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드러낸다는 것은 너의 미움을 사는 일
“이런 얘기 네가 불편할 수도 있는데. 난 노처녀 히스테리 그런 거 안 믿거든? 근데 요즘 너 보면 그런 게 있긴 있나 보다 싶어. 왜 그렇게 예민해졌어?”
결혼한 지 일 년 남짓 된 언니가 나에게 넌지시 말했다.
가족들이 모이는 일이라면 두 발 벗고 나서서 모임을 선도하던 내가 걸핏하면 시간 안 된다고 빠지고, 가족들이 다 같이 보자는 영화를 ‘난 싫으니 다른 영화를 보겠다’고 하고, 음식을 결정할 때도 호불호를 드러내며 일명 ‘까다로워’ 졌다는 것이다. 만나면 하하호호 웃음이 많은, 누가 보나 사이가 돈독한 우리 가족은 모임이 잦았다. 그리고 그런 가족모임을 탐탁지 않아하던 건 주로 언니였다. 친척들이 집에 와 온 가족이 거실에 모일라치면 방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기가 일쑤였고, 그런 언니의 성향을 알기에 언니가 원치 않는 형태의 모임—친가족을 제한 외부 사람이 온다거나 하는 등의—이 있을 때는 방에 있는 언니를 없는 사람인 양 대하기도 했다. 그런 언니와 달리 사람을 좋아했던 나는 친척이든 손님이든 집에 누가 오면 달려 나가 엄마 옆에서 심부름을 하며 이쁨 받기를 즐기는 아이였다. 그런 어린 시절을 거쳐 20대가 되어서는 가족의 대소사에 나서서 모임을 꾸리며 가족을 하나로 모이게 하는 중심에 있던 내가, 변한 것이다. 가족들에게 ‘이런’ 나의 변화는 적잖이 당황스러운 것이었으리라.
-예민해진 게 아니야, 언니.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이제 알아가는 중이야.
서른이 넘어, 오랜 시간 ‘운명’이라 여기며 결혼을 생각했던 연인과 헤어지면서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 반면 결혼이라고는 생각도 없을 것 같던 언니가 결혼을 결심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언니를 보면서 나는 내가 참으로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많은 결정을 해야 하는 준비 과정에서 언니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에 비해 난..?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몰랐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나에게.
나의 시선이 늘 가족이나 연인과 같이 내게 ‘소중한 타인’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 상태를 알아차리는 데 능했으므로—어린 시절부터 누가 준 적 없는 눈칫밥을 스스로 알아서 챙겨 먹은 덕분에— 꾸준히 다른 사람에게 나를 조율하는 훈련이 되어있었다. 상대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게 느꼈다.
심리학을 통해 마음의 이치를 배워가는 과정에서 그것은 내가 상대의 기쁨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됨으로써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기쁨’이라 느낀 것은 어딘가에 ‘쓸모 있는 존재’가 됨으로써 오는 안도감이었던 것이다. 내 안에서 솟아나는 나의 감정들과 마주하기에 나는 한없이 약했으므로.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것을 느끼는 나라는 존재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으므로 ‘네가 그렇게 느끼는 것은 그럴 만하다’는 다른 사람의 인정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것은 감정을 넘어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인정으로 이어졌다. '너는 충분히 가치로운 사람이다/너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타인의 인정이 필요했다. 그게 없이는 나의 존재도 느껴지지 않았다.
감정형인 나는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상황에서 일어나는 자극들을 금세 알아차리고 내 안에서 이는 감정을 느끼는 데에 탁월한 아이였다. 내가 느끼기에 엄마는 나와 같은 감정형이지만 삶에서 맞닥뜨린 여러 가지 어려움을 이겨내느라 자신의 감정을 돌볼 여력이 없던 이였다. 그런 엄마에게 자신의 감정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아이는 버거운 존재였을 것이다. 자신도 돌보지 못해 눌러놓은 감정을 건드리는 아이에게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너도 눌러!’라고 명하는 것이다. 손님 앞에서 나의 기분대로 행동하다가 엄마의 면面을 구기는 일이 곧잘 있었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나에게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명했다. 그것은 엄마를 부끄럽게 하는 나를 사람들에게서 떨어뜨려 놓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빨리 제거하고픈 엄마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행위였지만 나에게는 ‘혼자 남겨지는 벌’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마음 안에는 이런 공식이 자리 잡았다.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은 잘못된 거야. 그랬다가는 혼자가 돼. 내 마음대로 하지 말고 엄마의 마음/기분을 잘 살피자. 엄마의 기분이 괜찮으면 나는 사람들이랑 어울려 놀 수 있어.] 엄마의 이맛살이 찌푸려지면 경고등이 울렸다. ‘조심해야 해. 혼자 남는 건 무서워.’ 혼자 방에 남겨지면 끊임없이 나의 행동을 되돌아보았다. ‘뭘 잘못했지? 내 기분에 사로잡혀서 또 뭘 놓쳤지?’ 나의 언행을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곱씹었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른 사람의 기분과 감정을 잘 읽고 그들이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도록 그들의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에 능해지다 보니 어느새 이맛살이 찌푸려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일뿐 아니라 그들의 입가에 웃음을 짓게 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그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대가로 나는 이쁨을 받았다-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지만 사랑은 아니었다, 그저 이쁨이었다. ‘착한 아이,’ ‘괜찮은 아이’라는 인정이었다. 그것은 썩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그것은 꽤 괜찮은 거래였다.
하지만 이 거래가 이루어지는 동안 참담한 일이 ‘이쁨을 받는 나’의 이면에서 버려지고 무시당한 ‘ 또 다른 나’에게 일어나고 있던 것을 그때 나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