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_2층짜리 쓰레기봉투를 거부하다
공무원 남편을 둔 전업주부들의 소소한 수다
이미 목까지 꽉 찬 쓰레기봉투를 꾹꾹 눌러본다. 지난번에 이렇게 쓰레기를 욱여넣다가 옆구리가 터진 전력이 있어서 이번에는 아예 박스테이프를 미리 둘러놓고 작업을 하고 있다. 아끼고 사는 사람들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덕목 중의 하나는 쓰레기봉투 알뜰하게 채우기이다. 물론 결혼 전에 엄마가 쓰레기봉투 크기만큼의 쓰레기를 봉투 위에 얹어서 테이프로 칭칭 감은 모양새보다는 나름 교양 있게 마무리를 모습이었다.
당시에 엄마도 그 모양이 우스웠는지 가족들 앞에서 그 쓰레기봉투를 자랑스럽게 들어 올려 보이고는
"야! 이것 좀 봐라!"
라고 하시며 사춘기 아이가 누군가의 방귀 소리를 들은 것처럼 깔깔 웃으시던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 엄마의 '야!' 소리에 식구들 모두 고개를 휙 돌려 엄마에게 집중을 했지만 아무도 웃지는 않았다. 지난번에 옆구리가 북 터진 쓰레기봉투 때문에 갑자기 웃음이 터졌었는데 쓰레기봉투가 이렇게 유모어감각이 있는 줄은 지수는 미처 몰랐다.
지수가 쓰레기봉투를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그래도 엄마가 하던 것만큼은 아니다. 엄마가 들어 보였던 2층짜리 쓰레기봉투는 마치 못생긴 새색시가 자기 얼굴 크기에 가까운 족두리를 쓴 것처럼 흉했다.
"나는 나중에 결혼하면 여유 있게 묶어서 버릴 거야. 아니지! 일하는 아줌마한테 그렇게 하라고 시킬 거야"
가족들 앞에서 그녀는 다짐했다. 대한민국에서 쓰레기 버리기는 부피 싸움이다. 봉투 안의 내용물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최대한 밀착이 되도록 꾹꾹 힘을 주다 보면 그것들은 점점 아래로 내려가서 여유 공간을 만들어준다. 그 공간에 나머지 쓰레기들을 채워놓고 겨우 손잡이를 잡아당겨서 묶어주면 ㅡ 물론 이때도 조심해야 한다. 괜히 힘자랑을 하다가 손잡이 부분이 찢어질 수 있으니ㅡ 그녀가 지키는 알뜰 루틴 중 한 가지를 완성하게 된다.
기분 좋게 묵직해진 쓰레기봉투를 들고 문을 열었다. 나가는 길에 마트에 들를 것이다. 아니 마트에 가는 길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다. 1층 현관문을 나서고 5개짜리 낡은 계단을 내려가는 데 왠 못 보던 검정 승용차가 집 앞에 서있다. 중요한 자리에 초대받아 가는 사람처럼 차는 깔끔하게 세차를 하고 좌르르 윤기를 내고 있다. 처음 보는 이름의 그 고급차는 외제차임에 틀림없다. 그녀가 잘 모르는 차는 대부분 외제차였다. 그 차는 이제 막 그곳에 도착을 한 것처럼 시동이 꺼지지 않은 채 있었다. 그 차의 엔진 소리는 참으로 조용했다. 누군가가 일부러 그곳에 주차를 한 것처럼 지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동네에 어울리지 않게.....'
지수는 차를 전체적으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단지에 사는 넉넉지 못한 공무원이 저런 차를 탄다면 그건 분명 뇌물을 받는 공무원일 것이다. 부모님이 사주실 수도 있다고? 그런 여유 있는 부모를 둔 공무원이라면 애초에 우리 아파트에서 살지 않았을 것이다.
'아는 사람 집에 놀러 왔겠지.....'
마치 지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윽고 차 문이 열렸다. 쓰레기봉투를 들고 있는 지수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운전자에게 집중되었다. 그 장엄한 차 앞에서 차렷이라도 해야 할 것처럼 그녀는 자리에 멈춰 서서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물론 차가 움직일 수도 있으니 지수는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차 문은 천천히 열렸다. 그 중년의 남자는 저 세단만큼 반짝이는 두피를 자랑하며 여유 있게 차에서 내렸다.
"어? 아... 안.... 녕하세요?"
지수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신기한 그 낯익은 남성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