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 잡는 책, 참 읽기 힘들다

쉽게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by 글장이



생각하라

사색하라

생각을 표현하라

뭐든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라

내게 맞는 하나를 골라라


최근에 읽은 책에 나오는 표현들입니다. 그것도 한 꼭지 마지막 부분에 적힌 핵심 메시지들이죠. 더 이상 아무런 설명도 없습니다. 생각하고 사색하고 생각을 표현하고 뭐든 나만의 것으로 만들고 내게 맞는 하나를 고르고. 다 좋은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머리가 나빠서인지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하라니? 어떻게요? 그냥 생각이야 매일 매 순간 하는 것인데, 독서와 글쓰기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 매일 해야 하는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사색하라! 이 말을 누가 못합니까. 세 살 먹은 애기도 "사색하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좋은 말이죠.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사색일까요? 사색이란 말 자체도 어렵거니와, 그걸 매일 실천한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저만 바보라서 그런 걸까요? 다른 사람들은 다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요? 제가 서점에 꽂힌 아주 어려운 분야 전문서적을 골라 구입하고 읽은 게 아닙니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일반서입니다. 그것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작가의 책이고요. 인기도 많고 팬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화가 납니다. 기고만장한 탓일까요? 왜 책을 이렇게 "쉽게" 썼을까요? 독자가 읽기에 쉬운 게 아니라 작가가 쓰기에 쉬운 책입니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해야 한다 공자님 말씀만 죄다 옮겨놓았을 뿐,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예시나 구체적 설명은 하나도 없습니다.


글쓰기 제 1원칙. 쉽게 써야 합니다. 작가가 쓰기 쉽게 쓰는 게 아니라, 독자가 읽기 쉬워야 합니다. 여기에서 '쉽다'는 표현은 세 가지 의미를 포함합니다. 첫째,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요. 둘째,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알 수 있어야 하고요. 셋째, 즉시 실천 가능해야 합니다.


적어도 자기계발서라면, 독자의 마음과 행동을 동시에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책 읽는 독자의 마음은 어떨까요? 더 알고 싶고, 더 나아지고 싶고, 더 성장하고 싶어서 책을 펼치는 거겠지요. 그런 독자에게 뜬구름 잡는 소리만 잔뜩 해대는 것은 작가로서 마땅치 못한 태도입니다.


사색하라!

예를 들어, 책에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문장을 읽었다고 가정해 보자. 문장 그대로 해석하면, 모든 꽃은 흔들리는 가운데 핀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생각을 거듭하면, 꽃 말고 다른 모든 것들도 '흔들리며' 성장한다는 깨우침에 이를 수 있다. 거기에 더 깊이 생각을 물고 늘어지면, 결국은 "모든 사람은 시련과 고통 겪은 후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책에서 읽은 좋은 문장을 겉으로 드러나는 의미로 해석하는 데에서 멈추지 말고, 이렇게 저렇게 각색하고 변형하는 과정을 거듭해야 한다. 문장 하나로 시작해 삶의 통찰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한 마디로 '사색'이라 할 수 있겠다. 독서와 글쓰기의 효과를 제대로 누리고 싶다면, 매 순간 사색해야 한다.


작가는 안내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행지에 처음 온 관광객들에게 볼 만한 거리들을 소개하고, 그것들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 사진 찍을 만한 장소, 점심 먹을 만한 맛집, 다시 집합해야 하는 시간까지 쉽고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알려주어야 합니다.


가끔 초보 작가 중에도 "내가 이렇게 쓰면 독자가 알아서 생각할 것 같은데요"라고 주장하는 사람 있습니다. 충분히 머리가 좋고 공부 많이 했고 추리하는 걸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대상으로 하는 독자의 수준은 초등학교 3학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래야 쉽고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쓸 수가 있으니까요.


우주를 쓰는 건 쉽습니다. 넓고 광활하고 아름답다고 쓰면 되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써야 할 것은 우주가 아니라, 우주 속에 별 하나, 별 속에 마을 하나, 마을 속에 집 하나, 집 속에 가족 하나, 가족 중에 사람 하나, 사람 중에 사건 하나, 사건 중에 마음 하나, 마음 중에 찰나의 느낌입니다. 그러니, 예시를 들거나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써야 하는 게 당연하지요.


"선생님! 수학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응, 열심히 하면 돼."


내 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질문을 했는데, 위와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고 가정해 보세요. 기분 어떻습니까? 선생님 말씀에 공감이 가나요? 저 같으면 학교 찾아 갈 것 같습니다.


퉁치는 대답에는 성의가 없습니다. 퉁치는 표현에는 정성이 없습니다. 퉁치는 단어에는 배려가 없습니다. 적어도 글 쓰는 작가라면 독자를 위한 성의와 정성과 배려가 가득해야 마땅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내용을 쓰든 독자가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구체적으로 쓰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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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구름 잡는 표현 가득한 책을 읽으면서 반성도 하고 후회도 합니다. 독자들 보기에 부끄러워 제 얼굴도 시뻘겋게 달아올랐습니다. 그 동안 출간한 책에 수없이 적히 퉁치는 표현들이 떠올라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행입니다. 지금에라도 제가 쓰는 글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힐지 알게 되어서 말입니다. 출간을 앞두고 있는 아홉 번째 책을 다시 퇴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지막까지 한 줄이라도 더 고치고 다듬어야겠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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