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는 위로받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어야 한다
고령 시장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표정은 다행히 밝았다. 심장, 판막, 그리고 심장 박동기 장착까지. 세 번의 큰수술을 앞둔 사람의 얼굴로 보이지 않았다. 굳이 내색하려 하지 않는 것인지, 정말로 마음이 편안한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고령 오일장은 4일과 9일이다. 그저 촌동네 재래시장 정도로만 알았는데, 식당 앞에 주차하고 시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대구 경북 사람 전부 다 모인 것마냥 발 디딜 틈 없었고, 육해공 식거리에 농기구까지 없는 게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오랜만에 북적이는 시골장에 들어선 거라서 얼핏 봐도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아픈 아주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나선 길이지만,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아 있어서 이것 저것 눈에 띄는 대로 다 샀다.
검은 비닐 봉지 여러 개를 차 트렁크에 싣고 아저씨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벌써 <복덩이 식당>에 자리를 잡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반갑게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셨다.
삼겹살 주문하고, 공기밥에 된장찌개로 점심을 함께 했다. 대화는 어쩔 수 없이 아주머니 수술 이야기로 흘렀다. 1월 21일에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고, 이후로 하나씩 수술 경과를 봐 가며 세 번에 걸쳐 큰수술을 진행한다고 했다.
어른들 말씀하시는 중이라 끼어들지 못했지만, 나는 어머니가 제발 좀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고, 요즘은 기술이 좋아가지고 눈 딱 감았다가 뜨면 수술 끝난다 하대요. 별 것 아닙니더. 마음 편안하게 수술받으면 돼요."
손가락 수술도 아니고, 무릎 수술도 아니고, 심장과 판막 수술이다. 숨 쉬기가 곤란하고, 자주 숨이 차고, 통증까지 심해서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대구 영남대 병원에 갔었는데,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니 환자가 직접 선택해야 한다고. 그래서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서 결국 수술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런 얘기를 이미 다 자세히 들었는데, 거기다 대놓고 "별 것 아니"라니. 물론, 어머니는 상대를 위로한다는 뜻으로 그런 말을 했겠지만, 정작 당사자인 아주머니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막말로, 죽을지도 모르는 수술을 받으러 가는데 어떻게 마음을 '편안하게' 먹을 수가 있겠는가.
위로의 전제는 공감이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상대방의 마음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을 때, 그럴 때 말을 건네야 위로가 된다. 만약,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라면, 그저 입 다물고 가만히 들어주는 것만으로 그쳐야 마땅하다.
오랜만에 나들이 가서 시골 시장 둘러보며 이것 저것 사고 싶은 걸 다 샀으니 그 마음이 오죽 들떴겠는가. 당신이 들뜬 기분이라 하여 큰수술 앞둔 사람한테까지 마구 들든 기분으로 이야기하면, 상대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입을 다물어야 한다. 어머니는 나이가 들수록 말씀이 너무 많아졌다. 옳고 그름은 물론이고, 사리분별도 약해져서, 지금 이 말을 해야 할 때인가 분간을 거의 하지 못한다. 아무 쓸데없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도 너무 많이 자주 하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얼마나 고려하고 이해하며 말하였는가. 위로랍시고, 상대방의 심정은 짚어보지도 않은 채 내 기분 따라 마구 말을 전한 적은 없었는가. 상대방을 위한 위로를 하였는가, 아니면 내 마음에 흡족한 위로를 하였는가.
위로의 대상은 상처받은 당사자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무 말도 중요하지 않다. "난 그저 위로하려 했을 뿐인데"라는 말은 의미 없다. 누가 어떤 의도로 말을 했든간에, 상처받은 당사자가 위로받지 못했으면 다 헛소리다.
많은 위로하려는 자들은 자신의 본심과 진정성에 무게를 둔다. 정작 위로받아야 할 상대방의 상황과 심정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다. 그래서, 상대방이 자신의 위로를 받아주지 않을 때마다 "사람의 성의를 무시한다"라며 화를 내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상처받은 사람은 아프다. 힘들다. 괴롭고 외롭다. 그들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 하지만, 위로하는 법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라면 섣불리 자기 기분에 따른 위로 따위 하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그저 곁에 머물면서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는 편이 훨씬 낫다.
인생이 완전히 무너졌을 때, 나는 숱한 사람들의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대부분 나를 위한 위로라기보다는 위로하고 있는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는 그들 자신을 위한 위로가 훨씬 많았다.
가슴 깊이 파고드는, 진짜 위로가 이런 거구나 느꼈던 적 있다. 회사 동료이자 친한 친구였는데, 내가 가장 힘든 시기에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힘들겠지만 조금만 견뎌 봐. 은대 니가 언제까지나 계속 힘들 사람은 아니잖아."
사업 실패 후 절망과 좌절의 시간을 보내다가, 그때 처음으로 다시 일어서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었다. 이전까지 난 그저 모든 게 끝났다고만 생각했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아직 내 인생이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위로해주면 고마운 줄이나 알지. 무슨 진짜 위로 가짜 위로 타령이냐."
세상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많다. 주로 시련과 고통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주면 그냥 닥치고 받고 감사한 줄이나 알아라!"라는 의미다.
그렇지 않다. 안 줄 거면 말고, 줄 거라면 제대로 주어야 한다. 감사, 위로, 희망, 용기 등 세상에는 좋은 말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하더라도 그 방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마음 없이 입으로만 감사를 외치는 사람 많고,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는 위로도 많고, 대책 없는 낙관을 희망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많고, 아무런 준비 없이 마구 덤비는 객기를 용기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많다.
위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감정의 전달이다. 이 아름다운 행위가 오해와 곡해로 잘못 해석되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상대를 위하고 싶은 마음이라면, 진심으로 그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위로여야 한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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