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산다. 좋지 못한 것을 물려줬다는 죄책감과 좋은 것을 원 없이 해주지 못했다는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나도 아이에게 썩 좋지 못한 운동 신경과 비염을 물려준 것이 미안하고, 넓고 좋은 집에서 살게 해주지 못한 것이 종종 속상하다.
고양이와 사는 사람들 역시 고양이들에게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열세 살 된 내 고양이 '랑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 역시 편하지가 않다.
나는 인턴으로 근무하던 1년 차 시절에 랑이를 만났다. 제법 쌀쌀해진 어느 가을날, 출근해 보니 귀가 커다랗고 꼬질꼬질한 새끼 고양이가 수액을 맞고 있었다. 비에 젖은 채 길에 쓰러져 있는 아기 고양이를 누군가 구조해 온 것이었다. 구조자는 당시 고등학생이었고 고양이를 데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랑이는 회복이 되더라도 갈 곳이 없었다. 다행히 랑이는 금방 건강을 되찾았고 병원 생활에 적응해 갔다. 뽀뽀해 주는 스텝들의 입술을 세차게 깨물던 랑이는 모두의 예쁨을 받는 고양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나중에 구조되어 온 턱시도 남자아이가 더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왠지 꼬질한 삼색고양이인 랑이에게 자꾸 마음이 갔다.
10월의 마지막 밤, 나는 그 어린 고양이를 크로스백에 담아 자취방에 데려왔다. 지금은 고양이 수의사라며 온갖 아는 척을 다하고 있지만 그때는 정말 고양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급하게 화장실과 모래를 준비하고 아무 밥그릇 물그릇이나 일단 샀다. 호랑이를 닮은 것 같아 '랑이'라는 이름도 붙여줬다. 그렇게 나는 집사가 되었다.
초보 수의사였던 나는 무지한 집사이기도 했다. 나는 선배에게 김병목 수의사의 '고양이 공부'라는 책을 추천받아 속성으로 고양이 공부를 해나갔다.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 없이 부족했다. 나는 초보 집사들이 겪는 실수와 시행착오를 거의 빠짐없이 저질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랑이는 집사를 잘못 만난 것 같다. 우리가 10년만 늦게 만났어도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주 6일을 12시간 넘게 일하고 들어와 피곤하다는 핑계로 충분히 놀아주지 못했다. 고양이들이 불편해하는 크리스탈 모래를 한동안 사용하기도 했고 무리하게 목욕을 시키다가 내 손을 깨문 랑이를 혼내기도 했다. 결혼 후에는 집안 어른들의 반대를 이기지 못하고 두세 달을 병원에서 지내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나쁜 집사였다.
그래도 결국 함께 하게 된 우리는 한동안 평온했다. 나도 고양이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특히 행동학을 공부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랑이가 여덟 살이 되던 해, 아이가 태어났고 잘 놀라는 데다 겁이 많았던 우리 고양이는 꽤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 랑이에게 나는 전혀 의지할만한 대상이 되어주지 못했다. 스스로의 마음을 돌보지 않은 탓에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나는 좋은 아빠도, 남편도, 집사도 아니었다. 힘들게 재운 아이 방 문 앞에서 우는 랑이를 혼내는 일도 잦았고 남는 시간엔 술을 마시며 랑이를 돌보지 않았다. 제일 힘든 건 나라는 생각뿐이었다. 물속에서 코만 내놓고 겨우 숨 쉬던 나 때문에 우리 고양이는 외로웠을 것이다.
많은 것을 잃고 후회를 경험한 지금의 나는 더 좋은 집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느덧 열세 살이 되어버린 랑이의 시간을 돌릴 수는 없지만 내 친구이자 자식이고 선생님인 우리 고양이와의 소중한 지금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이 정도면 훌륭하군!'
형편없는 집사인 내 이야기를 듣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우리 고양이에 대한 미안함이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몇 가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모범적인 집사는 아니지만 고양이를 수없이 많이 만나온 수의사의 입장에서 말이다. 상당수의 집사들이 고양이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로 죄책감을 갖곤 하는데 그런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돕고 싶다.
첫째로, 많은 집사들이 고양이를 혼자 두는 것을 미안해한다. 우리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출근을 해야 하는데 그동안 집에 홀로 남겨진 우리 고양이가 안쓰러울 수밖에 없다. 혼자 있는 동안 잠만 자고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내가 오면 그제야 사료를 오도독 씹는 모습을 보면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그게 마음에 걸려 일부러 점심시간에 집에 들르는 보호자들도 있다. 우리가 일하는 동안 고양이가 혼자 있어도 정말 괜찮은 걸까?
다행히 그 정도는 아무 문제없다. 우리가 일을 하기 위해 비우는 시간 정도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고양이는 반 야행성이기 때문에 사람이 없는 낮 시간에는 잠만 자기도 한다. 고양이는 사냥감들이 활동하는 시간인 해질 무렵 어슬렁거리며 활동을 시작하기에 우리가 퇴근할 때 슬슬 사료도 먹고 화장실도 가는 것이 당연하다. 무기력하고 우울해 보일지 몰라도 고양이의 습성이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하루 먹을 양의 사료를 꼬박꼬박 먹어내고 화장실도 잘 가고 있다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하루 종일 사람과 붙어 있는 고양이들이 스트레스를 받기 쉽다. 불안정 애착을 가진 고양이들을 제외한 보통의 고양이들은 아무리 친한 대상이어도 하루의 3분의 1 이상은 따로 있고 싶어 한다. 엄밀히 말하면 눈에 띄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실제로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재택근무가 많아진 보호자들로 인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고양이들이 많았다. 갑작스러운 보호자의 생활 패턴 변화도 영향을 줬겠지만 어쨌거나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로, 어떤 보호자들은 고양이가 아픈 것이 모두 내 잘못 같다며 힘들어한다. 웬만큼 잘못하지 않고서야 고양이가 집사 때문에 아프기는 쉽지가 않다. 고양이들의 대표적인 질환들은 대부분 유전적 원인이 크다. 물론 고양이의 영양이 부족하지 않게 신경 써야 하고 몸에 나쁜 것을 자제하려는 집사의 노력은 필요하다.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해 사냥 놀이 등의 주기적인 루틴을 챙기는 것도 꽤나 중요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고양이의 질병을 완벽하게 막아주지도 않는다. 고양이가 아파졌다고 내가 고양이와 함께한 시간과 그동안 기울인 노력을 모두 부정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픈 것을 감추는 그들의 변화를 빨리 알아차리기 위해 주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해주고 먹는 양이 줄어들지는 않는지, 체중이 변하지는 않는지 체크해 주는 것만으로도 집사의 역할은 충분하다.
셋째로, 우리 고양이가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아서 속상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의 기준으로는 큰 자극 없는 고양이의 삶이 무미건조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조용한 일상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고양이는 매일 예측할 수 있는 삶, 반복되는 루틴을 원한다. 우리와 함께 매일 비슷한 일상을 평화롭게 보내는 지금이 고양이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 고양이의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고양이에게도 우리에게도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지나간 과거를 자책하고 후회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고양이와의 이별을 슬퍼하기보다는 지금 내 옆에 있는 우리 고양이를 한 번 더 바라봐 주자. 길지 않은 고양이와의 시간을 최대한 늘리는 방법은 그들과 함께 하는 지금을 온전히 누리는 것밖에 없다. 죄 많은 집사인 나도 과거를 계속 후회하기보다는 우리 고양이가 존재하는 지금에 머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랑이가 없는 미래를 굳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은 과거와 미래에 살지만 고양이는 지금을 산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어쩌면 랑이는 다 잊었을지도 모른다. 고양이를 아끼고 위하는 척 살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못난 집사였던 나와의 나쁜 기억을 말이다. 부디 그랬기를 바란다.
다 필요 없고 츄르나 가져오라고, 자기를 한번 더 만져 달라고 치대는 랑이에게 그저 고맙다. 아픈 다리로 힘차게 침대 위에 뛰어 올라와 코골이가 심한 내 곁을 밤새 지켜주는 우리 고양이. 많이 울고 보채도 좋으니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이 부디 오래오래 계속됐으면 좋겠다.
미안해하며 시간을 허비하기엔 고양이와의 시간은 너무 짧다. 나처럼 죄책감을 안고 사는 집사들이 그걸 알기를 바란다. 고양이는 다 잊어줄 테니 미안해할 시간에 츄르를 대령하고 한번 더 만져 주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다시 오지 않을 지금을 우리가 충분히 즐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