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할 수 없음을 알고 시작하는 관계

by 고양이수의사

고양이와 함께 하는 우리는 자주 불안을 느낀다.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집착하게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내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보호자들 중 상당수가 그랬고 나 역시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던 집사 중 하나다. 고양이는 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까?


가급적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는 고양이들의 본성이 큰 역할을 한다. 고양이들은 사냥꾼인 동시에 사냥감이기도 해서 가급적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는 습성을 갖고 있다. 사냥 당할리 없는 집안에서도 고양이의 이러한 기능이 작동하는 탓에 우리는 그들의 변화를 늦게 알아차리게 된다. 많이 늦은 후에야 고양이가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될까 봐 집사의 마음 한구석엔 늘 작은 불안함이 자리한다. 그런데 단지 그것 때문일까?


집사들이 고양이에게 갖는 집착과 불안을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우리가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끝까지 함께 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 누구나 알고 있지만 외면하는 사실이다. 길어도 20년 짧으면 수년, 수개월만에 우리의 동행은 끝난다. 우리가 5차원의 존재가 되지 않는 한 시간은 거스를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그걸 내가 인정하고 말고는 상관없다. 결국 우리는 헤어진다.


영원할 수 없음을 알고 시작하는 관계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 끝이 언제, 어떻게 올지 몰라 두렵기 때문이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주어진 시간이 더 소중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내색하는 것이 서툰 그들과의 이별을 후회 없이 맞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대상을 영영 잃는 슬픔과, 그보다 더 큰 죄책감이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기에.






사람들은 누구나 '관계의 단절'을 두려워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누군가에게 버려지거나 홀로 남겨지는 것에 큰 슬픔을 느낀다. 혼자인 게 더 행복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속마음은 '상처받는 관계가 싫다'는 쪽에 더 가깝지 않을까. 나를 진정으로 수용해 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혼자 고립되길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점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보다 손절하는 게 쉬워지는 요즘.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받고 버려지느니 말없는 존재들과 함께 하는 쪽을 선택하기도 한다. 적어도 그들이 우리를 먼저 버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린 더 많은 이별과 단절을 겪게 된다.


주어진 삶을 건강하게 다 살아낸 고양이도 결국은 먼저 떠나가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는 사진첩의 스크롤로 남은 그들은 마치 너도 알고 있었잖아?라는 표정으로 평온할 뿐이다. 그들에게서 후회와 죄책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 고양이들과 달리 못해준 게 많은 우리는 그들을 쉬이 보내지 못한다. 이럴 줄 몰랐다는 변명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이별에 대한 자세뿐인 듯하다.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는 것이 그 시작이다. 그걸 인정할 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만나게 된 것에 감사하고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온전히 함께 머무를 수 있다. 우리가 고양이와의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집착을 버리게 된다. 그것만 내려놓아도 많은 것이 편해진다. 오래 사는 인간에게만 그렇지 어차피 그들에게는 너무 이른 이별도 아니라는 것도 기억하자.


매사 호들갑인 우리와 달리 고양이들은 어떻게 그리 평온할 수 있을까? 고양이들은 결말을 미리 보고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그들이 그런 수고스러움을 감당할 리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고양이는 끝이나 이별 따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지도 않은 일을 생각해서 뭐 해, 볕이나 쬐자. 그게 고양이니까.


무한한 기쁨과 그에 못지않은 슬픔을 안겨 줄 그들과 함께할 준비가 되었나? 부끄럽지만 나는 우리 고양이를 데려올 때 그런 종류의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참으로 무모하고 무지했다. 다만 그때로 돌아가 누군가가 나에게 물어봐 준다면 아주 오래 고민하긴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늘 그렇게 살아왔듯이, 그날은 오지 않을 거라 굳게 믿고 호랑이를 닮았으니 넌 랑이다, 하며 그 고양이를 집에 데려왔을 것이다.


이별 따위는 없는 것처럼 영원을 꿈꾸며 설렜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