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질문으로 반평생 이야기를 꺼내는 기술
"저는 특별한 경험이 없어요. 쓸 이야기가 없어요."
이렇게 쓸 만한 이야기가 없다며 하소연하는 이들을 종종 만납니다. 글 쓰고 싶고 책도 내고 싶은데, 막상 쓰려니 인생 마땅한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죠.
냉철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무 살만 넘었다 해도 무려 7,300일을 살아왔다는 건데요. 그 오랜 날들의 경험 속에 글로 적을 만한 이야기가 없다는 게 과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일까요? 게다가, 서른 마흔 쉰 예순 등 더 오랜 세월 살아온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쓸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다만 자기 안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는 방법'을 모를 뿐입니다. 오늘은 그 방법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5가지 질문입니다. 이 5가지 질문에 답하면, 최소 50개의 글감이 쏟아져 나옵니다. 평범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자기 삶에 50개의 이야기가 잠들어 있다는 걸 직접 확인하게 될 겁니다.
왜 쓸 만한 이야기가 없다고 느끼는 걸까요? 방법을 알려드리기 전에, 이 착각의 원인부터 짚어야 합니다. 쓸 이야기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공통된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글감은 특별한 경험에서만 나온다는 믿음입니다.
히말라야를 등반한 이야기. 사업을 해서 100억을 번 이야기. 죽을 고비를 넘긴 이야기. 이런 극적인 경험이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인생을 돌아보면 별거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거지요.
자신이 읽으면서 감동받았던 글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히말라야 등반기였나요? 100억 성공 스토리였나요? 아마 아닐 겁니다. 대부분은 이런 글이었을 겁니다.
엄마가 새벽에 도시락을 싸주던 기억. 친구와 크게 싸우고 화해한 이야기. 첫 월급을 받고 부모님께 선물을 산 날. 비 오는 날 버스를 기다리며 든 생각....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네, 맞습니다. 나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가 공감하는 글은 특별한 글이 아닙니다. '나와 닮은' 글입니다.
그러니까 특별한 경험을 찾으려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평범한 날들. 거기에 50개가 아니라 500개의 글감이 숨어 있습니다. 문제는 그걸 꺼내는 기술인데, 지금부터 그 기술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질문 1: "내 인생에서 가장 ____했던 순간은?"
첫 번째 질문은 '극단의 감정'을 떠올리는 질문입니다. 빈칸에 다양한 감정 단어를 넣어 봅니다. 가장 기뻤던 순간은? 가장 슬펐던 순간은? 가장 화났던 순간은? 가장 부끄러웠던 순간은?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가장 외로웠던 순간은?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가장 감사했던 순간은? 가장 억울했던 순간은? 가장 놀랐던 순간은?
감정 단어 10개만 넣으면, 최소 10개의 장면이 떠오릅니다. 어떤 감정 단어에서는 한 개가 아니라 두세 개의 장면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핵심은 '감정'입니다. 사건 자체는 기억 못 해도, 강한 감정이 따라붙은 순간은 누구나 기억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 못 해도, 운동회에서 넘어져서 울었던 기억은 생생한 것처럼요. 이 질문 하나로 글감 최소 10개를 뽑아낼 수 있습니다.
질문 2: "내 인생의 '처음'은 무엇이었나?"
두 번째 질문은 '최초의 경험'을 떠올리는 질문입니다. 처음 학교에 간 날. 처음 혼자 버스를 탄 날. 처음 돈을 벌어본 날. 처음 누군가에게 고백한 날. 처음 거절당한 날. 처음 이사한 날. 처음 비행기를 탄 날. 처음 회사에 출근한 날. 처음 요리를 해본 날. 처음 누군가와 이별한 날.
'처음'이라는 단어에는 마법이 있습니다. 처음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순간, 뇌가 자동으로 그 장면을 검색하기 시작합니다. 그 장면에는 반드시 감정이 붙어 있습니다. 설렘, 두려움, 어색함, 긴장감. 이 감정이 글의 연료가 됩니다.
실제로 적어 보면, "내 인생의 처음 목록" 10개 이상 나올 겁니다. 사실 적다 보면 20개도 넘어갑니다. 하나하나가 모두 한 편의 글이 될 수 있는 소재입니다. 이 질문으로 글감 최소 10개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질문 3: "나를 바꿔놓은 사람은 누구인가?"
세 번째 질문은 '사람'에 대한 질문입니다. 여기서 '바꿔놓은'이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꼭 좋은 방향의 변화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상처를 준 사람도 나를 바꿔놓은 사람입니다.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준 선생님이 있나요?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은 누구였나요? 내가 가장 많이 배운 선배나 동료가 있나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 친구가 있나요? 내 꿈을 응원해준 사람은 누구였나요? 반대로 내 꿈을 비웃은 사람은 누구였나요? 아버지에게서 배운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습관은 무엇인가요? 나를 울게 만든 연인이 있었나요? 스쳐 지나간 낯선 사람에게 감동받은 적이 있나요?
사람 한 명을 떠올리면 에피소드가 줄줄이 딸려 나옵니다. 그 사람과의 만남, 대화, 갈등, 화해, 이별. 한 사람에 대해서만 최소 3~5개의 글감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 질문으로 글감 10개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질문 4: "내가 실패하거나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네 번째 질문은 조금 아픈 질문입니다. 하지만 글쓰기에서 가장 강력한 소재가 나오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시험에 떨어진 경험. 사업 망한 경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경험. 건강 잃었던 시간. 친구 잃은 이야기. 자존감 바닥났던 시절. 돈 잃었던 경험. 꿈 포기했던 순간. 신뢰 잃었던 일. 기회 놓쳤던 기억.
왜 실패와 상실의 이야기가 강력할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누구나 실패와 상실을 겪었기 때문에 공감의 폭이 넓습니다. 나도 그런 적 있어 라는 반응이 쉽게 나오는 소재입니다.
둘째, 실패 뒤에는 반드시 변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하고 나서 깨달은 것, 바뀐 것, 다시 시작한 것. 그 과정 자체가 이미 한 편의 완결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고통→깨달음→변화. 이 구조가 독자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아픈 기억을 꺼내는 게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무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장 꺼낼 수 있는 이야기만 적어도 충분합니다. 시간 지나면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늘어납니다. 글쓰기가 그 과정을 도와줍니다. 이 질문으로 글감 10개 또 추가합니다.
질문 5: "매일 반복되는 나의 일상 속에 무엇이 있는가?"
마지막 질문은 쉽고 풍성한 질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질문이 과거 '사건'을 끄집어내는 것이었다면, 이 질문은 현재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과정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 출근길에 늘 보는 풍경. 점심시간에 반복되는 패턴. 퇴근 후에 하는 루틴. 자기 전에 드는 생각. 즐겨 가는 카페나 식당의 이야기. 매일 마시는 커피에 대한 생각. 계절이 바뀔 때 느끼는 감정. 반복되는 고민. 작은 행복을 느끼는 순간.
이런 게 글감이 되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됩니다. 아니, 이런 글이 가장 좋은 글이 됩니다. 독자도 매일 출근하고, 매일 커피 마시고, 매일 퇴근하는 사람입니다. 작가의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한 작은 깨달음이 독자에게는 새로운 시선을 선물합니다.
대단한 이야기일 필요 없습니다. 매일 마시는 커피에 대해 한 편 쓸 수 있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본 풍경으로 한 편 쓸 수 있습니다. 오늘 점심에 먹은 김치찌개에 대해서도 한 편 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무엇을 경험했느냐가 아니라, 그 경험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입니다. 이 질문으로 글감 10개 추가합니다.
질문 1 — 극단의 감정: 최소 10개
질문 2 — 인생의 처음: 최소 10개
질문 3 — 나를 바꾼 사람: 최소 10개
질문 4 — 실패와 상실: 최소 10개
질문 5 — 매일의 일상: 최소 10개
합치면 50개입니다. 실제로 해보면 50개가 아니라 70개, 80개가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 질문에서 생각보다 많은 장면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50개 글감이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일주일에 2편씩 써도 6개월 동안 쓸 수 있습니다. 하루 1편씩 써도 두 달 가까이 갑니다. 쓸 이야기가 없어서 못 쓴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됩니다.
이 작업을 할 때 꼭 지켜야 할 규칙 3가지 있습니다. 첫째,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건 글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일단 적어야 합니다. 글이 될지 안 될지는 지금 판단할 수 없습니다. 쓸모없어 보이는 소재가 나중에 가장 좋은 글이 되는 경우를 저는 수없이 봐왔습니다. 일단은 양을 채웁니다. 걸러내는 건 나중에 해도 됩니다.
둘째, 키워드만 적으면 됩니다. 긴 문장을 쓸 필요 없습니다. "초등학교 운동회 넘어짐" "첫 월급 엄마 선물" "회사 퇴직 그날 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키워드만 적어도 나중에 그 키워드를 보면 장면이 떠오릅니다. 자세한 내용은 실제로 글을 쓸 때 채우면 됩니다.
셋째, 한 번에 다 하려고 들 필요 없습니다. 오늘 질문 하나에만 답해도 됩니다. 내일 또 하나, 모레 또 하나. 5일이면 5가지 질문을 모두 마칩니다. 한 번에 50개를 뽑으려 하면 지칩니다. 하루에 10개씩, 5일에 나눠서 하면 훨씬 편합니다.
인생은 이미 한 권의 책입니다. 쓸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히말라야를 오르지 않아도, 창업에 성공하지 않아도,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누군가를 만나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살아온 그 시간들. 그것 자체가 이미 한 권의 책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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