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AI는 이미 출판시장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원고 작성, 요약, 편집 보조, 마케팅 문구 생성에 이르기까지 AI는 더 이상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출판 현장의 일상적인 도구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AI가 출판 구조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일은, 작가와 출판사가 앞으로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지, 어떤 조건으로 생존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이 글은 AI 이후 출판시장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구조적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AI 시대에도 왜 출판은 여전히 필요한가, 어떤 조건에서 책은 의미를 유지할 수 있는가, 그리고 작가와 출판사는 무엇을 기준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이 논의의 출발점이다.
2. 종합적 전망
AI 확산 이후 출판시장은 구조적 재편의 과정에 놓여 있다. 이러한 변화는 종이책과 전자책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먼저 종이책은 발간량 기준으로 정체 또는 감소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정보 전달이나 실용 중심의 종이책은 AI와 디지털 콘텐츠에 밀려 경쟁력을 잃고 있다. 그러나 모든 종이책이 쇠퇴하는 것은 아니다. 완결된 구조를 갖춘 책, 소장 가치가 있는 책, 하나의 관점이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의 수요는 일정 수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종이책은 더 이상 단순한 정보 매체가 아니라, 판단과 해석이 응축된 결과물로 성격이 이동하고 있다.
전자책은 종이책과는 다른 흐름을 보인다. 발간량은 급증한다. 제작과 유통의 장벽이 크게 낮아졌고, AI의 도움으로 개인도 손쉽게 전자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매 구조는 극단적으로 양극화된다. 상위 소수의 전자책만이 지속적으로 소비되고, 다수의 전자책은 노출조차 되지 못한 채 빠르게 사라진다. 진입은 쉬워졌지만, 가시성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은 오히려 더 치열해진다.
전자책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책은 공통된 특징을 지닌다. 분명한 관점과 문제의식을 제시하고, 독자가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명확한 이유를 제공하는 책이다. 종이책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정보 요약이 아니라, 판단과 선택의 기준을 제시하는 책이 상위 구조에 남는다.
AI는 출판의 내부 기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거 출판의 핵심이 문장 교정, 형식 편집, 제작 관리에 있었다면, 이러한 기능의 비중은 점차 줄어든다. AI가 문장 정리와 기본 편집을 보조하게 되면서, 출판사가 수행해야 할 중심 기능은 무엇을 책으로 낼지 판단하는 업무로 이동한다. 즉 편집 기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문장·형식 중심에서 기획·선별 중심으로 성격이 전환되는 것이다.
결국 출판시장의 변화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종이책은 선택 기준이 강화된 소수 중심 구조로 이동하고, 전자책은 과잉 생산 속에서 상위 집중 구조를 강화한다. 그 과정에서 출판은 문장을 생산하는 산업에서, 발간 여부를 판단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산업으로 재정의된다.
3. 장르별 전망
AI 시대에 살아남는 책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AI가 대신 만들 수 없는 생각이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다시 말해, 왜 이 책을 굳이 써야 했는지가 느껴지는 책만이 오래 읽힌다. 반대로 정답을 나열하거나 설명에 그치거나, 결론을 회피하는 책은 AI와의 경쟁에서 빠르게 밀려난다. 이 관점을 바탕으로 출판 장르를 영역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정보·실용서
정보·실용서는 AI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장르다. 사용법, 요약, 생활 정보, 기초 지식처럼 정답이 비교적 분명한 콘텐츠는 AI가 실시간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독자가 이런 정보를 얻기 위해 책을 구매할 필요성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정보·실용서는 AI 시대에 가장 취약한 영역이 된다.
2) 전문서·사상서
전문서와 사상서는 AI 시대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위치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이 장르의 가치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논증의 설득력, 검증의 엄밀함, 그리고 결론에 대한 책임에 있기 때문이다. AI는 보조 도구로 활용될 수는 있어도, 사상이나 이론의 결론을 대신 책임질 수는 없다. 이 점에서 신뢰를 제공하는 전문서·사상서는 오히려 중요성이 커질 수 있다.
3) 소설·수필·에세이
소설과 수필, 에세이는 AI 시대에 가장 양극화가 심해질 장르다. AI는 일정 수준의 서사와 감정 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그 결과 공식화된 플롯이나 상투적인 감성은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그러나 독창적인 세계관과 개인의 선택이 분명히 드러나는 이야기는 쉽게 복제되지 않는다. 특히 왜 이 이야기를 지금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작품은 여전히 의미를 가진다.
4) 교양서
교양서는 전문서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역사·사상·현실 문제를 이해하도록 돕는 책이다. 단순히 정보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의 관점과 생각의 폭을 넓히는 데 목적이 있다. 교양서는 AI 시대의 전형적인 회색지대에 놓여 있다. 얕은 수준에서 쉽게 설명하는 책은 경쟁력을 잃지만, 복잡한 문제를 구조화하고 독자의 판단을 이끄는 교양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교양서의 생존 조건은 정보량이 아니라 관점의 일관성과 문제 설정의 깊이에 달려 있다.
4. 멀티북 전망
AI 시대에는 음성과 영상을 활용한 책 형태, 이른바 멀티북이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고 출판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멀티북은 텍스트를 중심으로 음성과 영상이 결합된 책 형태를 의미한다. 독자의 소비 방식이 읽기 중심에서 듣기·보기로 이동하고, AI로 제작 장벽이 크게 낮아지면서 이러한 형식은 지속적인 수요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이 기능은 유튜브가 부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유튜브는 짧고 흩어진 정보 소비에는 강하지만, 하나의 생각을 처음부터 끝까지 체계적으로 전달하고 그 내용에 책임을 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 점에서 멀티북은 영상과 음성을 활용하면서도 책이라는 형식을 통해 일관된 메시지와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5. 출판사와 플랫폼의 관계 변화
AI 확산과 함께 출판을 둘러싼 권력 구조는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출판사가 기획·편집·유통의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플랫폼의 영향력이 결정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Amazon과 Google 같은 대형 플랫폼은 검색·추천·노출을 통해 책의 생존을 좌우한다. 독자는 출판사 이름보다 알고리즘 추천을 통해 책을 만난다. 이 과정에서 책의 질보다 가시성이 먼저 작동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출판시장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이로 인해 전통적 출판사는 위기를 맞는다. 플랫폼과 동일한 영역에서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출판사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출판사의 역할은 더 분명해진다. 무엇을 책으로 낼 것인지 판단하고, 그 선택에 신뢰와 책임을 부여하는 기능이 핵심이 된다.
한편 1인 출판은 AI와 플랫폼을 등에 업고 빠르게 확산된다. 개인도 기획·집필·편집·출간을 혼자 수행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출판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지만, 동시에 과잉 경쟁을 낳는다. 다수의 1인 출판물은 노출되지 못한 채 사라지고, 극소수만이 성공한다. 1인 출판 역시 플랫폼 의존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은 전통 출판과 다르지 않다.
결론적으로 출판사와 플랫폼은 대체 관계가 아니라 역할 분화 관계로 재편되고 있다. 플랫폼은 유통과 노출을 장악하고, 1인 출판은 생산을 확대하며, 출판사는 선별과 판단의 기능을 강화한다. 플랫폼과의 경쟁 속에서 출판사는 무엇을 책으로 낼지 제대로 판단하는 능력에서 존재 이유를 찾게 된다.
6. AI 시대의 작가 정의
과거의 작가는 직접 문장을 쓰고 자신의 경험·사상·관점을 글로 표현하며, 그 내용과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이해되었다. 문장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작가를 구분하는 핵심 기준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문장을 만드는 일이 더 이상 작가만의 고유한 능력이 아니다. AI는 평균 이상의 문장을 빠르게 생성할 수 있으며, 표현력만으로는 차별성을 갖기 어려워졌다. 이로 인해 작가 역할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가 달라졌다.
AI 시대에 작가의 중심 역할은 문장을 만드는 데서, 무엇을 주제로 삼을 것인지, 어떤 관점을 택할 것인지, 어디까지 말하고 어디서 멈출 것인지를 판단하는 데로 이동한다. 즉 기술적 글쓰기 능력보다 판단의 비중이 훨씬 커진다.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했는가다. AI를 도구로 활용하더라도 주제 설정과 결론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작가로 볼 수 있다.
결국 AI 시대의 작가는 문장을 직접 쓰는 사람에서, 생각의 방향을 결정하고 그 선택을 독자 앞에 내놓는 사람으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
7. AI 시대 독자의 위상 변화
AI 시대에 출판물은 급증했고, 독자는 정보 부족이 아니라 정보 과잉 속에 놓이게 되었다. 독자는 더 이상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무엇을 읽을지 스스로 걸러내야 하는 선별자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검색·추천 알고리즘의 영향력은 커졌고, 독자의 선택은 플랫폼 구조에 크게 의존한다. AI 시대 독자가 책에 기대하는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판단을 도와주는 정보의 질이다.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결론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대신 정리해주는 책만이 신뢰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