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던 남편이 무너졌다.
남편은 연애 시절부터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결혼할 때도 모은 돈은 없었지만, 영화관 500좌석을 통째로 빌려 프러포즈를 준비했다.
명품 가방은 살면서 사줄 수 있지만,
이 순간은 평생에 단 한 번 뿐이야.”
남편은 영화감독에게 주례를 맡긴다며 나를 영화관 안으로 이끌었고,
스크린에는 어느새 내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못 하는 노래를 불렀다.
감동받아 울어야하는데 음정박자 다 틀리는 남편 때문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순간, 나는 행복했다.
남편은 나를 평생 기억에 남게 해 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이 무너졌다.
그가 하던 채권운용 일이 급격히 어려워졌다.
금리는 빠르게 오르고, 시장 흐름은 뒤바뀌었고,
성과는 떨어졌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정신과 좀 알아봐야겠어....”
또 며칠 후에는 남편이 조심스레 물었다.
여보… 나 사망보험 얼마 들어있지? 그걸로… 애들이랑 살 수 있어?”
그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무서웠다. 너무 무서웠다.
그 말속에 담긴 절망과 두려움이 그대로 밀려왔다.
그 무렵 뉴스에는 연달아 비극적인 기사들이 올라왔다.
한 번은 밤늦도록 들어오지 않아
실종신고까지 한 적도 있다.
그날, 나는 공포와 함께 울었다.
이 사람이 지금 내 곁에 있다는 사실조차 기적으로 느껴졌다.
집에 돌아왔을 때.
그날, 나는 남편에게 조용히 말했다.
오빠, 이제 그 무거운 짐…
이젠 내려놔도돼.
그 짐 내가 들게.
내가 더 일하면 되니까."
잠시 멈칫하며, 나는 덧붙였다
"그럴려고 자격증도 땄나 봐"
그리고 가장 하고 싶던 말을 꺼냈다.
오빠는 존재만으로도 고마운사람이야.
그러니까, 이제… 좀 쉬어.
그동안 고생 많았어."
말하면서 나도 울고 있었고,
그 순간,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꼭 잡았다.
아마, 그 손에 모든 감정이 다 담겨 있었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켰다.
며칠 뒤,
남편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김치를 담갔다.
그 물김치를 먹으면서 나는 조용히 울었다.
말없이, 오래도록.
내가 사랑한 사람은
화려한 사람이 아니라,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조금씩 흘렀다.
남편은 다시 웃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몇 달 뒤,
회사에서는 남편의 부서를 바꿔주었고,
의미 있는 승진 소식도 전해졌다.
그날, 남편은 나보다 먼저 아이들을 안아주었다.
우리의 계절은 그렇게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가끔 우리끼리 우스갯소리처럼 말하곤 한다.
경찰들이 “이 집 남편, 금치산자야 뭐야. 마흔 넘어서 실종신고 당했다니까.”
웃으며 말하지만,
그 웃음 안에는 살아있어서 고맙고, 곁에 있어서 다행인 마음이 담겨 있다.
《마음속의 사계절》
-담빛-
새록새록 마음속으로
조용히 준비를 해.
아팠던 마음을 치유하고
다시 밝은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면,
그게 너만의 봄이야.
열심히 살며 땀을 흘릴 때
그건 너에게 여름이야.
잘하고 있어. 정말 잘하고 있어.
그러다 누군가
다시 아픈 말을 던질 수도 있어.
그럴 땐 외로움이 찾아오고,
마음은 갈색으로 물들겠지.
혼자라는 생각에
잎들을 하나씩 떨구다가
결국 모두 떨어지고 나면,
절망이 밀려올 거야.
혹독한 추운 겨울이 지나고
그때 알게 돼.
떨어졌던 그 잎사귀들이
다시 너를 일으킬 자양분이었단 걸.
마음속에도 늘 사계절이 있어.
겨울을 지나 피어나는 건,
늘 너였다는 걸 잊지 마.
네가 혼자일 때 떨궜던 그 감정들도
결국 너를 다시 살게 할 힘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