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_최고의 고객
공무원 남편을 둔 전업주부들의 소소한 수다
여자가 첫 출근을 하기 전까지는 괜찮았다. 이왕이면 집 근처 가까운 곳에 직장을 얻길 원했는데 당장 일할 수 있고 또 당장 한 달 후에 바로 급여가 들어오는 공무원 연금매장의 계산직원은 그녀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공무원 남편이 큰돈을 벌어온 적은 없었지만 생활은 안정적이었다. 경기가 안 좋다고 뉴스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공무원 남편은 따박따박 월급을 받아왔다. 급여가 내려가는 일은 절대로 없다. 찔끔 씩 이긴 해도 해마다 약속한 대로 급여가 올랐다. 동창회 때 친구들이 들고 와서 자랑질하는 명품백과 명품 코트를 포기한다면 나름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마트에서도 지수처럼 비싸지 않은 재료 위주로 바구니를 채운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하지만 여자는 이제 돈을 벌어야 한다. 남편이 벌어 오는 것만으로는 아이들은 학원에 가기가 어려워졌다.
"그 교회는 8, 9단지 사람들이 최고 고객이라니까!"
어느 날 저녁 지수의 남편 연우는 저녁 식사 후 TV를 보면서 우리 동네 아무개 교회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고객? 교회에 고객이 어디 있어?"
지수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연우를 바라보았다. 그를 향한 눈은 이미 가늘어져 있었다.
"목사님, 전도사님. 이런 사람들은 직원 아니야? 그럼 목사님 말씀 듣고 돈 내는 사람들은 고객이 아니고 뭐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이 동네 사람들,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 받아서 십일조 따박따박 내봐. 그것보다 더 안정된 고객이 어디 있어? 십일조를 밀리기를 하겠어, 떼먹기를 하겠어?"
연우는 입을 아 벌린 채 과자 봉지를 거꾸로 세우고 윗부분을 탁탁 두드리고 있었다. 과자 봉지 안을 잠깐 들여다보더니 그는 덧붙였다.
"나중에 이 단지들 재건축 들어가고 사람들 다른 데로 다 이사 가면 그때는 재미 다 본거지 뭐. 여기 공무원들 세종시로 많이 가겠네."
지수는 고객이라는 단어는 좀 거슬린다고 생각했지만 동네 사람들을 반상회 ㅡ 물론 반상회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ㅡ 나 마트에서보다 교회에서 더 많이 만난 이후로 남편의 말에 어느 정도는 동조를 했다. 그리고 덕분에 교회가 번성하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업주부라 십일조는 못 냈지만 가끔씩 감사헌금이라고 쓰인 봉투에 2만 원 내지 3만 원 정도를 넣어서 냈다. 헌금 봉투에 헌금을 넣을 때는 분명히 만 원짜리 넣었다. 천 원짜리나 오천 원짜리를 넣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봉투의 일정한 위치에 펀치로 꾹 누른 듯 반듯한 구멍을 발견한 이후로는 꼭 그렇게 했다.
여자는 면접을 보면서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점장의 말에 쾌재를 불렀다.
'이제 둘째도 수학 학원에 보내도 되겠어!'
광탈의 반대말로 하면 광합이라고 해야 하나? 즉석합격? 아무튼 면접자리에서 합격통보까지 그리고 마트 유니폼까지 받아왔다. 지금까지는 고객이었고 내일부터는 직원이다. 이 마트의 계산 직원에게 유니폼이란 '집에서부터 입고 나가는 것'으로 정의한다. 정신없이 출근을 해서 유니폼을 갈아입으러 휴게실로 갈 필요 없이 승무원처럼 집에서부터 유니폼을 입고 마트로 향하면 된다. 그들은 모두 그렇게 했다. 걸어서 1분 거리의 직장은 이런 점이 좋았다. 갑자기 마법에 걸리는 순간이 닥치면 집으로 냅다 달려가 상황을 모면했다. 경찰관의 아내인 한 직원은 남편의 제복 옆에 단정하게 유니폼을 걸었다. 얼핏 보면 부부경찰이 있는 집처럼 보였다.
"나 내일부터 출근해요!"
"당신이?"
여자의 남편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네, 계산대 사용하는 거랑 할인카드, 적립카드 같은 거. 그런 거 다 배웠어요. 별거 아니던데요, 뭐"
여전히 남자는 별 반응이 없었다.
"집에서도 가깝고, 무슨 일 있으면 아이들 챙기기도 좋고. 무엇보다 같이 일하는 아줌마들도 이 동네 공무원들 와이프들이더라고요. 그래서 말도 잘 통하고."
여자는 걸려있는 유니폼을 보다가 그쪽으로 다가갔다. 어깨에 뭐가 묻은 것처럼 손가락으로 톡 튕기고는 아직 입지 않아 구김 없는 유니폼을 양손으로 잡고 탁탁 펴는 시늉을 했다.
다음 날 여자는 퇴근해서 오자마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여자가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남편과 아이들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지수가 다음 날 장을 보러 갔을 때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여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