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_황금빛 액자 속 아파트

공무원 남편을 둔 전업주부들의 소소한 수다

by 쓰는수 이지수

"8단지는 이미 대기업에 팔렸다지요?"

지수가 야채코너를 지날 때 한 여자가 무 하나를 들어 올려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다시 내려놓으며 말을 꺼낸다. 지수는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몸을 옆으로 서서 넓지 않은 통로를 지나갔다. 공무원 연금매장에는 언제나 손님이 북적였다. 그중 많은 수는 8, 9단지 공무원 아파트의 주민이며 이 동네에서 두 번째로 많은 가구수를 자랑하는 큰 단지이다. 이 큰 단지가 일반 아파트였다면 아파트가 낡아질수록 집주인들의 기세는 점점 등등해져 새롭게 아파트를 지어줄 건설사를 고르느라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는 일도 생길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들은 작고 안락한 이 아파트의 주인은 절대로 될 수 없으며 설사 이 좋은 아파트를 판매를 한다 해도 금전적으로 능력이 되는 사람은 절대로 많지 않을 것이다. 이곳은 강남이기 때문이다.


"그래요?"

두 여자는 어차피 내 것이 되지도 않을, 하지만 내가 살고 있던 임대아파트가 대기업 건설사의 차지가 되었다는 것에 호기심을 가지며 수다를 이어나갔다.

"네, 삼성인지 대우인지 벌써 어느 대기업 건설사에서 매입했대요."

"어머나! 그럼 나중에 엄청 좋은 고급아파트가 되겠네요."

"우리 같은 사람은 꿈도 못 꿀 아파트죠."




아이들의 학습지 선생님이 수업을 막 끝낸 후 안부 섞인 인사를 꺼냈다.

"9단지 헐고 나면 얼마나 좋게 짓겠어요? 새로 입주하는 공무원들은 새 아파트 살아 보고 너무 좋겠어요."

"그러니까요."

"우리는 한번 살았으니까 기회는 이제 없죠 뭐."

선생님은 가방에 펜과 잡다한 다이어리 잡다한 소지품을 챙기더니 옆에 벗어 두었던 코트를 집어 들었다.

"그게...... 많이 아쉽네요."




당시에는 몰랐다. 공무원 임대 아파트의 거주 경력이 문제가 아니라 9단지 임대아파트의 환골탈태는 일반공무원에게는 그림의 떡이 아닌 그림의 아파트가 될 것이라는 것을. 것도 최고급의 황금액자에 담긴 그림 말이다. 지수는 애호박과 옛날 소시지가 담긴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원플러스원이라고 쓰여있거나 유통기한 날짜가 조금 지나서 30프로 할인이라고 써 붙은 것이 있는지 또는 그런 상품에 가격을 낮추지 않더라도 덤으로 무언가 자그마한 팩에 담긴 식품을 테이프로 단단하게 붙여놓은 것이 있나 좀 더 둘러보았다.


계산대에는 새로운 캐셔직원이 눈에 띄었다. 지수보다 연배는 좀 높아 보였고 그 연배만큼 지수의 아이들보다는 더 나이 있는 자녀가 있을 듯 보이는 여자였다. 여자는 왠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얼핏 보기에도 이 일을 처음 하는 모양이었다. 지수보다 저만치 앞에 줄 서 있는 손님이 식료품이 가득 든 장바구니를 계산대에 가뿐하게 올려놓았다. 새로운 여자는 무엇부터 꺼내야 하나 하는 표정으로 2초 동안 바구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바구니를 온 힘을 다해 기울였다. 바구니의 윗부분이 계산대에 서있는 자신을 향해 눕혀지자 물건을 하나씩 꺼냈다.


삑...... 삑

슬로비디오가 재생되고 있는 것처럼 다른 계산대의 속도와는 확연히 다르게 '삑' 소리는 일정한 간격을 두며 느리게 이어져갔다. 지수는 장바구니를 든 채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삑 소리가 계속될수록 여자의 얼굴은 창백해져 갔다. 여자는 삑 소리가 듣기 힘겨운 듯 한숨까지 쉬며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급기야는 호흡이 곤란한 듯 숨을 몰아쉬며 삑삑 소리가 나는 계산대에 힘겹게 몸을 버티고 서있었다.

'119 불러야 되는 거 아니야?'

지수는 여자를 빤히 쳐다보며 생각했다. 여자가 걱정스러웠다. 그리고는 장바구니를 내려다보았다.

'내 거는 계산을 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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