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 해석
10월 3일 개봉 예정인 크리에이터를 이동진의 언택트 톡으로 IFC에서 관람하고 왔다. 기념엽서는 못 받았다.(있는지조차 몰랐음..)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것은 인류의 존망이 걸린 싸움입니다”라며, 인간과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AI와의 전쟁을 다루는 영화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영화 크리에이터는 그보다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현대 사회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지를 고민해보게 한다.
어느 날, 특수부대 요원 조슈아에게 특별한 임무가 주어진다. 이들에게 AI는 이미 우리 사회를 잠식하고 인간을 위협하는 대상으로 이 사회에서 없애야 할 제거물일 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AI를 보호하고 지켜내고자 하는 인류 집단이 있다. 조슈아의 특별한 임무는 바로 이들의 핵심 인물에게 접근하여, AI를 지키는 집단의 우두머리를 알아내는 것. 조슈아는 AI를 감싸는 우두머리(니르마타)의 딸로 추정되는 마야에게 접근하지만,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뻔할 수 있는 클리셰..) 그러나 마야 자신이 AI의 어머니, 니르마타로 확인되면서 결국은 조슈아가 속한 집단에게 사살당한다.
조슈아는 이 과정에서 마야가 남기고 간 흔적을 발견하고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마야는 남아 있는 이들을 위해 시뮬란트(인간의 기능을 수행하는 인공지능의 일종)를 만들고 떠났다. 그것은 AI 기술의 총집합체로 세상에 없는 최종 무기, 사실은 AI를 지키기 위한 최종 방패물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아이 모양의 시뮬란트이다. 이 AI는 이제껏 볼 수 없었던 형태의 시뮬란트로 스스로 성장하며 지능을 키워나가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조슈아는 이 아이에게 알피라는 이름을 짓고, 마야가 꿈꾸던 세상을 함께 실현해 나간다는 것이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전력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는 알피에게서, 무빙 번개맨이 문득 떠오르며 분위기 혼선이 살짝 오기도 했다...)
영화에서 말하는 바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이 아니다. 현재의 인간이 신인류의 등장을 놓고 서로 나뉘어져 대결하는 것에 더 가깝다. 영화는 이미 우리 사회의 일부가 되어버린 인공지능을, 인간이 어떤 자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거부할 수 없다. 우리는 일상 곳곳에 배치된 인공지능의 도움을 빌려, 일상의 시스템을 유지하고 또 작동시킨다. 인공지능의 존재를 통해 잉여가치를 발생시킨 인간은 좀 더 생산적인 일에 투자 하며, 더욱 인간다운 삶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가고 있다.
다만, 인공지능의 역할이 인간의 그것을 넘어서고 권력이 인간에서 인공지능으로 이동하게 되는 순간, 상황은 역전된다. 새로운 계층구조가 작동하며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를 넘어선 신인류가 세상을 이끌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 도입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인간의 조건에 대한 탐색이 필요하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이미 빅데이터를 통해 인간을 대상으로 권력을 작동시키고 있다. 「인공지능시대 인간의 조건」의 저자 백욱인은 디지털 시대 이용자는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는 대가로 자신의 분할체(SNS 상에서 좋아요 등을 체크함으로서 제공되는 개인 정보)와 결과물을 거대 플랫폼 자본에 양도한다고 설명하며, 이와 같은 현상은 자본과 노동관계에 내재되어 있는 사회적 복종이나 법과 강제를 동반한 국가의 적극적 개입 없이 이뤄진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이미 인간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며 인공지능에게 빅데이타를 제공하는 순간, 기계적 예속의 구조에 배치되고 사회적 복종 과정을 이루는 과정 속에 놓인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곰곰이 떠올려보자. 이미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알고리즘 없는 삶은 떠올리기 쉽지 않다. 기계적으로 예속된 인간의 일상은, 그렇게 기계의 권력에 사회적으로 복종하며 그들이 없는 삶을 상상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
영화 속 최종무기이자, AI를 보호할 최종 방어물 알피. 사실 알피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이동진이 언택트 톡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나 또한 주드로의 영화 ‘나를 책임져, 알피’가 떠올랐다. 이동진은 알피에 대한 다양한 접근으로 영화 속 메시지에 대해 설명한다. 알파, 오메가의 약자인 알피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끝이라는 뜻의 신약성서의 한 구절(요한 묵시록 22장 13절)이다. 신은 시작도 마지막도 없는 보편적 존재이며 시간의 개념 그 자체도 내포한다는 의미가 있다. 알피는 인류에게 신적인 존재였을까. 인간은 인공지능을 신적인 존재로 받아들이려 한 것일까. 인공지능 기계는 몸에 기억을 새기거나 마음속에 추억을 담아둘 필요가 없다. 그러나 갇혀있던 알피는 조슈아를 통해 밖으로 나와 세상을 오감으로 느끼며, 빠르게 정보를 흡수한다. 그런 알피의 존재는 인간에게 과연 어떤 의미인 것일까. 인간은 기계를 통해 그들이 제시한 규정에 예속이 되고, 그들의 시스템에 다시 복종을 한다. 그러나 해결책은 다시 기계에게 있는 듯 하다. 이런 알피의 잠재력을 영화 크리에이터는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
결국 이 시대의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인공지능을 어떻게 인지하고, 그들이 인류를 어떻게 포획하며 착취하는지, 이로 인해 인간의 노동 형태는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고민해보게 된다. 인간은 중세시대 기계를 통해 육체의 노동에서 자유로워지며 잉여가치를 실현했다. 그리고 공유와 가상까지 사고 파는 디지털 시대는 인지 자본본주의라는 개념으로 주목받으며, 인간의 노동을 새로운 권력 관계 속에 다시 배치하고 있다.
조슈아는 마지막 장면에서 마야와 재회하게 된다. 마야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공지능에게 마야의 혼을 입력시킨 시뮬라크르, 마야의 육체와 혼을 가지고 있지만 진짜 마야가 아닌 마야. 마치 꿈속에 마련된 이승도 저승도 아닌 공간에 머물러 있는 인셉션의 주인공 코브의 심정을 조슈아는 이해하고 있지 않았을까. 2020년 방영한 MBC 다큐 ‘너를 만났다’가 떠오른다. 가상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기적 같은 만남은 많은 시청자의 눈물을 훔쳤고, 작년 시즌3까지 방영하며 안방을 감동의 바다로 만들었다. 핵심은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저장된 기억이 미디어 결과물의 형태로 재창조되면서, 인간의 에피소드 기억을 소환시켰다는 것이다. 조슈아는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기계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의 조건을 스스로 찾았다고 생각한다. 영화 크리에리터를 보면서 인간과 기계의 복잡한 관계를 포함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너를 만났다' 하늘나라로 간 딸 다시 만난 엄마의 눈물…안방 울렸다 - 뉴스1 (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