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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일치의 함정

헌법재판소의 연이은 8:0 결정을 우려한다

by 방구석 정치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파면 결정을 내렸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망연자실’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마치 한국이 중국에게 축구에서 8:0으로 패한 것처럼 예상치 못한 결과였고, 허탈감은 그 이상이었다.

이런 감정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많은 국민이 비슷한 충격과 심리적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만큼은 법리에 기반한 냉정하고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탄핵 심판은 여러 측면에서 깊은 고민을 던져준다.

첫째, 예측 가능성의 붕괴다.
사법기관의 결정은 국민에게 일정한 신뢰와 안정감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설마 여기까지 가지는 않겠지"라는 기대를 무너뜨리며, 예측할 수 없는 국가 운영의 불확실성을 심화시켰다.

둘째, 기대에 대한 상실감이다.
대통령 주변의 인사들, 정치권, 언론에 이어, 비교적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줄 것이라 여겨졌던 재판관들까지 한 명의 이견 없이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는 점에서, "헌재마저 예외는 아니었구나"라는 실망감을 느낀 국민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 국민적 노력의 허무함이다.
부정선거 의혹 해명, 공정한 사법체계 확립, 자유민주 체제 수호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온 시민들에게 이번 결정은 아무런 진전 없이 혼란만 남긴 채 마무리된 사건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더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은 탄핵의 정당성 여부가 아니라, 그 결정이 ‘만장일치’로 내려졌다는 형식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다.

만장일치, 과연 정당한 판단인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8:0 만장일치 결정이 내려졌고, 이번에도 같은 결과가 반복됐다.
일부에서는 재판관 전원이 같은 판단을 내린 것이 오히려 혼란을 줄이고 국론 분열을 막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 방식은 민주주의의 원리와 제도적 다양성 측면에서 심각한 의문을 남긴다.

첫째, 만장일치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이견 존중’과 ‘다수결 원칙’을 약화시킬 수 있다.
현실 정치나 사법 판단에서 100%의 일치가 반복된다면, 이는 일종의 집단 동조 또는 비판의 부재를 의심하게 한다.
만장일치가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민주주의는 다양한 관점의 충돌과 조정을 통해 발전한다.

둘째, 만장일치 결정은 내부 논쟁과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가리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단일한 결론은 명확해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반대 의견이 있었고, 어떤 논쟁이 있었는지를 알 수 없다면, 국민은 재판 과정의 투명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법 판단도 사회적 책임을 동반하는 공적 행위인 만큼, 소수의견의 존재는 판결의 신뢰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셋째, 만장일치가 국론 분열을 막는다는 주장에는 실증적 근거가 부족하다.
국민이 사법 판단을 수용하는 핵심 이유는 결정의 정당성과 공정성에 있다.
숫자의 일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판단이 얼마나 헌법적 가치에 충실하며, 법리적 논리 위에 서 있는가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이견 속에서 자란다

헌법재판소가 8:0이라는 만장일치 숫자를 통해 국론을 수습하고 혼란을 줄이려 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오히려 반대였다. 국민의 신뢰는 흔들렸고, 사법 시스템의 다양성과 독립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이견이 존재하고 그것이 제도 안에서 존중되는 구조에서 유지된다.
모든 판단이 동일하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다양성의 침묵, 혹은 비판의 실종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결정은 헌재가 실제로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를 넘어, 그 판단이 내려지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요구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만장일치는 효율적일 수는 있어도, 항상 정당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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