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_냉장고는 어디에?

공무원 남편을 둔 전업주부들의 소소한 수다

by 쓰는수 이지수

박을 단정하게 썰었다. 도마 위에 차곡차곡 누워있는 호박들을 놔두고 지수는 냉장고로 향했다. 웬만한 집 작은방 만한 거실에 우뚝 솟아 있는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처음 이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할 때 저 커다란 냉장고는 작은방에 곰처럼 얌전히 들어앉아 있었다. 당연히 그때는 냉장고를 사용하려면 작은방으로 향했다. 거실도 진짜 거실처럼 3인용 소파와 tv 등 거실이라는 모양새를 나름 유지하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연우는 따로 자야 했다. 그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다른 식구들, 특히 아기가 툭하면 깨는 바람에 식구들이 다 함께 한방에서 자는 것은 무리였다.


여름에는 괜찮았다. 겨울에 자기에 거실은 다소 추웠다. 손을 죽 뻗으면 닿는 곳에 현관문이 있어서 마치 문옆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손을 뻗으면 닿는 이라는 표현은 꼭 비유적인 얘기가 아니라 정말 연우가 거실에 누워서 스트레칭하듯 손을 쭉 뻗으면 현관에 벗어놓은 신발에 손이 닿았다. 이 동네 사람들이 거실에 앉아 있을 때면 넓은 집 사람들이 괜히 문옆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찬 공기가 문틈으로 쉭 들어와서 마주 보고 있는 가정통신문이나 월간 식단표를 펄럭이게 했다. 그 가정통신문과 월간 식단표는 여느 집처럼 냉장고에 붙어 있었다. 날이 추워지자 연우는 작은 불만을 내뿜었다.


"시끄럽게 냉장고 옆에서 어떻게 잠을 자?"

'자기가 잠들면 냉장고 소리도 이길 텐데.... 뭔 새삼스럽게.....'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냉장고는 자신의 전용방에서 쫓겨나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냉장고였다. 정확히 정면은 아니었지만 꼭 동장군처럼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를 맞이했다.



"냉장고방?"

늦은 나이에 유학 중인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지수는 냉장고방이라는 단어를 썼다. 통화 중에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다가 무심코 나온 말이었다.

"뭐..... 그런 게 있어."

"어머나! 너 정말 시집 잘 갔다! 돈 좀 있는 집 공무원이구나? 어머나 대에박! 냉장고 두대 정도 쓰는 거야? 김치 냉장고까지 세대겠네?"

지수는 그저 웃기만 했다. 냉장고방...... 틀린 표현은 아니지. 저 방에서 냉장고가 제일 크니까.




동네 어느 집사님 집에 구역예배를 드리러 갔을 때 지수는 이 집 거실이 꽤나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늑하다 못해 촛불을 켜둔 듯 그윽한 거실이었다. 그 집에는 옷장이 거실에 떡하니 나와 있었다. 어두운 색의 옷장은 좁은 거실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거실에 냉장고를 둘래 장롱을 둘래 묻는다면 한참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냉장고가 눈에 익은 지수에게는 오래된 짙은 갈색의 옷장은 다소 부담스럽게 보였다. 게다가 어두운 옷장보다는 좀 더 밝고 문에 불빛도 있는 냉장고가 조금은 산뜻해 보였다.


'무슨 장롱을 마루에 놔뒀대? 아휴 답답해......'




저 덩치 좋은 냉장고를 어디에 둘 것인지는 이곳에 이사 오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고민인 것 같았다. 언젠가 쓰레기를 버리려고 밖에 나온 지수를 누군가가 다급하게 불렀다.

"저기요!"

지수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저쪽에서 한 젊은 청년이 반가운 듯 지수 곁으로 달려왔다.

"안녕하세요?"

청년은 잡상인 같지는 않았다. 지수는 고개를 까딱했다.

"혹시...... 냉장고 어디에 두셨어요?"


청년은 공무원이 된 지 오래돼 보이지는 않았다.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서울에 방을 얻었으니 본가가 서울은 아닐 것이다. 결혼을 하기에는 좀 젊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공무원 합격했다고 부모님들이 꽤나 어깨에 힘주고 다니시겠구먼! 몇 급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에 거주지를 알아보는 거면 국가공무원인가?'


지수는 청년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아~ 냉장고가 부엌에 안 들어가죠?"


이 동네 사람들은 도대체 냉장고를 어디에 두는지 청년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옛날식 작은 냉장고는 부엌 냉장고 자리에 쏙 들어갈 거예요. 근데 요즘 양문형 냉장고는 아마 안 들어갈 걸요."

"그래서 어디에 두셨는데요?"

청년은 정중한 손짓으로 지수를 가리키며 물었다.


'혼자 사시는 거라면 방 하나를 냉장고에게 내어주고 냉장고방이라고 이름 붙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말해 주고 싶었다.


지수는 냉장고 문을 연채 어깨로 문이 닫히지 않게 받치고는 계란을 세 개를 집었다. 그러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하나를 내려놓는다. 밀가루를 개어 애호박을 부치고 계란찜을 할 예정이다.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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