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럽고 서글펐던 지난 밤

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Mar 20. 2025

새벽 2시. 응급실에는 주로 노인 환자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저 입구쪽에는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저씨 한 명이 침상에 걸터앉아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습니다. 통로를 오가는 간호사들은 그를 보며 빨리 누워 자라는 말을 수십 번도 더 했습니다.

7개월 넘게 병원 다니면서 치료도 받고 약도 먹고 겨우 정상 수준으로 회복시켜놓은 몸이 최근 들어 다시 무너지고 있습니다. 의사는 저를 보고 무리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모든 일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당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가만히 누워 응급실 천장을 바라보는데, 사는 게 참 서럽고 서글프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할아버지 곁에는 할머니가 앉아 있고, 할머니 옆에는 할아버지가 앉아 있고, 아들 옆에는 엄마가 앉아 있고, 아빠 옆에는 딸이 앉아 있습니다. 간호사는 수시로 제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보호자 없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잠시 안정을 취하면 금세 퇴원할 증상에 불과한데 보호자는 무슨 보호자. 수술 동의서를 받아야 할 상황도 아닌데 자꾸 보호자 타령을 하길래 그냥 딱 잘라 말했습니다. "제가 다 책임질 테니 의사 선생님과 직접 얘기하겠습니다!"

링거 맞고 약 타고 새벽 5시쯤 병원을 나와 사무실로 곧장 왔습니다. 한숨도 못 자서 피로가 몰려왔고, 응급실에서 긴장을 한 탓인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무실 맨바닥에 잠시 누웠습니다.

가끔은 저를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에게 있어 저란 존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저는 저 자신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저를 챙겨주는 분들은 왜 그리 몸을 혹사하느냐고 말하겠지만, 저도 나름 제 몸을 챙기며 살아갑니다. 도저히 인력으로 안 되는 어떤 문제가 조금 생겼을 뿐이고, 다행히 잘 조치해서 넘어갔으니 별 문제 될 것도 없습니다.

몸이 약해지면 정신도 무너집니다. 정신 무너지면 반드시 몸에 이상이 생깁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몸도 약해진 상태에서 최근 제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을 겪다 보니 마음까지 무너진 거지요. 몸과 마음이 동시에 쓰나미를 맞으니 견뎌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최소한 수강생들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이 악물고 강의 다 지켜냈습니다. 매일 글도 쓰고 책도 읽고 강의 자료도 만들었습니다. 무리하면서까지 그랬다는 게 아니라, 어떤 문제나 상황을 핑계로 회피하거나 숨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고집이란 게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누군가를 대하면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사람이 아파서 쓰러질 지경이라 응급실에까지 갔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려야 하는 일인가. 제가 하는 일이 저에게는 소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소명이라 부를 만한 일에는 고집을 부릴 만도 하지요.

최근에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내가 그들에게 전혀 소중한 존재가 아니었구나 하는 실망과 허탈함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들에게는 나 말고도 더 소중한 누군가가 있구나 하는 서글품입니다.

회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힘이 누구 못지않게 강합니다. 저는 또 다시 일어설 것이고, 다시 제 삶에 최선을 다하며 열정적으로 살아갈 겁니다. 다만, 어젯밤에는 참 서럽고 서글퍼서 온갖 감정이 다 올라오더군요. 제가 느낀 감정이 무엇이든 다 소중하다는 생각에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오늘 이 글을 다시 열어 볼 때면, 아마 저는 또 피식 웃음이 날 테지요. 이전의 상처와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치유와 성장이 이루어진 겁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꼭 건강 챙겼으면 좋겠습니다. 서러워도 몸 건강하면 이겨낼 수 있고, 서글퍼도 몸 건강하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몸 망가지면 손해 보는 건 자신뿐입니다. 사람에 기대지 말고 자기 몸에 기댈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