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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은 경고이고, 실천은 해답이다

by 방구석 정치


전통 예언은 단순한 운명의 예고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흐름을 꿰뚫는 통찰이며, 위기를 경고하는 외침이다. 격암유록, 정감록, 탄허 스님의 설법, 권태훈 목사의 예언, 금릉탑 비문과 추배도에 이르기까지, 이들 예언은 공통적으로 동북아의 미래를 거대한 전환기로 그려낸다.

이 예언들은 하나같이 중국 공산당 체제가 도덕과 민생의 붕괴로 인해 내부 균열을 맞이하고, 북한 또한 폐쇄적 지배구조와 민중의 고통 누적으로 존속이 어려워질 것이라 경고한다. 그 속에서 한반도는 미중 체제전쟁의 중심에 서게 되고, 이 운명의 갈림길에서 중요한 것은 제도나 군사력이 아니라 결국 국민 개개인의 도덕적 선택과 실천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주목할 점은 모든 예언의 중심에 ‘도덕의 회복’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감록은 “도(道)가 무너지면 백성이 도탄에 빠진다”고 하였고, 격암유록은 “군신부자형제간이 다 무도하니 인심이 흩어진다”고 경고하였다. 이는 과거의 경구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 사회를 향한 경고이며, 내일을 향한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도덕을 회복하고 강화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는 단순히 정치 개혁이나 법령 제정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진정한 회복은 생활 속 작은 실천에서 시작되며, 개인의 태도 변화와 공동체적 윤리의 부활이 함께 요구된다. 예언들은 도덕적 리더십, 시민의 수양, 정의로운 삶의 자세, 그리고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삶을 통해 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실천 방안으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지도층의 도덕성 회복이다. 지도자는 사회의 거울이기에 이들의 책임 의식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준다. 둘째, 시민 각자가 일상 속에서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는 삶의 자세다. 셋째, 도덕적 시민성을 기르는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 넷째, 경쟁과 탐욕이 구조화된 사회 시스템을 개혁해 공동선의 윤리를 회복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도덕 윤리의 결합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실존적 과제다. 자유민주주의는 제도적 합리성 위에 서 있지만, 도덕 없이는 방임과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동양 전통의 도덕 사상은 공동체적 책임과 자기 수양을 중시하지만, 제도적 권리 보호는 약하다. 이 둘의 결합은 서구의 제도와 동양의 정신을 통합하는 새로운 문명적 실험이자, 인류 보편 가치를 재구성하는 길이 된다.

존 롤스는 자유와 평등 위에 ‘정의’라는 도덕적 원칙을 덧씌웠고, 한나 아렌트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을 ‘양심’과 ‘공적 책임’에서 찾았다. 도덕과 인류애의 회복은 추상적 이상이 아니라, 국가 생존과 사회문제 해결의 실질적 기반이 된다.

북한과 중국의 전체주의적 전략은 무력에 앞서 정보전과 심리전, 이념전을 통해 내부를 약화시키려 한다. 그러나 도덕이 살아 있는 사회는 지도층의 책임, 시민의식, 공동체의 신뢰를 통해 이를 막아내는 '정신적 면역력'을 갖춘다. 도덕을 재무장하면 공산주의의 침투에 대한 저항력과 투쟁력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또한 도덕은 갈등을 완충하는 기능도 한다. 사람을 이념보다 우선시하는 태도, 공동선을 향한 관심, 양심적 표현이 존중되는 공론장은 진영 간 대립을 흡수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기반이 된다.

경제 문제도 예외는 아니다. 빈부격차는 탐욕과 무관심에서 비롯되며, 저출산은 돌봄과 희망의 부재에서 나온다. 고령화는 노인을 사회의 부담으로만 여기는 인식에서 악화된다. 도덕과 인류애는 약자를 위한 연대, 세대 간 존중, 돌봄의 문화로 이러한 구조를 흔들고 바꿔낼 수 있는 힘이 된다.

결국 도덕과 인류애의 회복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정신적 국방이며, 사회적 갈등과 구조적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윤리적 생태계의 재건이다. 그것이 예언이 가리킨 방향이며, 우리가 실천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다.

예언은 경고이며, 실천은 해답이다.
그리고 그 실천은 지금, 우리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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