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린 시절의 상처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고 인생을 흔들 만큼 심각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상처가 크건 작건 그것을 잘 극복한 사람은 온전히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누군가는 평생을 과거에 발목 잡힌 채 살아가게 된다.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하지?’
‘왜 나는 나를 자꾸 비난할까?’
‘나는 왜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할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화살은 다시 나에게로 향한다. 내 성격이 소심해서 그래, 나는 자신감이 없어서 그래, 자책의 굴레에 빠진다. 사실은 온전히 치유하지 못한 어린 시절의 내 감정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대상, 주 양육자인 부모에게서 충분히 이해받고 수용되는 경험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오히려 부모로부터 큰 상처를 받았다면 여러 힘든 감정을 안고 살게 된다. 두려움, 불안, 슬픔, 우울함 같은 감정들이 고스란히 우리의 마음 바구니에 담긴 채로 남아 있게 된다. 이게 사는 내내 우리를 괴롭힌다.
고양이들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양이가 어미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신생아기, 유아기에 걸쳐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 묘생이 힘들어진다. 예를 들어, 엄마 고양이가 임신 중에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불안한 환경에서 지내면서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게 되면 새끼 고양이의 스트레스 대처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별것 아닌 것에도 불안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고양이가 될 수 있다. 유전적 요인과 타고난 기질도 중요하지만 고양이들이 생애 초기에 어떤 경험을 했는가가 고양이의 평생을 좌우할 정도로 큰 역할을 한다. 고양이가 태어난 지 2-9주 사이를 ‘사회화 시기’라고 하는데 이때 사람이나 다른 고양이와 좋은 경험을 했다면 그 고양이는 나중에도 그들과 무난하게 잘 지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거나 그 시기에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 평생에 걸쳐 그 대상에 대해 두려움이나 불쾌한 감정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대부분 2개월 넘은 고양이를 데려오기 때문에 이 사회화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생후 36개월까지 지속되는 ‘사회적 성숙기’에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화 시기가 지났더라도 어려서부터 지속적으로 보호자와 좋은 경험을 하고 자신의 욕구를 충분히 해소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고양이는 스트레스에 견디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 긍정적인 경험을 반복하면 불편한 자극과 대상에 대해서도 ‘습관화’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고양이들도 어리기 때문에 하는 행동들이 있다. 어린 고양이들은 넘치는 에너지를 해소하기 위해 사람을 사냥하듯 깨물기도 하고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한다. 고양이가 점점 성숙해 가면서 그러한 행동들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시기를 잘 넘기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 우리가 뜻하지 않게 고양이의 행동에 잘못 반응함으로써 그 행동을 강화시키게 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고양이가 말썽을 부린다고 심하게 혼내고 처벌을 하는 등 잘못된 방식으로 그들을 통제하면 문제 행동은 더 심해진다. 더 예민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고양이로 자라게 된다. 그렇게 성묘가 된 고양이들은 일상의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해지고 정신적, 신체적 질병을 겪게 될 수 있다. 두려움을 과도하게 느끼거나 충동 조절이 되지 않아 다른 대상을 공격하는 고양이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각자 다르듯이 고양이들의 성격과 기질도 매우 다양하다. 수줍음 많은 고양이, 자신만만한 고양이, 예민한 고양이, 사교적인 고양이. 이렇게 각기 다른 고양이들이 다양한 성향의 보호자들과 지내다 보니 똑같은 기질과 성격을 가진 고양이라도 누구와 어떻게 지냈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고양이로 자라는 것을 보게 된다. 만지는 것에 예민했던 고양이가 어느 정도의 핸들링을 견뎌주는 성묘가 되기도 하고, 겁이 많아 조용하기만 했던 고양이가 호냥이가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에는 환경, 보호자와의 상호 작용, 같이 사는 동물과의 관계, 병원에서의 경험 등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준다. 그래서 병원에서든 집에서든 고양이들이 부정적인 경험을 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특히 어린 고양이들은 각별히 주의하지 않으면 나중에 만회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양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고양이에게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하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떨 때는 고양이를 심하게 혼내고 또 어떨 때는 다정하게 대하고, 이러면 고양이들이 매우 혼란스럽고 불안해진다. 가급적 모든 가족 구성원이 일관성 있는 기준과 태도로 고양이를 대해 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예측 가능한 루틴을 만들어 주자. 놀이를 며칠씩 몰아서 해주시는 것보다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놀아주고 간식 보상으로 마무리해 주면 고양이들이 덜 불안하다.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해줘야 한다. 한 번의 부정적인 상호작용을 만회하려면 30-50번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고양이에게 처벌은 효과가 없고 우리와의 관계를 해칠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더 나아가 고양이들이 문제 행동을 보인다면 혼내고 다그칠 것이 아니라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번만 해봤으면 한다. 말 안 듣는 ‘못된 고양이’라고 낙인찍는 대신 고양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살펴봐 주면 좋겠다. 고양이는 악의를 가지고 행동하지 않는다. 어떤 고양이는 몸이 아파서 행동이 달라졌을 수 있고, 어떤 고양이는 너무 두렵고 불안해서 그럴 수도 있다. 표현이 서툰 고양이들이 그렇게 밖에 행동할 수 없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수의사인 나조차도 고양이 행동학을 공부하기 전까지는 잘 몰랐다. 고양이가 싫다고 표현하는데도 계속 만지다가 물리기도 하고, 우는 행동에 일일이 대답해 주고 간식을 줘서 그 행동이 심해지게 만들기도 했다. 특히 내가 후회하는 것은 집사로서도 수의사로서도 무지했던 초보 수의사 시절, 아깽이였던 우리 고양이를 많이 혼낸 일이다. 바쁘다고 제대로 놀아주지도 않으면서 심하게 운다고, 손을 깨문다고 그 어린 고양이에게 소리를 치기도 했다. 참으로 부끄러운 기억이다. 행동학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참 못된 집사였다는 것을 느낀다. 과거의 내 모습을 자꾸 마주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다른 고양이들이 그런 힘든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내가 고양이의 행동학 진료에 더 몰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후회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보호자가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와 사는 모든 고양이들도 더 편안해지길 바란다. 고양이들과 살고 있는 모든 집사들이 더 늦기 전에 고양이의 소통 방식과 습성을 공부했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 고양이들도, 그들과 함께 사는 우리도 덩달아 평온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죄책감을 내려놓고 지금이라도 존중하는 마음으로 고양이를 바라보기 시작한다면 우리의 관계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고양이들에게는 지나간 과거보다는 지금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