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라
'휴, 오늘도 잠을 깨고 말았네.'
힘들었던 시절, 아침마다 눈을 뜨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 달라지길 얼마나 간절히 빌면서 잠을 청했는데. 역시나 똑같은 하루의 반복. 채권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쉴 새 없이 전화를 해댔다. 이 인간들은 잠도 없나.
통장에도, 주머니에도 돈은 없었다. 어떻게든 술을 마셔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일단 아무 식당에나 들어간다. 소주를 시킨다. 안주는 김치면 충분했다. 음식을 주문하지 않고 술만 시키는 나를 주인과 종업원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보았다. 신경 쓰지 않았다. 빨리 술을 들이키고 정신을 잃어야 했다.
그 후로는 기억을 잃는다. 식당 주인이 뭐라고 했는지, 나는 또 뭐라고 대답했는지,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 길바닥 또는 벤치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옷은 엉망이 되었고, 머리와 얼굴은 누가 봐도 주정뱅이의 그것이었다.
하루나 이틀쯤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6년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나는 그렇게 내 소중한 삶의 일부를 술로 탕진해버렸다. 지금도 그때만 떠올리면 심장이 아파 가슴을 긁는다. 연기처럼 사라진 6년.
'언젠가 좋은 날 오겠지.'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고, 주변 사람들이 내게 가장 많이 해주었던 말이다. 틀렸다.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좋은 날'이란 '오는' 게 아니었다. 괜한 희망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나는 점점 더 시궁창으로 빠져들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감옥이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자초지종 설명할 수조차 없었다. 실패했고, 수습하지 못했고, 그래서 망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술만 마시다가, 언젠가 좋아지겠지 대책 없이 바라기만 하다가, 나는 결국 벼랑 끝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좋은 날'이 올 거란 기대를 접었다. 포기했다. 엉망이 된 인생을 받아들였다. 아팠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났고, 그 눈물이 다 마를 때까지 고통과 회한 속에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에서 말하는 치유나 글쓰기 효과는 철저하게 무시했다. 두 번 속지 않을 작정이었다. 대신, 내가 지금 어떤 꼴인지 제대로 한 번 정리해 보자 싶었다. 한 줄을 쓰면 손이 떨렸다. 두 줄을 쓰면 눈물이 흘렀고, 열 줄을 쓰고 나면 가슴이 시렸다.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살았는데, 그 결과가 처참한 실패뿐이란 사실을 대체 누가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글을 쓰고 보니 머릿속으로만 생각했을 때보다는 상황이 덜 심각했다는 거다. '죽고싶다'가 아니라 '고난을 겪고 있다' 정도였다. '망했다'가 아니라 '돈이 없다' 수준이었다. 생각이 현실을 부풀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나는 더 치열하게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백지 위에 드러나는 내 삶은 '끝장'은 아니었으니까.
부동산을 찾아가 영업을 시켜달라고 했다. 단칼에 거절 당했다. 내가 너무 솔직하게 나를 소개한 탓이다. 중국집에 가서 배달을 하겠다고 했다. 오토바이 탈 줄 몰라서 자전거로 배달하겠다 했더니 그냥 나가라고 하더라. 편의점에도 가 보았다. 앞치마까지 두르고 일하는데 점장이 그만두라고 했다. 부동산 영업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전과자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침 내가 찾은 두 곳만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었다.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곳. 인력시장을 찾았다.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세 번이나 문앞까지 갔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나흘째 되던 날,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 소장은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바로 뒤에 정차중인 승합차에 오르라고 했다. 어느 대형 마트에 가서 공사중인 인부들을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잡다한 일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다.
일을 마치고 인력사무실로 다시 와서 일당 9만 원을 받았다. 만 원짜리 아홉 장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집까지 걸었다.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내 손으로 번 돈이었다. 그대로 집에 가면 먼지 뒤집어쓴 내 모습을 보고 아버지와 어머니 기절하실 것 같았다. 재래시장 화장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씻었다. 여전히 거지꼴이었지만 조금은 보기가 나았다.
몸이 부서질 것 같았지만 책상을 펴고 앉았다. 허리가 욱씬거렸다. 손이 부들거렸다. 노트북을 켜고 글을 썼다. 초라한 시작, 두려움, 불안, 앞날에 대한 불투명함...... 눈물을 참으려고 혀를 씹었다. 절망 속에 또 다른 절망을 만난 것 같았다. 나는 이제 '노가다꾼'으로 살게 되는 것인가.
더 치열하게 글을 썼다. 틈날 때마다 강의 연습을 했다. 책을 낼 수 있을지, 강의를 할 수 있을지, 아무것도 정해진 바 없었다. 오히려 불가능에 가까웠다. 전과자, 파산자, 알코올 중독자, 막노동꾼의 책을 누가 내주겠는가. 이런 인생 이야기를 누가 귀담아 들어주겠는가.
철저하게 고립된 환경에서 혼자만 죽자고 글을 썼다. 책도 미친 듯이 읽었다. 글쓰기를 배우고 싶은데 돈이 한 푼도 없으니 혼자서 책 보고 연습하는 수밖에. 그래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읽은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은 나 못지않은 시련과 역경을 겪었다는 사실. 그들이 해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매일 새벽 4시, 매일 밤 9시. 그렇게 하루 두 번씩 나는, 작가가 되었다.
책을 출간하고 강의를 시작했다. 기적처럼,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마웠다.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더 준비하고 공부했다. 나를 믿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이제 좀 '좋은 삶'이 오는 건가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사업에 실패하고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나를 멸시하고 외면했다. 다시 일어서려고 발버둥을 쳤을 때, 사람들은 나를 비웃었고 조롱했다. 작가와 강연가가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아 보려 했더니 사람들은 뒤에서 내 험담을 했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자기들 멋대로 지어내고 떠들고 소문 냈다.
이은대는 출판사와 모종의 거래를 해서 작가들 계약을 한다더라.
말만 평생무료재수강이지 나중에 따로 돈을 요구한다더라.
이은대는 자기 출판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수강생들 책을 마구 찍어내고, 그것을 자기 실적으로 과시한다더라.
험담하는 사람들보다 더 큰 상처를 주는 이들도 많았다. 자이언트에 와서 배우고 글 써서 출간해 놓고, 감사는커녕 내 강의자료와 내용을 도용해서 마치 자기 것처럼 써먹는 사람까지 있었다. 성공 시켜주지 않는다며 입에 담지도 못할 소리 늘어놓고 등 돌린 사람도 있었고, 수업은 듣지도 않으면서 내 수업에 대한 악평만 소문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8년이다. 무슨 일이 없었겠는가. 차라리 [자이언트 북 컨설팅]을 접고 그냥 글만 쓰면서 살까 수도 없이 생각했었다. 리더라는 이유로, 누구 하나 붙잡고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혼자 아파하고 혼자 울고 혼자 가슴 쓸었다.
사업에 실패하는 순간부터 인생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마땅한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한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가.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분명한 것은, 내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든 인생에는 항상 '별 일'이 다 생긴다는 사실이다.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하고 아프고...... 그냥 그런 것이다. 그것이 삶이고 인생이다. 망해도 아프고, 나름 성장해도 여전히 힘이 든다.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살아간다.
삶은 거저 좋아지지 않는다. 언젠가 좋아지는, 그런 일은 없다. 매 순간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고, 딱 노력한 만큼만 좋아진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을 과대포장한다. 성과는 자신의 노력에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아니다. 틀렸다. 성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딱 그 만큼만 노력한 거다.
국가가, 사회가, 문화가 우리의 노력을 착착 챙겨서 철저하고 완벽하게 보상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은 그리 만족할 만하지 않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기성 세대 책임도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세상이 그런 것이다. 적어도 이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내 삶이 달라질 수 있다. 정치가 잘못 되고 제도에 문제가 있다 한들, 당장 내 삶이 더 시급한 문제 아닌가. 무엇을 탓한다고 해서 내 인생이 달라질 게 아니라면, 차라리 자기 인생에 더 관심 갖는 게 마땅한 태도인 것이다.
세상이 못마땅하다며 볼멘 소리를 하는 사람들. 그들은 자기 삶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세상도 싫고 자기도 싫고. 뭐 어쩌란 얘긴가. 달라지고 싶다면, 달라지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노력을 집중해서 해야 한다. 그 와중에도 별 일 다 생긴다. 감옥에도 가고 파산도 하고 알코올 중독에도 걸리고 막노동도 하고 중국집에서 쫓겨나고 편의점에서 쫓겨나고 험담도 듣고 욕설에도 시달리고 억울한 일 당하고 배신도 당한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그냥 자빠지겠단 소린가? 나는 도저히 분해서 그러지 못했다. 계속 쓰러져 있으려니 속에서 천불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뭐라도 해서 내 인생 다시 만들고 싶었다. 그 무엇이 내게는 글쓰기와 독서였다.
지금 나는 누구 부럽지 않은 풍요롭고 행복한 인생 누리고 있다. 혼자 가만이 있을 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고, 발걸음은 가벼우며, 마음에는 여유가 넘친다.
그렇다면 내 인생에 시련과 고통은 끝이 난 것일까? 절대로 아니다. 남은 인생에서, 상상도 못할 고난과 역경이 또 닥칠 것이다. 그러나 두렵지 않다. 이제는 옛날처럼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담금질 덕분에 강해졌다. 숱한 경험 덕분에 단단해졌다. 이길 자신 있다.
언젠가 좋아지는, 그런 일은 없다. 술잔 내려놓고 정신 바짝 차리고 당장 무엇이라도 하라! 온갖 일 다 벌어지겠지만, 그 모든 일을 무조건 이겨낼 거다. 신념과 확신은 오직 자신만이 가질 수 있다. 자신이 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만큼 신나는 인생은 없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