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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 Jan 18. 2023

불경기에 스타트업 마케터의 역할

여느 때보다 추운 겨울

스타트업 업계가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인력 감축 소식도 들려오고, 최소한의 서비스만 남겨둔 채 재정비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2022년은 마케터에게 힘든 한 해였을 것이다. 그리고 23년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최근 3년간은 투자 시장이 활발했고, 스타트업들은 투자를 받으며 몸집을 키우는 것이 1번 과제였다. 22년 역시 그런 기조로 한 해를 시작하다 가파른 금리 인상과 맞물려 모든 것이 바뀌었다. 금리가 오르면서 스타트업 업계의 투자금이 묶이고, 당분간 투자를 받는 것이 어려워졌다. 몸집을 키우던 것에서 빠르게 당장의 이익 전환, 투자 없이도 살아남는 것이 스타트업들의 가장 큰 과제가 되었다.

그렇게 마케터들에게도 22년 체질개선 과제가 떨어졌을 것이다. 당장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만큼 마케팅 비용을 모두 줄여야 했고, 효과가 좋았다 한들 그동안 마케터가 해오던 모든 일을 그대로 멈춰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변화 속도가 빠른 만큼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회사들에서는 결국 인력감축, 서비스 종료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제 인력감축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마케터는 내 자리가 위험하지는 않나 라는 걱정까지 하고 있다.


회사가 당장 살아남는 것이 중요해 비용 절감이 가장 큰 과제가 되었을 때, 마케터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회사의 결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투자 시장이 긍정적으로 돌아서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지금 당장 수혈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회사들은 지금 가지고 있는 돈으로 버티면서 회사에서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 우선 살아남기 위해 회사가 내리는 첫 번째 의사결정은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비용 중 가장 빠르게 줄일 수 있는 비용은 마케팅 비용이다. 이 상황에서 마케터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마케터의 본질은 '브랜드를 키우는 사람'

이 상황에서 마케터 스스로 자신을 광고를 집행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다면, 쓸 수 있는 비용도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마케터의 본질은 ‘브랜드를 키우는 사람’이다. 비용의 제약이 생겼을 때 마케터의 실력이 오히려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비용을 줄이는 이유도 결국 이 보릿고개를 잘 넘겨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다. 마케터는 비용이 절감되었다는 사실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고객이 계속해서 우리 브랜드를 찾고 구매하는 활동이 유지되어 브랜드가 살아남아야만 나중에 다시 투자를 받을 수도, 그래서 다시 커질 기회도 얻게 된다. 마케터는 이제 더 적은 비용으로 혹은 돈을 아예 쓰지 않고서도 고객이 우리를 계속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재정비 그리고 재정비

22년부터 많은 회사들의 전략이 바뀌었을 것이다. 신규 유저를 모으며 브랜드의 몸집을 키우는 것에서 최소한의 비용을 쓰며 (혹은 아예 쓰지 않으면서) 매출을 유지할 것. 이 시기는 겉으로 보면 마케터가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숨 고르기를 하면서 더 바쁘게 달릴 준비를 할 때다. 마케팅 활동 뿐만 아니라 우리 서비스가 속한 산업군부터 서비스까지 기본에 대해 재정비할 가장 좋은 시기이다.


1) 우리 브랜드의 방향성에 대해 재정비해야 한다.

이 시기는 back to basic. 기본에 대해 재정의 해야 하는 시기다. 금리 인상, 물가 인상 등 환경 변화와 맞물려 고객 패턴이 바뀌게 될 것이다. 미래 수익이 늘어난다고 예측되던 시점에 우리 브랜드를 찾았던 사람들도, 이제 지갑을 닫아야 겠다고 판단한 시점에는 더이상 우리 브랜드를 찾지 않을 수도 있다.  여느 때보다 고객의 지갑을 여는 것이 어려워졌으나 여전히 고객은 내가 만족할만한 서비스라고 판단되면 돈을 쓴다. 우리 브랜드는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고객이 찾는 브랜드인지, 혹은 더 이상 찾지 않는 브랜드가 되었는지, 그렇다면 무엇을 바꾸어야 우리 고객이 이런 상황에서도 찾을 브랜드가 될 지, 우리 브랜드는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 등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기존에 해오던 커뮤니케이션 방식, 전달하던 가치, 혹은 판매하던 서비스까지도 모두 다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 그래서 그 방향성을 바탕으로, 마케팅 활동 앞단의 우리 브랜드의 가치, 우리가 집중해야 할 서비스, 우리가 집중해야 할 상품,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할 것인지 등등에 대해 모두 재정의를 해야 한다. 


2) 회사의 전방위적인 재정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동안은 당장의 매출 달성에 집중하느라 하지 못하던 일들을 프로덕트 팀, MD팀 등 다양한 팀들과 협업하며 하나씩 재정비 해야 한다. 

매출을 여러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Sales = traffic x conversion x basket size 라는 수식으로 간단히 해보자. 브랜드가 마케팅 비용을 투자하며 확장을 할 시점에는 마케터는 traffic에 집중해서 일하게 된다. 어떤 메시지로 어떤 신규 유저를 데려올지, 어떤 미디어에 어떤 광고를 집행해 몇 명을 데려올지에 집중한다. 위 수식의 conversion, basket size처럼 구매 전환율을 어떻게 더 높일지, 객단가를 어떻게 더 높일지는 후순위가 되게 된다. 그리고 위 수식에서 바로 표현되지 않지만 기존 유저들의 재구매율을 어떻게 높일지는 마케팅 비용을 투자하며 클 때는 후순위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마케팅 비용을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 그래서 광고를 통해서 신규 traffic을 데려오지 못할 때, 이제 마케터는 전환율을 높이는 일, 객단가를 높이는 일 등 전체 수식을 강화하는 프로젝트를 타 팀과 함께 진행해야 한다.


나도 회사 상황 상 마케팅 비용을 쓰지 못하는 상황을 몇 번 마주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 동안 바빠서 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 가설을 세우며 프로젝트들을 진행했었다. 예를 들어 우리 브랜드는 CRM 마케팅으로 기존 유저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활동을 하는데, 1회 이상 구매한 고객은 이메일을 받고 재구매로 이어지는 비중이 높았지만, 0회 구매 고객, 즉 가입만 해놓고 구매는 하지 않은 고객은 이메일을 보내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입자 중 0회 구매 고객의 비중이 높았는데, 어떻게 하면 0회 구매 고객을 마케팅 활동에 반응하는 1회 구매 고객으로 만들 수 있을지, 혹은 애초에 회원가입만 하고 구매를 하지 않는 고객은 왜 발생하는 것인지, 회원가입하는 시점에 고객에게 어떤 액션을 해야 고객이 바로 구매를 할 지 등 다각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매출액을 키웠다.


그리고 '수익 - 비용 = 이익'이라는 수식에서, 단순히 마케팅 활동을 하지 않으며 비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예를 들어 이커머스라면 어떤 상품을 팔아야 마진이 높을 지 등 다양한 각도에서 일을 바라보며 이익을 높이는 일에 대해 논의했다. 이처럼 이 시기에 마케터는 traffic 파트에만 집중하던 시기보다 더 넓은 일을 해야 한다. 


3) 특히 기존 고객에 대한 재정비는 필수적이다.

그리고 대규모 캠페인을 통해 신규 유저를 모집하는 것이 어려워진 만큼, 기존 고객을 유지하는 것, 더 나아가 충성 고객을 키우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이 시기를 버틸 때 두터운 충성 고객층을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힘이 되는데, 충성 고객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해보며 고객에 대해 이해하려고 했다. 어떤 고객을 충성고객으로 정의할까? 큰 금액을 쓰는 고객이 충성고객일까? 자주 구매하는 고객이 충성고객일까? 최근에 구매한 고객이 충성고객일까? 아니면 이 3가지 요소를 섞어서 충성 고객을 정의할 수 있나? 등의 고민도 했다. 이처럼 그 동안은 몸집 키우기에 급급해 집중하지 못했던 과제들을 하나씩 정의하며 고객에 대해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직접 우리 고객에게 전화를 하며 왜 우리 브랜드를 사용하는지, 만족하는지, 혹 불만족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등을 이야기 듣는 시간을 만들며, 위의 과정들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도 가졌다. 


4)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마케팅 활동을 재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을 진행하면서, 그 동안의 마케팅 활동들 역시 제로 베이스에서 리뷰해야 한다. 효과가 좋았다 한들 이제 고객 패턴이 바뀌었고 회사의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다시 정리해야 한다.

- 우리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 메시지부터

- 비용이 따로 들지 않는 인스타그램 계정과 같은 온드 미디어 (owned media)를 재정비하고

- 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CRM 마케팅 활동들을 재정비하고

- 그리고 나서야 신규 유저와 관련된 미디어믹스를 손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더 적은 돈으로 더 크게 효과를 가져와야 하기 떄문에, 숫자를 보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은 더 중요해진다. 


5) 그리고 스터디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스터디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먼저 이런 투자 혹한기에서도 투자를 받고, 여전히 고객이 줄을 서며 구매하려고 하는 브랜드는 많을 것이다. 이 브랜드의 가치는 무엇인지, 그들은 고객의 pain point를 어떻게 건드렸는지 등을 스터디하며, 우리 브랜드와 접목시킬 것은 무엇이 있을지를 스터디해야 한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각각의 과정들에 있어서도 필요한 스터디들을 진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존 유저가 중요해진 만큼, 기존 유저에게 커뮤니케이션 잘하는 브랜드를 스터디하는 등 우리 브랜드에 접목할 수 있는 무엇이 되었든 스터디를 해야 한다. 


겨울 그리고 봄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해진 만큼 마케터의 일을 넓게 보고 회사의 과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렇게 혹한기에 재정비를 하며 살아남고 나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 다시 우리 브랜드의 메시지를 큰 소리로 알리는 캠페인, 신규 고객과 만나는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상황이 긍정적으로 돌아섰을 때의 일을 지금부터 준비한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 추운 겨울 함께 잘 살아남아 봅시다.




23년 3월에 <보통의 마케터 이야기> 매거진에 집필하던 원고들이 책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마케터가 되기 위해 준비했던 과정부터 마케터로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다루는 책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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