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때문에 힘들 때는 글 쓰는 게 최고
힘든 하루
한 번씩 이럴 때가 있다. A는 안 챙겨준다고 툴툴거리고, B는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고, C는 자기 책임을 나에게 돌리고, D는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하고, E는 자기 책임은 소홀히 하면서 내 책임만 묻고...
종일 사람에 시달렸다. 예전처럼 소리 버럭 지르고 험한 말까지 해가며 있는 대로 성질을 다 부리고 싶었지만, 나도 그런 말과 행동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다시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마음 추슬렀다.
그럼에도 이 밤에 사무실에 혼자 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길 때면, 낮 동안 일어났던 모든 사람 문제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 마음에 풍파를 일으킨다. 가만히 있어도 욕이 절로 나온다.
잘난 사람도 없고 못난 사람도 없다. 내가 그들보다 딱히 나을 것도 없다.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다. 위대한 성인이 아닌 이상, 비슷한 수준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내가 그들보다 훨씬 차원 높은 존재라면 지금처럼 속이 뒤집어지지는 않았겠지.
문제는 해결하면 된다. 해결 불가한 문제는 내려놓으면 된다. 사람 문제는 다르다. 내 힘으로 다른 사람 마음 바꾸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내려놓기엔 내 마음이 번잡하다.
인간관계에 관한 책을 수도 없이 읽었지만 불과 하루 동안 인간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대면하고 나면 온 몸에 힘이 쪽 빠진다. 멱살을 잡고 한 대 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조건 참는 것도 사람 할 짓이 못 되고. 그렇게 홀로 앉아 어둠 깔리는 걸 가만히 보고 있다가 마음 정했다. 글을 쓰기로.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얼마나 스스로를 형편없는 인간으로 보이게 만드는지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듯하다.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혹시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 아닌가 골백 번도 더 생각해 보았다. 길을 막고 아무나 붙잡아 물어 봐도 이건 아니다 싶은 일들이다.
화살표를 내게 돌린다. 나는 그런 적 없었던가. 나는 누군가에게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려가며 억지를 쓰고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어린 아이처럼 끝도 없이 징징거리고 불평과 불만을 터트린 적 없는가.
그래. 나도 그런 적 있겠지. 철이 없어 미처 생각지 못한 때가 많았겠지.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오늘 일들이 다시 스물스물 떠올라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한 컵을 통째 들이마신다.
그 와중에 톡이 몇 개 도착한다.
"사부님 덕분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안 만났으면 어쩔 뻔 했나요!"
"사부님! 은행나무가 너무 예뻐서 사진 보내드려요!"
"자료 감사합니다! 사부님 건강 잘 챙기세요!"
"대표님! 내일 뵙겠습니다! 덕분에 공저 또 한 권 출간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표님! 이번 책 너무 좋아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얼어붙은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염장을 뒤집는 사람도 있지만, 나를 응원하고 아껴주고 존중해주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에 무한 행복을 되찾는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충분히 다른 이들로부터 부러움 살 만하다.
사람 때문에 다친 마음 사람으로 치유한다. 신이 내게 못된 사람들을 마주하게 하는 이유는, 주변에 착하고 소중한 이들이 있다는 사실 잊지 말라는 주의 또는 경고를 주는 거라고 애써 생각을 정리해 본다.
누가 잘되면 그냥 축하만 해 주면 될 텐데. 그 누군가의 잘됨이 자신에게 어떤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사사건건 트집 잡아 시비를 붙인다. 남들 들으면 놀라 자빠질 정도의 도움을 주었음에도 자꾸만 더 많이, 더 많이, 더, 더, 더 도와 달라는 소리만 늘어놓는다. 약속 어기겠다는 말을 어쩜 그리 당당하게 하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나는 내 글이 예쁘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내용으로만 채워졌으면 좋겠다. 오늘은 정말이지 사람이란 존재가 싫어지는 날이었다. 종일 꾹꾹 눌러 참고 참다가 엊그제 제삿날 체기가 다시 돌아와 탈이 나고 말았다. 이번엔 소화제도 통하질 않는다. 열까지 나기 시작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이익과 자기 생각만으로 살아가는 듯하다. 어쩌다 남을 위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 나타나면 대단한 뉴스거리가 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테지. 오늘은 정말이지 내가 리더라는 사실에 회의가 느껴질 정도였다.
한 가지 희망적인 사실은, 과거 겪었던 수많은 사람 문제 덕분에 내가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 그래서, 오늘 겪은 이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또 나를 더 크고 강하게 키워줄 거라는 믿음을 갖는다는 거다.
나는 내 삶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지고 풍요롭고 행복해질 거라는 사실에 추호도 의심이 없다. 나는 누군가에게 탓을 돌리거나, 억지를 부리거나,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거나, 징징거리지 않으니까. 적어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니까.
사람 때문에 힘든 시간을 슬기롭게 보내는 최고의 방법은 글쓰기다. 잠시에 불과한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내 마음은 가라앉았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강해졌다. 그래. 다 이유가 있을 거다.
오늘을 잘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다. 내일은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 될 테고. 이렇게 살아가고, 또 성장한다. 사람을 배워가면서.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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