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수 있어 다행이다
어머니는 매운탕을 끓였습니다. 지난 추석에 선물로 받은 참돔 한 마리가 남아 있었는데, 벌써 며칠 전부터 그놈으로 찌개를 끓여야겠다고 벼르고 계셨지요. 마트에서 낙지와 조개, 미나리도 잔뜩 사가지고 왔습니다.
씽크대 앞에 서서 요리를 하는 어머니는 한 번 몸을 틀어 움직일 때마다 다리를 절뚝거렸습니다. 결코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휘청거렸고 불안했습니다. 며느리가 다 알아서 세 끼를 차리는데, 굳이 팔십 노인이 힘겹게 음식을 만들 필요가 있는가. 입안에 맴도는 말을 몇 번이나 삼켰습니다.
지극히 단순하고 당연한 생각입니다. 평생 '어머니'로 살아온 당신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몫을 다하고 싶은 게지요. 아들인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의 태도는 그저 "정말 맛있습니다!"라는 한 마디와 밥 한 그릇 뚝딱 비우는 모습일 겁니다.
아들이 대학에 입학한 지 3주 지났습니다. 복장이 달라졌고, 가방이 바뀌었고, 헤어스타일도 근사해졌습니다. 문제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신다는 점이지요. 오전 9시쯤 집을 나가서 밤 12시가 넘어 들어옵니다. 저를 제외한 어른 세 명이 노심초사 아들을 기다립니다.
스무 살 젊음. 지금은 누구를 만나도 마냥 좋고, 어떤 얘길 해도 웃음이 터지는 시기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무려 12년 동안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자유를, 아들은 대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만끽하고 있는 것이지요.
말리고 싶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든 다 때가 있는 법이고, 아들도 결국은 자신의 자리를 찾을 테니까 말이죠. 아들에 대한 염려와 함께 제가 내려놓은 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내가 아들 걱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그냥 두고 보기로 한 것입니다.
아들이 결국 자신의 자리를 찾듯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내의 마음도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 믿습니다. 누군가를 걱정하고 염려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나면, 대학 신입생이 잠시 객기 한 번 부려 본 거라고 받아들이게 될 겁니다.
책쓰기 수업을 듣는 사람 중에는 제 마음 같지 않은 이도 많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내어준다는 마음으로 강의하는데, 자꾸만 저의 부족한 점만 콕콕 집어 불만을 터트리는 경우인데요. 처음에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내가 굳이 이렇게 하는 이유를 전합니다. 그럼에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당분간 아무 소리 하지 말고 강의에 집중 한 번 해 보라고 권하지요.
서로의 생각이 다릅니다. 낯선 두 사람이 만났는데 잘 통하는 경우가 몇 번이나 되겠습니까. 저는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상대방은 정당하고 합리적인 의사를 표현하는데 저는 그것이 못마땅한 경우도 있을 테지요.
이럴 땐 시간이 필요합니다. 감정을 앞세우면 그 어떤 관계도 원활하게 이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숱한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욱하는 순간, 툭 튀어나오는 말을 삼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매 순간 애쓰는 덕분에 요즘은 부딪치는 일이 줄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글쓰기 덕분에 아들과 가족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었지요. 글을 쓰는 동안 제 마음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고, 그래서 말과 행동 하나하나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글쓰기는 삶의 모든 것을 바꾸는 일입니다. 달라지고 변화하는 제 삶을 마주하는 기쁨. 막 소리를 지르고 싶을 지경입니다. 벅찬 마음으로, 다시 주어진 오늘을 시작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