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_선 보는 날 감자탕

공무원 남편을 둔 전업주부들의 소소한 수다

by 쓰는수 이지수

1층 계단에 다다른 지수와 아이들은 첫 번째 턱에 슬리퍼 앞코를 탁탁 부딪치며 모래를 털었다. 눅눅한 모래는 슬리퍼에 달라붙어 떨어지는 듯하다가 다시 엉겨 붙었다. 아이들은 운동화를 벗고 양발 바람으로 바닥에 서서 신발을 거꾸로 들고 흔들어댔다. 작은 아이는 오빠를 보고 따라 하다가 중심을 읽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이의 바지가 흙투성이가 된 것을 본 지수는 한숨이 나왔다. 그렇다고 그 흙자국을 지우기 위해 특별히 더 시간을 들여 바지를 문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문득 옆으로 고개를 돌려 계단 한쪽 가장자리를 바라보았다. 깨어져 있는 계단 한쪽은 어느새 밝은 회색의 시멘트로 깔끔하게 재포장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양말에 먼지를 잔뜩 묻힌 채로 다시 운동화를 신고 계단을 올라갔다.





저쪽에서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소리였다. 지수가 이곳에 와서 신혼살림을 차리기 전에도 저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사돈 어르신들은 언제 시간이 되시나? 요즘 모 심는 철이라 많이 바쁘시지?”



지수는 그릇을 씻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차를 준비하려고 올려둔 물주전자는 칙칙 소리를 내며 끓기 시작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녀의 아버지와 연우가 앉아 있었다. 얼마 전 소개팅으로 만난 그가 집에 인사를 온 것이다. 어른들이 주선을 한 소개팅이라 중매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릴 듯하다. 지수를 만나기 전 소개팅하기를 주말 행사처럼 해온 그가 드디어 제 짝을 만나게 되었고 짝을 만난 김에 얼른 혼사를 해치우자는 본가 어르신들의 성화로 이 둘의 결혼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연우로서는 별 소득이 없던 그간의 소개팅 비용으로 자동차 한 대 값에 달하는 비용을 날렸다. 전문직종 사람들이 가입한다는 결혼정보회사 같은 곳에 돈을 쓴 것은 물 아니었다. 소개팅에 나온 여성들은 한결같이 이 남자에 대해 퇴짜를 놓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아랑곳없이 식사를 위해 최고급 양식집이나 한우 식당으로 향했다. 자기가 돈을 내는 자리였으면 절대 주문하지 않을 음식의 양과 가장 비싼 메뉴를 그녀들은 척척 시키곤 했다.





그는 이렇다 할 애프터 신청은 못 받아도 나름 소개팅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앞에 앉은 여성의 눈빛만 보고 '이번에도 꽝이구나.'라는 직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직감을 갖지 않아도 언제나 꽝이었다. 그저 비싼 음식을 얻어먹기로 작정을 하고 나온 사람들 같았다. 식당에서 소개팅녀와 먹은 음식이 소화가 되기도 전에 퇴짜를 맞았다는 소식을 소개팅을 주선한 지인을 통해 전해 듣기도 했다. 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되지도 않을 로또 복권을 꾸준히 사는 것처럼 소개팅도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나 좋다는 여자가 나오기도 하겠지 하는 마음만 꺽지 않았다.




지수와의 소개팅도 그의 주말 일정 중 하나일 뿐이었다. 주 5일 근무가 시행되기 전 그는 오전 근무를 마치고 그녀를 만났다.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지난주에 만난 여성은 살집이 제법 있었는데 2+ 한우를 먹기도 많이 먹어서 다음 달 카드 대금이 걱정이 되었다. 그럼에도 소개팅을 마다하지 않고 오늘 또 나온 이유는 그 자체가 그의 주말 루틴 중 하나가 돼버렸기 때문이었다.




함께 앉아 있던 어른들이 눈짓을 주고받더니 두 젊은 남녀를 남기고 사라졌다. 지수가 그를 보며 처음 한 말은 '저기....... 면도는 하신 거예요?'였다.



아이스브레이킹의 의미로 한 말이었다. 깔끔해 보이는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턱 주변이 거무스름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 제가 수염이 좀 금방 자라서요....."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아침에 깔끔하게 출근을 한 남편이 저녁에 돌아올 때는 턱 주변이 더 덥수룩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연우가 보기에 이번 소개팅녀는 날씬했다. 많이 먹을 것 같진 않았다.


"저쪽에 감자탕집 있는데, 거기 가서 식사하실래요?" 지수가 식당을 안내했다. 소개팅 장소가 그녀의 동네라서 근처에 괜찮은 맛집을 제법 알고 있었다. 그 감자탕집은 그녀가 친구들과 종종 갔던 곳이었다.




지수는 얼마 전 책에서 본 문구를 기억해 냈다. 처음 본 상대와 친해지려면 밥을 먹어라. 그 밥이라는 의미는 격식을 차리는 음식이 아닌 밥과 익숙한 반찬이 나오는 것이었다. 상대가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중요 포인트였고 지수는 특별히 그가 밥 먹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다.






여자는 직장에서 선을 보았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ㅡ 그래서 소개팅 남과는 뭐 맛있는 거 먹었어요?

"감자탕이요."

ㅡ 뭔 탕이요?

ㅡ 무슨 선을 보는 데 감자탕을 먹어요? 하하하



자그마한 사무실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가 삐져나왔다.

"이대리님도 선을 보거나 하면 밥 종류 드세요. 그게 좋대요."






지수는 그의 밥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허겁지겁 먹는 것도 아니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알맞은 속도로, 적극적으로 밥을 먹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감자탕의 고기도 잘 발라 먹었다. 그녀는 밥을 먹으면서 연신 그의 먹는 모습을 관찰했다.




다음 날 여자는 마음을 결정했다. 핸드백을 뒤적거려 감자탕집 명함을 찾아다. 명함에는 아직도 그날의 음식 냄새가 배어 나오는 듯했다. 명함 뒤에는 남자가 적어준 그의 휴대폰번호가 있었다. 휴대폰을 들어 남자가 적어준 전화번호를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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