 있던 낭만적인 기운마저 모두 사라진 기분이었죠. 언젠가 이별이 올 줄 알았지만 이렇게 빠를 줄이야.     

   

허탈한 마음을 누르며 집으로 올라가려는데 건너편 빌라앞, 수북이 쌓인 상자들 틈에 동그란 머리가 보였습니다. 그 녀석이었어요. 누군가 다시 버리려고 옮겨 뒀나 봅니다. 녀석이 아무리 귀여운 표정을 지어도, 그래서 쉼터의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해도, 버려진 곰 인형은 처리해야 할 쓰레기일 테니까요. 아쉬운 마음에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이별을 고할 시간이었으니까요. 녀석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해 두고 싶었습니다. 어제 '좋아요'를 눌렀던 친구들을 위해 SNS로도 소식을 전했죠.      


‘다시 쓰레기장으로 향하는 곰돌이

안타깝게도

세상엔 귀여움만으로 안 되는 게 있다.

곰돌이의 3일!

내가 기억하고 기록해줄게’     


순식간에 댓글 하나가 달렸습니다. 확인해봤더니 ‘네가 다시 벤치에 갖다 놔.’라고 쓰여 있었는데요. '정말 그럴까?' 잠시 갈등했습니다. 내가 다시 곰 인형을 벤치 위에 둔다면 하루 치의 낭만은 확보하겠지만 쉼터를 관리하는 누군가에겐 성가신 일이 되겠죠. 나만 좋다고 그럴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다음 날 아침, 곰 인형은 놀랍게도 다시 벤치로 옮겨져 있었고 저녁에는 영영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이 버려진 곰 인형을 구조하려 했지만 끝내 실패한 이야기를 담은 단편 소설일까요, 아니면 버려진 곰 인형이 벌떡 일어나 모험을 떠나는 판타지의 서막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너무도 생생해 잊을 수 없는 한낮의 꿈이었을까요?



사진첩에 녀석의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분명 꿈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지더군요. 버려진 곰 인형을 일으켜, 벤치에 앉혀놓는 다정한 손길을 가진 사람, 일상의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사람, 그래서 곰 인형이 앉아 있는 동네, 그 아늑한 풍경을 다만 반나절이라도 더 보고 싶은 사람. 물론 그 사람의 행동이 어떤 이에게는 무용하거나 성가신 행위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 사람이 붙잡아 준 낭만 덕분에 조금은 특별한 3일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곰 인형이 앉아 있던 벤치를 찾았습니다. 많은 질문이 떠오르더군요. 


'며칠 동안 곰 인형은 누구를 만났을까? 낮에 쉼터에는 어떤 사람들이 머물다 갈까? 꽃이 흐드러지게 핀 4월의 바람은 어떤 향기를 품고 있을까? 지나가던 길고양이는 곰 인형과 마주하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런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이제는 쉼터가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떠난 녀석이 무언가를 남겨둔 기분이었거든요. 그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쓰레기는 빨리 처리할수록 좋고 낭만은 붙잡아 둘수록 좋다는 깨달음? 아니 대답 대신 이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녀석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이 한 장의 사진을 말이죠.     

                                                  (2019년 어느 봄날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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