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사라진 아이 그리고 눈물

아들이 사라졌다.

by 담빛

나는 만하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면 늘 마음을 단단히 붙잡아둔다.

그 순간만큼은 눈을 마주치고, 끝까지 경청하려 애쓴다.

그래야 나도 집중할 수 있고,

상대도 내가 듣고 있다는 걸 느낄 테니까.


그날도 그랬다.

놀이터에서 만난 엄마들과 이야기꽃이 피었다.

아이들은 그 옆에서 신나게 뛰놀고 있었고,

나는 평소처럼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그네 뒤에 있겠지’,

‘미끄럼틀 안에 들어갔나?’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눈을 씻고 아무리 둘러봐도

내 아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 순간,

세상이 조용해졌다.

소음이 멀어지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늘이… 노래졌다.


늘 내 입에 달고 살던 말이 있었다.


“나는 아무리 산만해도,

절대 아이만은 안 잃어버릴 거야.”

그 말이,

그날 무너졌다.


주변 엄마들도 놀랐다.

모두가 다 같이 놀이터 구석구석을 찾아다녔다.

경비실, 주차장, 화단 뒤편, 엘리베이터까지…

누군가는 경찰서에 전화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나는 그저,

숨도 쉬지 못한 채 온 놀이터를 돌고 또 돌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놀이터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육교 근처 길에서 아이가 발견됐다.

작은 발로,

혼자서,

그 먼 길을 걸어간 것이다.


아이를 안는 순간,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울음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품에 아이를 끌어안고

놀랐을 아이의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온 정신을 쏟았다.


그날 이후,

나는 몇 달 동안 아이와 실내에서만 놀았다.

키즈카페, 거실, 베란다,

문을 닫고, 창문을 닫고,

세상을 닫았다.


엄마로서 나는 많이 무너졌고,

그 죄책감은 내 안에 조용한 그림자처럼 남았다.


그날의 나는

산만한 엄마였지만,

진심으로 아이를 사랑했고,

누구보다 애를 태우며

자신을 용서할 줄 몰랐던 엄마였다.


나는 지금도

사람을 만날 땐 눈을 바라보며 경청하려 애쓴다.

하지만 이제는 그보다 먼저,

늘 아이를 먼저 살핀다.

그게 내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이다.

그날, 아이를 잃어버렸던 순간.
나는 울었다.
숨을 삼키고, 목이 죄어오고,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 눈물은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그건 움을 요청하는 절규였다.

지금도 생각한다.
아이를 부르며 흘렸던 그 눈물은
“나는 여기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줄게"라고 말하던
나의 마지막 힘이었다.

이제는 안다.
눈물은 나약함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하다는 용기였다.

그러니, 그날 울던 나를
이제는 안아주고 싶다.



<<눈물의 참된 의미>>


글. 담빛


나는 자꾸 닦아낸다.
부끄러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아주 작은 신호였다.

나이가 들수록
그 신호의 의미를 잊는다.
눈물은 여전히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외면하고 만다.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눈 속에서 조용히
존재를 증명한다.

살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하늘에서 흐르는 눈물도
가뭄일 땐
온 땅이 두 팔 벌려 맞이한다.


누군가에겐
눈물이
절실한 숨이고,
다시 걷게 하는 온기다.

눈 속 깊이 고인
그 투명한 신호는
사실,
도움을 요청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니,
눈물아
오늘도 마음껏 흘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