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내지 말고 살아야지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짝사랑했다. 불 같았다. 너무 어린 탓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어리석은 때문이었는지, 나는 선생님도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갈 즈음 선생님은 결혼하셨다. 나에게 한 마디 말도 없이.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때부터 바닥을 치기 시작한 성적은 고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공부 못하고 말썽만 피우는 학생. 낙인 찍히고 말았다.
내가 짝사랑했던 선생님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잘만 사는데, 나는 갈수록 바닥만 치는 인생을 살았다. 누구 탓인가. 선생님을 원망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다. 나 혼자만의 잘못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독서실에 다니면서 한 살 많은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라고, 나 혼자만 생각했다. 함께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가끔 독서실 앞 벤치에 앉아 대화도 나누고, 서로 속 얘기까지 다 하고. 그래서 당연히 나는 그 여학생의 마음이 나와 같을 거란 착각을 했던 거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보고 싶다는 말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다른 오빠들과도 허물없이 지냈고, 가끔은 나에게 하는 것보다 더 싹싹하게 대하며 환하게 웃는 표정 보이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이렇게 팽개치고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사랑이 아니었다. 나 혼자서만 난리를 친 거였다. 허탈하고 허무하고 공허했다. 누구의 잘못인가. 내 상처는 누가 만든 것인가. 그 여학생의 탓이라고 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은 내 잘못이었다. 오직 나만의 잘못이었다.
돈을 좋아했다. 돈도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치열하게 돈을 좇았고, 돈도 나에게 가득 들어왔다. 영원히 그럴 줄 알았다. 어느 순간, 돈이 나를 떠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붙잡고 발버둥쳤지만, 돈은 웃기만 했다. 우리 사이가 그저 장난이었고 재미였다는 듯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물었다. 애원도 했다. 화도 냈다. 돈은 그런 나를 점점 더 멀리하기 시작했다. 이미 떠난 마음 돌이킬 방법이 없었다. 술만 마셨다.
돈이 나를 떠난 건 누구 탓인가. 사랑인 줄 착각했던 내 잘못이다. 돈은 아무 잘못 없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도,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살 많은 여학생도, 그리고 내 삶을 바닥으로 치닫게 했던 돈도. 그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나 혼자서 마음병을 앓고, 혼자서 난리를 치고, 혼자서 객기를 부렸던 거다. 그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나 혼자서 그걸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거다.
사람이든 돈이든 다른 무엇이든,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유약하고 위태롭고 나약해서 어딘가에 기대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상대가 나를 좋아하고 내 마음 만큼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줄 착각하게 된다.
모든 상처의 시작은 마음을 내는 데에서 비롯된다. 세상은 내 마음과 같지 않다. 모든 존재는 각자 자신의 마음이 가는 곳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났던 그 여학생은 잘생기고 몸 좋은 오빠들을 좋아했다. 그건 그녀의 취향이다. 얼굴과 몸을 그녀의 입맛에 맞게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그렇구나 하면 될 일이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마음이 너무 아프고 괴롭다는 것. 괜찮다. 참으면 된다. 참고 또 참다 보면 시간이 흐르고, 시간이 흐른 후에는 아물고 낫는다. 그들의 행복을 빌어주라고? 에이.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다. 더도 말고, 나 만큼만 아파라.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을 내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상처가 있다. 돌려받지 못하는 설움. 안됐지만 팔자다.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내지 말길. 이것도 병이라서 나이 먹어도 낫지 않는다는데. 어쨌거나 조금이라도 덜 아파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