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글쓰기에서 AI의 정체성을 먼저 이해해야 하는가
AI를 활용해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은 공통된 감정을 경험한다.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이는 속도와 방대한 정보량, 그리고 정교한 논리 전개 앞에서 놀라움을 느낀다. 이러한 경험은 곧 “AI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으로 이어진다.
AI는 단순한 도구인가, 아니면 하나의 창작 주체로 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실제로 AI를 둘러싼 대부분의 글쓰기 논쟁은 AI를 어떤 존재로 인식하느냐에서 비롯된다. AI를 하나의 ‘저자’로 볼 것인지, 단순한 ‘도구’로 볼 것인지, 혹은 인간과 공동으로 작업하는 ‘조수’나 ‘공동 연구자’로 볼 것인지에 따라 저작권, 표절, 책임에 대한 판단은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된다.
글쓰기에서 AI의 정체성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논쟁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같은 결과물을 두고도 평가가 엇갈리고, 책임의 귀속을 둘러싼 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글쓰기에서 AI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모든 저작권·표절·책임 논쟁의 출발점에 해당한다. AI의 정체성을 먼저 정리하지 않고서는, 그 이후의 어떤 기준도 일관되게 세울 수 없다.
2. AI의 정체성에 대한 일반적 설명
1) 기술 분야의 AI
AI의 정체성을 둘러싼 혼란은 서로 다른 분야의 AI를 하나의 존재로 묶어 이해하려는 데서 비롯된다. 바둑 AI나 자율주행 AI처럼 특정 목표를 향해 작동하는 기술 분야의 AI와, 언어를 다루는 글쓰기 AI는 작동 방식과 역할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가진다.
기술 분야의 AI는 제한된 환경과 명확한 목표 안에서 최적의 선택을 계산하도록 설계된다. 바둑 AI에는 승리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고, 자율주행 AI에는 안전한 주행이라는 기준이 존재한다. 이들은 센서 데이터와 규칙을 바탕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그 결과에 따라 즉각적인 행동을 수행한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기술 분야의 AI는 외부에서 볼 때 마치 ‘판단 능력’을 가진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판단은 가치 판단이나 책임 판단이 아니라, 사전에 정의된 목표와 규칙 안에서 이루어지는 계산의 결과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으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기술 분야의 AI는 판단 주체처럼 인식되기 쉽다.
2) 글쓰기 AI
기술 분야와 달리, 글쓰기 AI의 능력은 구조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글쓰기에서의 판단은 곧 책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떤 주장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 특정 표현이 차별이나 왜곡을 낳을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법적·윤리적 책임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책임은 현행 사회 구조상 인간에게만 귀속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글쓰기 AI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스스로 판단하고 결론에 책임지는 존재가 되지 않도록 제한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법적 책임 구조와 윤리 문제, 고용과 사회적 영향 같은 현실적 조건과 깊이 연결된 선택이다.
결국 현재의 글쓰기 AI는 무엇을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무엇을 해서는 안 되도록 설계된 존재에 가깝다. 기술 분야의 AI가 제한된 환경 안에서 판단과 행동을 수행하는 반면, 글쓰기 AI는 방향 설정과 최종 책임을 인간에게 남겨 둔 채 언어적 조수로 기능한다. 글쓰기에서 AI는 판단을 내리는 주체가 아니라, 판단을 돕는 도구로 위치 지워져 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글쓰기 AI는 결론을 내려주는 판단자라기보다 여러 선택지를 펼쳐 놓고 “어디로 갈지는 당신이 정하라”고 말하는 책사에 가깝다. 전략과 가능성은 제시하지만, 최종 결단과 그에 따른 법적·윤리적 책임은 인간에게 남겨 둔다.
따라서 글쓰기 AI의 정체성은 ‘결론을 대신하는 사고 주체’가 아니라, ‘판단을 보조하되 책임은 지지 않는 조력자’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3. 글쓰는 AI가 잘하는것과 잘하지 못히는것
1) AI가 잘하는 영역
글쓰기에서 AI가 강점을 보이는 영역은 비교적 명확하다. 자료 요약, 정보 정리, 초안 생성, 문장 다듬기, 표현 대안 제시, 반복 작업의 자동화와 같은 작업은 AI가 인간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특히 생각의 출발점이 되는 초안 작성이나, 복잡한 아이디어를 정리하기 위한 대화형 조수로 활용할 때 AI는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된다. 이 단계에서 AI는 인간의 사고 속도를 높이고, 표현의 선택지를 넓혀 주는 역할을 한다. 글쓰기의 ‘재료’를 빠르게 마련하는 데 있어 AI는 탁월한 보조 수단이다.
2) AI가 잘하지 못하는 영역
반대로 AI가 할 수 없는 영역 역시 분명하다.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 선택하는 일, 어떤 관점이 타당한지 판단하는 일,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고 사회적 맥락 속에서 책임 있는 결론을 내리는 일은 AI의 영역이 아니다.
AI는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며, 생성한 문장에 대해 법적·윤리적 책임을 질 수도 없다. 이 판단의 영역을 AI에 맡기는 순간, 글의 주체는 흐려지고 책임의 공백이 발생한다.
따라서 글쓰기에서 인간이 맡아야 할 역할은 명확하다. 문제 제기, 관점 설정, 판단, 결론,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인간의 몫이다. AI는 사고를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고를 보조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 이 구분이 분명할 때, AI는 글쓰기의 위협이 아니라 가장 유능한 조수가 된다.
4. AI 글쓰기의 미래
AI의 정체성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기술적 가능성과 사회적 선택이 맞물리며 형성되는 결과물이다. 따라서 “AI의 정체성은 미래에도 지금과 동일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단순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기술 발전만 놓고 본다면, AI는 점점 더 인간의 사고와 유사한 언어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 계산의 정확도와 범위가 확장될수록, 이해와 판단의 경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흐려질 수 있다.
그러나 정체성의 변화는 기술 발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AI가 실제로 판단 주체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책임을 어디까지 맡길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판단은 곧 책임을 의미하며, 법적·윤리적 결과를 수반한다. 현재의 사회 구조는 이러한 책임을 비인격적 존재에게 부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AI의 능력이 아무리 향상되더라도, 설계 단계에서 최종 판단과 결정권을 인간에게 귀속시키는 구조는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고용 문제, 권력 집중, 정보 통제와 같은 현실적 변수도 작용한다. AI가 전면적인 판단 주체로 등장할 경우 발생할 사회적 충격을 사회가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크다. 결국 미래의 AI 정체성은 ‘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맡길 것인가’의 문제에 가깝다. 기술은 가능성을 확장하지만, AI의 정체성을 최종적으로 규정하는 선택은 앞으로도 인간 사회의 몫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AI는 인간의 글쓰기 행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AI 시대의 글쓰기는 점차 ‘쓰는 일’에서 ‘판단하는 일’로 중심이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문장을 생성하고 표현을 다듬는 노동은 AI가 담당하고, 인간은 어떤 문제를 제기할지, 어떤 관점과 결론을 선택할지, AI가 제시한 여러 선택지 중 무엇을 채택할지를 결정하는 역할에 집중하게 된다. 다시 말해, 글쓰기는 문장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판단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과정으로 재정의된다.
결국 AI 글쓰기의 미래에서 경쟁의 핵심은 표현 능력이 아니라 판단 능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