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몸 실어 나를 낙타 한 마리 간절하다
한여름 솟아오른 태양열에 붉게 달구어진 부용대. 미려한 잠자리 한 마리 부용대 절벽 위를 나풀나풀 춤추듯 맴돈다. 어디서 날아온 걸까. 알록달록 화려한 무늬가 무리를 이루는가 싶더니 눈앞에서 춤사위가 벌어진다. 어디선가 따뜻한 바람 불어와 얼굴에 휘감긴다. 저 멀리 만송정 소나무군락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그 모습이 서애 류성룡 선생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처럼 늠름하고 위풍당당하다. 만송정에서 깎아지른듯한 절벽 부용대까지 여러 가닥의 숯가루를 바른 동아줄이 팽팽히 걸려 있다. 줄을 보는 순간 눈앞이 어질 하다.
목석원 주인 장승 명장 타목 김종흥 선생의 깊은 배려로 2024년 7월 6일 하회선유줄불놀이 행사는 <영남문학의 밤>으로 지정되어 안동하회마을 부용대 앞에서 성대하게 막을 열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영남문학 회원 중 70여 명의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행사에 참여했다. 그날 부용대 앞 무대 위에선 영남문학인협회 협회장이시면서 시인. 평론가이기도 한 장사현 작시 「춘양역에서」와 「부용대에서」, 「주실령 아리랑」이 가곡으로 만들어져 성악가 김상충(바리톤) 교수, 성악가 최윤희(소프라노) 교수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불려져 큰 감동을 안겼다.
선유줄불놀이를 보기 위해 만여 명이 넘는 인파가 안동하회마을에 모여들었다. 수많은 연인과 친구, 가족들이 모래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선유줄불놀이의 카운트다운만 기다리고 있었다. 영남문학의 김창봉 시인, 유진서 편집장, 한은정 수필가, 최수련 수필가, 타목 선생과 하회마을 풍산류 씨 문중어른 한 분이 함께 나룻배에 올랐다.
2022년 10월 29일 <영남문학의 밤>이 또렷이 떠올랐다. 노란 은행잎을 밟으며 부용대까지 막냇동생 김수현 수필가와 함께 걸었던 그 길,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쪽진 머리가 그날따라 참으로 어엿뻤다. 10월의 찬바람이 엷은 한복을 뚫고 나룻배 위로 출렁거렸지만, 배 위에 탔던 장사현 협회장님과 한은정 수필가, 김수현 수필가는 추위에 떨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 행사를 무사히 잘 마쳤다.
2023년 6월 9일, 48세의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막냇동생 故김수현 수필가. 그 애의 지난 흔적을 찾아 강가 이곳저곳을 넋이 나간 듯 서성거렸다. 고요한 밤하늘에는 줄불이 서서히 타들어갔다. 밤하늘 우주여행 쇼를 하는 것처럼 환상적인 불꽃놀이 광경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문학을 함께 했던 2년이란 짧은 시간 속에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행복했던가. 2019년 소설로 등단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며 나보다 더 좋아했던 김수현 수필가. 언제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는 김수현 수필가를 바라보며 내 마음 또한 무척이나 행복했던 시간들이 아니었던가.
김작가, 여기서 뭐 해? 뒤돌아보니 장사현 협회장님이셨다. 순간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세상에 나 홀로 덩그러니 남아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운 마음이 내면에서 출렁거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곳은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푸드트럭 앞이었다. 나도 모르게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그려져 있는 푸드트럭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래”라고 하시며, 뒤에 줄 서서 기다리고 계시는 바리톤 김상충 교수와 일행 것까지 계산하라시며 노란 지폐 하나를 손에 쥐어 주시고, 나룻배가 있는 선착장으로 바삐 향하셨다.
김수현 수필가와 문학을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을 되짚어보며 선유줄불놀이에 마지막 소원을 담아 편지를 띄운다. 우리의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유쾌하기 그지없었다. 2019년 수성호텔에서 소설로 등단하는 이 언니를 위해 서울에서 꽃다발을 직접 사들고 와서 축하해 주던 날, 우리는 영남문학의 마법 같은 시간에 한껏 매료됐었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걸 보며 무척 행복했던 하루였다. 그날, 막상 무대에 올라가 소감을 말하려니 모든 게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버려 울먹거리다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내려오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그때 김수현 수필가는 암과 5년째 싸우던 해였다.
만송정 숲에서 시작된 불꽃은 잔잔한 바람을 타고 부용대를 향해 타들어간다. 뚝 뚝 떨어지는 불꽃에 지난 시간들도 함께 타들어간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자유롭지 않던 2021년 봄, 우린 처음엔 통신으로, 그러다가 청도를 오가며 장사현 교수님께 시와 수필을 공부했었다. 처음 써 보낸 시는, 2024년 6월 9일 발간한 김수현 유고 시· 에세이집 표지 제목 <사막화>란 시였다.
내 영혼은 사막화
뜨거운 태양 스카프를 온몸에 둘렀다
타들어 가는 혀끝은 한 방울의 물기를 원하지만
뜨겁게 달궈진 모래는 무참하게도 발바닥을 짚고
몸으로 벌겋게 달아오른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물음에 답변할 수 없었던 하갈처럼
어디서부터 길을 잃은 것일까
해가 저물지 않은 탓에
모래알처럼 무수한 상념들을 밟고
제멋대로 폭주하며 내달린 길
되돌아가려 찾은 발자국은
모래바람에 묻혀 사라져 버렸다
지친 몸 실어 나를 낙타 한 마리 간절하다
독기 어린 전갈들이 치근거리는 사막에 누워
탕자를 기다리던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며
오아시스를 가슴에 품은 영혼의 입술이
목마름으로 읊조린다
<사막화> 전문
장사현 교수님으로부터 “처음 쓰는 시가 아닌 것 같다”는 칭찬과 함께 “동생이 어디 아프냐?”는 근심 가득한 질문을 받았다. 영남문학 수필로 등단한 김수현 수필가는 어느 날부터 신명 나는 장구를 배우고, 공연을 따라다니고, 영남문학 행사에서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그때만 해도 동생의 병은 왠지 다 나은 것 같은 착각에 빠졌었다. 그러나 얼마 후 다시 암이 재발되고, 장사현 교수님은 매우 안타까워하시며, 가슴으로 낳은 아버지가 되어주시기로 하셨다. 비싼 한약이며 빛명상 치료를 해주시며 꺼져가는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셨다.
생사의 기로에서 어쩌면 그것은, 신이 우리에게 넘겨주신 필연적 만남이 아니었을까. 꺼져가는 생명에 문학이라는 혼을 불어넣어 주시고, 끝까지 용기를 잃지 말라며 다독여주신 분. 문학으로 인해 영격지수가 올라갔다며 마지막 가는 그 순간까지 김수현 수필가는 두려움보다 평정심을 유지했었다. 그리고 호스피스 병동에 누워 문경문학상에 공모하여 우수상의 영광을 안기까지…
하회마을의 선비 서애 류성룡 선생이 이순신 장군을 유독 아꼈던 그 깊은 마음만큼, 비록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장사현 교수님은 우리 자매를 친자식 이상으로 아껴주셨다. 선유줄불놀이의 아름다운 불꽃처럼, 좋은 정서를 심어주려고 항상 노력하셨고, 그 좋은 정서로 문학에 심취하여 여러 공모전에서 대상의 영광도 안았다.
짧지만 불꽃처럼 살다 간 故김수현 수필가. 그 못다 한 문학의 꿈을 이제 선유줄불놀이에 엮어 하늘 멀리 날려 보낸다. 미려한 잠자리 한 마리 물 위에서 빙그르 돌더니 사뿐히 날아오른다. ‘잘 가, 내 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