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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Aug 30. 2023

기껏 도와주었더니 간섭한다고 화를 낸다

조언과 오지랖 사이


3년쯤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수강생이 초고를 완성하였다며 연락을 해왔지요. 검토를 해 보니 고쳐야 할 점이 많았습니다. 정성을 다해 퇴고 안내를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길래 제가 먼저 전화를 해 보았습니다.


"대표님이 주신 퇴고 안내와 제가 생각하는 방향이 달라서 고민중입니다."

무슨 고민을 한 달씩이나 하는가 싶기도 했고, 제가 안내한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말도 듣기 불편했습니다. 수강생의 원고가 예쁘게 잘 다듬어져서 참한 책으로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 밤새도록 정리해서 안내해준 것인데, 그걸 못마땅하다고 하니 힘이 쪽 빠졌지요.


수강생은 또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그냥 제가 필요하다는 것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도움이 필요한 내용에 대해서만 도와주고, 나머지는 간섭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당시에는 어찌나 화가 나던지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습니다. 글쓰기 배우겠다고 와놓고 공부는 하지 않은 채 자기 멋대로 책만 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거였지요.


사람의 본성은 착하다고 믿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을 보면 돕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잘 몰라서 쩔쩔 매는 사람을 보면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요. 그러나, "돕는다, 가르친다"는 생각은 자칫 위험할 수 있습니다.


첫째, 상대의 기분을 언짢게 만들 우려가 있지요. 다들 경험해 보았겠지만, 도와달라 요청도 하지 않았는데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사람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나를 위해 도와주는 거지만, 실제로 내게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마음은 고맙지만, 서로에게 불편한 마음만 남기게 됩니다.


둘째, 도움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이 뭔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는데요. 언뜻 보면 좋은 현상 같지만,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과 모자람을 인정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거든요.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엉뚱하게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당사자는 최선을 다해 일하는 중일 수도 있습니다.


셋째,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간섭이나 지시를 거부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력이 되든 안 되든 자기 힘으로 뭔가 해 보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는 것이죠. 시도해 보는 것도 일종의 재미인데요. 자꾸만 옆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면 흥미를 잃게 됩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친구라는 이유로, 코치라는 이유로, 강사라는 이유로, 상대가 요구하지도 않은 도움을 주려는 것은 간섭에 가깝습니다. 물론, 지켜보고 있자니 답답하고 한심하다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타인에 관한 문제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태도를 뜯어고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 수강생은 결국 원고를 끝까지 잘 마무리하였고 출판사와 계약도 체결했습니다. 시간도 오래 걸렸고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란 점 많았지만, 나름 자신이 생각한 방향 대로 정리해서 만족스럽게 출간을 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 본 후에 깨달은 바가 있었지요. 모든 원고를 내 마음에 쏙 들게 바꿀 수는 없다, 내 마음에 든다 해서 출판사나 독자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 본인의 주관과 노력이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지적해 달라며 요구하는 수강생도 있습니다. 전반적인 방향만 제시해 달라는 수강생도 많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혼자 힘으로 끝까지 해 보겠다는 수강생도 없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원하는 바가 다릅니다. 글쓰기/책쓰기 관련 코칭 방향의 큰 줄기는 원칙으로 정해두었습니다. 그 외에 자잘한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각자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기로 결심했지요.


제가 어떻게 지도하든 불만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수강생이 100퍼센트 만족하는 그런 코치나 강사는 없겠지요.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겠다 싶은 부분에 대해서는 미련 없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도와주고 싶고 가르쳐주고 싶지만, 한편으로 이런 마음은 나의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진심으로 상대를 위한 마음인가. 아니면 나의 만족과 행복을 위함인가.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타인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지나칠 정도로 간섭하고 오지랖 떠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세상입니다. 무엇이 상대를 진정 위하는 길인가 생각하다 보면, 서로 얼굴 붉히지 않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 누구에게도 관심 갖지 말고 모른 척하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에게서 관심을 거두면 세상은 끝장이겠지요.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만, 일일이 간섭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상대가 도움을 청해오면 기꺼이 도와주고,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는 그냥 지켜 보면 됩니다.


부모라는 이유로, 자녀라는 이유로, 배우자라는 이유로, 친구라는 이유로, 도저히 그냥 지켜 보고 있을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 마치 자신이 모든 걸 잘 알고 있는 존재라고 여기는 듯합니다. 위험한 태도지요.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부족하고 모자란 점 많습니다. 내가 조금 먼저 경험했기 때문에 몇 가지를 더 아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상대를 마음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은 아니거든요.


[자이언트] 초창기에 스트레스 많이 받았습니다. 확실한 길을 가르쳐주는데도 따르지 않으니 답답했고 열 받았습니다. 8년쯤 운영해 보고야 알게 되었습니다. 글쓰기 선생이라 해서, 책쓰기 코치라 해서, 수강생을 내 마음 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출간계약을 했으면 감사 인사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출간을 했으면 전화를 해서 인사를 전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밤 새워 준비한 내용으로 혼을 담아 강의하면 그 정성을 알아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습니다. 까만 색 안경을 쓰고 있으면 세상은 까맣게 보이고요. 파란 색 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은 파랗게 보입니다. 각자가 쓰고 있는 안경의 색깔은 모두 다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 재고 따지고 분석하여 나의 주장만 펼치면 가장 불행해지는 건 나 자신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입장에서 보면 엉망인 사람도 잘만 살아갑니다. 그 사람만의 세계관과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죠. 내 기준에 맞지 않다고 해서 욕하고 험담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는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모두 자신이 만들어가는 인생입니다.


우리 수강생 다들 열심히 합니다. 저도 열심히 살고요. 서로 생각 다른 점 많고, 또 의견 일치되는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 손을 내미는 이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도와줄 테고요. 간섭하지 말기를 바라는 이들은 정성껏 지켜 볼 겁니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지향점은 결국 세상과 타인을 위한 좋은 책을 출간하는 거란 사실을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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