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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Dec 09. 2024

나를 막을 수 있는 것들

기어이 하겠다고 하면


일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 받을 때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업무량이 많은 것도 부담이 되고, 기대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도 힘 빠지는 일입니다. 사람 사이 오해와 갈등은 말할 것도 없고,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것도 때로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 닥치면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몇 시간 혹은 며칠 푹 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 집어치우고 어디 조용한 데 가서 '나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인생에 대한 회의, 사람에 대한 실망,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싶은 의구심. 인생 참 힘들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가끔은 제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나 의문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무려 50년이 넘었습니다. 남들 겪지 않는 일도 경험하면서 절망과 좌절도 많이 했는데요. 쓰러져 다시는 못 일어설 법도 했을 텐데, 어떻게 매번 기를 쓰고 다시 살아냈나 궁금하기도 합니다. 저뿐만 아닙니다. 사람들은 대체 어떤 힘으로 살아내고 또 살아내는 것일까요.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동력이 무엇이든간에, 결론은 이겁니다. 우리 모두는 여간해서는 무너지지 않는다! 네, 맞습니다. 힘들다 어렵다 투덜거리고 푸념 쏟아내고 한숨 쉬지만, 결국은 다 해내고 이겨내고 극복합니다.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고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그래서 실망하고 좌절하고 무너지기도 하지만, 결국 또 어찌하여 일어서고 한 걸음 내딛고 살아내는 것이지요. 


이쯤되면, 한 가지 확실한 진실을 알게 되는데요. 그것은 바로, "무엇도 나를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를 멈출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벌써 그것 앞에서 쓰러져 완전히 박살 난 인생을 살거나 생을 멈추었을 겁니다. 지금껏 살아왔다는 말은, 그 무엇도 나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지요.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서 안강에 다녀오셨습니다. 여든 넷 아버지가 직접 운전하시는 게 영 불안하고 못마땅했지만, 젊은 시절 낭만을 돌이키고 싶다는 말씀에 키를 넘겨드렸지요. 


시골 장터에서 이것 저것 많이도 사가지고 오셨습니다. 유독 눈에 띄는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한아름에 안아 들기도 힘들 정도의 늙은 호박이었습니다. 


"이거 잘라서 전 부치면 그 맛을 따라올 음식이 없다."

마치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도 좋아하긴 마찬가지였는데, 그래도 표정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씽크대 위에 올리기조차 버거웠고, 칼로 호박을 자르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손도 못 대게 하고, 어머니 혼자서 그 큰 호박을 손질하여 직접 전을 부치셨지요. 


식탁 위에 오른 노란 호박전은 그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어머니 고생하신 보람 있고, 아버지는 손주한테 한 번 먹어 보란 말씀도 없이 허겁지겁 드셨습니다. 영덕 대게 다음으로 좋아하시는 음식이 호박전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저 멀리 살고 계신 어머니의 사촌 언니가 쿠팡으로 고구마를 보내 왔습니다. 이게 무슨 고구마인가. 검은 봉지에 무슨 비닐 포장만 잔뜩 들어 있는 것 같아서 하나씩 꺼내 보았는데요. 고구마를 얇게 슬라이드로 썰어서 조리까지 다 한 상태로, 전자레인지에 30초만 돌리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신기하다! 신통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진공 포장 된 고구마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또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세상 참 편리하다는 말씀을 백 번쯤 하신 듯합니다. 


고구마 아니라 어떤 음식이라도 요즘엔 아주 간편하게 구하고 먹을 수 있게 되었지요. 만약 제가 달라진 세상을 설명하고 주장하면서 앞으로 호박전도 이렇게 주문해서 먹자 하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뭐라고 하실까요?


아무리 세상이 달라지고 음식 장만하여 먹기가 전에 없이 편해졌다 하더라도, 아마 두 분은 차를 몰고 시골 장터에 가서 옛 음식 재료를 직접 사가지고 오실 겁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막을 수 있는 사람? 막을 수 있는 방법? 그런 건 없습니다. 


두 분 연로하셔서 힘도 하나도 없고, 별 것 아닌 동작 하나 하는 데에도 한참 걸리고, 의사 표현도 예전처럼 똑 부러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두 분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음식이란 자고로, 재료를 준비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며, 정성 담아 직접 만들어야 제맛이라는, 두 분의 철학이자 가치관이 워낙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피곤하고 지친다 해도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기어이 할 수가 있고요. 스트레스 받고 속상하다 해도 집중해서 하려면 또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꾸만 외부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나 내면 심리 상태를 "무슨 일을 하지 못하는 이유와 핑계와 변명"으로 삼곤 하는데요. 그 어떤 사건이나 상황도 내가 그 일을 하지 못한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하려고만 했으면 얼마든지 하고도 남을 만한 일이었을 테니까요. 


무엇 때문에 하지 못했다는 말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그 '무엇'이란 게 나를 가로막을 수 있는 엄청난 존재여야만 합니다. 세상에 그런 존재가 있을까요? 대체 무엇이 나를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심지어 감옥조차도 내 몸뚱아리는 가둬놓을 수 있었지만 생각이나 글 쓰는 행위는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도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게 있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 사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글 한 편 쓰면,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분량을 채우기만 한다면, 조건 없이 천만 원을 받는다 가정해 봅시다. 어떤 이유로 쓰지 못했다 말할 사람이 있을까요?


하지 못한다, 할 수가 없다, 하기 힘들다 쪽으로 계속 생각을 몰고 가니까, 그런 이유들이 자꾸만 정당화 되는 겁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그 일'을 하는 사람 있는가 하면, 훨씬 나은 상황에서도 못할 수밖에 없었다 나자빠지는 사람 있는 법이지요. 


조금 다른 경험을 한 덕분에(?), 저는 어떤 일을 하기 싫거나 힘든 상황에 처할 때마다 "그래도 감옥 가는 것보다는 낫잖아!"라고 중얼거리며 힘을 냅니다. 지나온 삶에서 겪었던 최악의 순간을 떠올리며 지금을 버티는 거지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한 줄이라도 쓰면 죽여버리겠다며 협박하는 사람이 있지 않는 한, 누구나 오늘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게 인생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하지 못했다는 정당성을 설명하는 건 인생이 아닙니다.


돈이나 성공도 중요하겠지만, 그 무엇도 나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성취해 나아가는 모든 과정이 물질적 부를 형성하는 것보다 훨씬 즐겁고 행복합니다. 실제로 '나'를 증명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돈과 성공도 따라오게 마련이고요. 


블로그에 글 한 편 쓰겠다는 각오는 맨날 무너지는 사람이, 네이버에서 돈 천 원 준다니까 사정없이 글을 쓰는 모습 보았습니다. 용산과 여의도만 비정상이 아닙니다. 자칫하면 우리 모두 정상적인 삶을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네이버가 아니라 내가 나를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밀리지 마세요. 무엇도 '나'를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강하고 멋진 존재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오늘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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