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함이 부족해! 절실함이!
일자리 매칭 행사에서 면접관이 내게 한 말이었다.
아침에, 지난번 밥 먹고 헤어진 면접 메이트(?)와 40분이 넘게 통화를 하면서 '거기 가보시게요? 언니 진짜 부지런하세요! 갔다 와서 후기 좀 들려주세요.'라며 칭찬도 들었건만 불과 몇 시간 사이 누군가에게 절실함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호되게 혼이 났다.
상담 업무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냐는 질문에 나의 상담 노하우를 설명하고 이어 업무 매뉴얼과 방침을 빠르게 숙지하여 일에 합류하겠다고 답변을 했다. 그러자 두 면접관 중 오른편에 앉은, 직책이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분이 면접을 보러 오기 전에 무슨 일인지 정확하게 다 파악을 했어야 한다고 호통이다. 또 덧붙였다.
손가락으로 내 이력서를 톡톡톡 신경질적으로 치며 야단이다.
누군가에게서 절실함이라는 단어 참 오랜만에 듣는다.
미소를 띠고 화가 난 면접관을 바라보며 속으로 외쳤다.
일전에 중년 여성 일자리 매칭을 해주는 곳에서 면접관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을 때 나보다 언니 되는 분이 대답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출퇴근이 용이하고 업무에 잘 합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나는 일자리에 지원하면서 이동 거리 편도 한 시간 정도는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요구사항에 근무지와 집과의 거리에 대해 얘기를 하는 것이 의아했다. 당시 면접관께서는 잘 고려해 보겠다고 답했다.
찬밥 더운밥 가리면 안 되는 때에, 직장과의 거리를 따진다면 이런 경우에도 절실함이 부족한 걸까. 저 면접관은 아마도 그렇게 받아들일 것 같다.
상담사 일을 하고 싶다고 결심을 했을 때 어느 날 잠에서 깬 후 처음 든 생각이 이 직업이 너무 갖고 싶다였다. 시켜준다면 먼 거리 출근도 상관없고 진상 고객도 두려워하지 않고 대응할 자세가 되어 있으며, 일을 배우기 위해 나보다도 한참 어릴 선배에게 커피 키프트카드도 선물하며 적극적인 자세로 다가가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내 머릿속 희망일 뿐이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 한번 잘못했다가 절실함이 부족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얼마나 그 일을 하고 싶은지는 상관이 없다. 앞에 앉은 저분은 자기가 나에게 면접 팁을 주는 거라면서 좋은 상사의 이미지로 스스로를 포장하고 있다. 내가 오기 전 몇 명의 지원자를 인터뷰했는지 모르지만 꽤 지쳐 보였다.
인생의 많은 것들은 양면성을 띄고 있으니 이 분도 분명 싸우자고 한 말은 아닐 것이다. 실눈을 뜨고 보면 잔소리하는 꼰대, 마음을 가다듬고 보면 조언을 주는 고마운 분이다. 몸에 좋은 약이 쓰듯이 내가 새겨들을 말은 언제나 썼다.
면접 공부를 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가 어떤 상사 스타일을 원하냐는 면접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에 대비해 연습해 놓은 답변은 '따끔하게 지적하는 상사이며 그 이유는 그래야 배우고 성장할 수 있어서'였다. 유튜브 면접 채널에서 본 내용이다. 그런 사람을 직접 경험하니 깨달음은 있되 기분은 썩 좋지가 않다.
나도 이 면접관에 대해 굳이 평가를 하려고 든다면 이 사람은 업무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넌 왜 이런 것도 모르냐!'라고 툭하면 면박을 줄 상사임에 틀림없다. 신입, 경력 상관없이 지원하라면서 신입한테 아무것도 모른다고 정색이다. 그런 와중에 이 면접관이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여서 다행이었다. 둘 중 왼쪽에 앉은 면접관이 그랬더라면
나도 모르게 눈을 부라렸을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혼나는 듯한 이 상황이 다소 당황스러웠다.
참 뻘쭘한 순간이었지만 표정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말씀 감사합니다. 잘 새겨듣겠습니다."
혼나는 것 같은 면접이 끝나고 대기석에 돌아와 앉으며 생각에 잠긴다. 나는 정말 절실할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