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멀어질 우리에 대하여

by 고양이수의사

종종 살아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닌 것 같아 혹시 내가 게임 속의 NPC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마저 누군가에 의해 미리 설정된 것이라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당하는 것이라면? 망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도시락 가방을 챙겨 차에서 내리는데 또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진짜 존재하는 건가? 생각 없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자율 주행차가 된 것처럼 현관을 향해 터벅터벅 걷는 나. 자유 의지 없이 떠다니는 무언가가 된 기분이었다. 두둥실. 어쩌면 우리는 빈 공간을 떠다니는 먼지처럼, 더 작게는 물질을 이루는 원자처럼 물리 법칙에 이끌려 움직이고 서로 만나기도 하는 것 아닐까. 그래야만 설명되는 것들이 많다.


그게 아니고서야, 우리가 그들과 만나게 되었을 리 없다. 수십억 개의 별로 이루어진 수십억 개의 은하에서 먼지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이곳에서 서로 이끌렸을 리 없다. 평생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고 끝끝내 헤어졌을 리 없다.


서로의 공간을 두둥실 떠다니다가 저마다의 사정으로 함께 하게 되는 우리는 그 끝을 알고 있다. 운명처럼 만났든 떠맡듯이 품었든 모두 똑같다. 하지만 상관없다. 묘연이라는 물리 법칙에 이끌리듯 만난 우리는 같은 공간에 착 달라붙고 말 테니까. 함께한 시간이 쌓이고 쌓여 더 강한 수소 결합을 이룬 우리는 하나가 된다. 마치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와 우리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기에 서로 멀어지게 되어 있다. 우리가 우리의 속도로 삶을 살아내는 동안 고양이의 시간은 여섯 배나 빠르게 지나가 버린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우주를 헤매고 돌아와 늙어버린 머피를 다시 만난 쿠퍼의 마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밖에 없다.


수의사인 나는 수많은 그들의 끝을 보게 된다. 그 앞에서 나는 무기력하다. 끝을 더 미뤄주지 못한 미안함을 느낀다. 나와 우리 고양이의 끝도 얼핏 보여 슬퍼진다. 끝내 헤어지게 되더라도 머무는 동안 곁에서 행복했기를, 그렇게 기억해 주기를 바라본다. 서로에게 이끌려 함께한 시간만큼은 그들에게 또렷한 현실로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