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김미진

- 상어 지느러미엔 왜 통점이 없는가

by 별꽃서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란 어떤 이별일까.


‘엄마’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먹먹하다. 방금 태어난 어린 새에게 둥지가 되어주며 촉촉이 대지를 적셔주는 단비와 같이 희생과 헌신이라는 다 해진 옷을 입고 척박한 땅에 거목으로 우뚝 서 있다. 공기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들숨날숨 호흡하고 멀리 날아가는 새들도 잠시 쉬었다 가는 호수 위의 잔잔한 물결이다.


연극의 막이 오른다. 지극히 평범한 가정의 일상이 관객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의사인 남편과 가정주부인 아내, 남매와 시어머니, 남동생 내외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여느 가정처럼 분주히 아침 출근을 서두르는 장면 속에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이다.

시어머니는 며느리 인희에게 다짜고짜 밥을 안 준다며 생떼를 부린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관객은 숨이 덜컥 막혀온다. 연극의 시발점이다. 평범한 가정의 이야기 같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가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주인공 며느리 인희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마치 아기 다루듯 조심스럽다. 반면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는 멀쩡하다가 갑자기 돌변해 며느리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앙탈을 부리며 때리기까지 한다. 보다 못한 관객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애를 태운다. 시어머니의 막무가내 행동에도 며느리 인희는 모든 걸 덤덤히 수용한다. 그 인내와 애잔함이 내 등짝에 소리 없이 올라탄다.


치매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치매노인을 모시는 가정에서의 하루 일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인지능력이 정상적이었다가도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병의 특성상 때에 따라서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기도 할 것이다. 치매의 증상은 다양해서 예쁜 치매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치매도 있다 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어떤 방식으로 오든 치매는 결국 한 가정에 짙은 먹구름으로 뒤덮여 하루하루가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조마조마하다.


연극 속에서 며느리 인희는 인내심이 강하고 착한 심성의 소유자다. 의사인 남편 뒷바라지와 회사 일로 바쁜 딸, 삼수생인 아들을 키우며 모든 걸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거기에 하나뿐인 남동생은 가산을 탕진하고 노름에 빠져 아내의 장사 밑천을 빼앗아 가는가 하면, 틈틈이 누나에게도 손을 벌린다. 주인공 인희는 남편 몰래 남동생을 도와주지만 그 불한당 같은 행각은 좀체 나아지지 않는다. 가파른 산악도로를 오르듯 주위의 모든 요건들이 위태위태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극 속에 감정이 이입되어 호흡이 숨차다. 주인공 인희의 한숨이 내 혈관을 타고 들어와 정신이 아득해진다.


극이 진행되면서 주인공 인희에게 건강의 적신호가 켜진다. 오줌소태에 걸려 병원에 들러 건강검진을 받는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가벼운 증상이 암으로 밝혀진다. 그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을 때도 그녀는 자신보다 남은 가족을 걱정하며 이별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결코 평범하다 할 수 없는 비범함이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끌고 간다. 아내의 몸에 퍼질 대로 퍼진 암덩어리가 남편 정박사의 심장을 난도질한다. 명색이 의사라는 남편이 아내의 병조차 고칠 수 없음에 그는 절규한다. 그 고뇌에 찬 비통함이 오롯이 느껴져 가슴이 저릿하다.


극이 진행될수록 긴장감에 마음이 조여 온다. 여전히 며느리를 괴롭히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쉴 틈 없이 노동에 시달리는 아내를 보며, 남편 정박사의 분노는 결국 폭발하고 만다. 그 파편은 딸과 아들에게, 치매에 걸린 노모에게 고스란히 향해, 급기야 노모를 방에 가두고 대못질을 하는 격한 분노의 장면으로 치닫는다. 극을 보며 내 몸에도 대못 하나가 박히는 아픔이 고스란히 와닿는다.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관객들은 너나없이 눈물을 흘리고 만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 앞에 극을 바라보는 내 눈빛 또한 절망적이다.

시어머니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며 며느리 인희는 깊이 탄식한다. 지금도 이렇게 구박을 받는데, 자신이 없고 난 후에 시어머니가 받을 구박과 천대를 떠올리며, 갑자기 독한 마음을 품고 시어머니의 얼굴에 이불을 뒤집어씌워 몹쓸 행동을 시도한다. 며느리의 절규하는 처절한 모습은 날카로운 칼에 베인 듯 바라보는 나조차 통증이 느껴진다. 비명소리에 가족들이 놀라 방으로 뛰어들어오고 오열하며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그녀를 겨우 뜯어말린다.


때론 안개가 끼어 있는 것처럼 사물이 뚜렷하지 않다. 안개가 걷히는가 싶으면, 더 짙은 안갯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한다. 순풍에 돛 달고 유유히 목적지를 향해 흘러가려 하지만 폭풍을 만난 배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거친 파도와 끝없이 싸운다.


인희는 아기처럼 변해버린 시어머니가 애처롭고 가엾다. 시어머니의 몸을 씻겨주면서 그녀는 덤덤한 어조로 중얼거린다.


“맑은 정신 돌아오면 혀를 깨물어서라도 날 따라와, 알았지? 빨리 만나자.”


독백하듯 그 말을 내뱉는 며느리 인희의 심정이 가슴에 비수처럼 와 꽂힌다. 지느러미를 잘린 채 바다에 버려진 상어처럼, 자신이 떠난 뒤 시어머니에게 닥칠 고통과 서러움을 미리 목도하며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미안함의 말이다. 그녀의 시선은 언제나 남은 가족의 자리에 머물러 서성인다. 마지막 한 방울의 눈물조차 닦아주고 떠나려는 애끓는 어머니의 모정인 것이다. 당신은 해진 옷을 입고 부뚜막에 앉아 누룽지를 먹을지언정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그 숭고한 마음, 배탈이 날까 봐 차내 버린 이불을 덮어주는 따듯한 손길, 눈에 밟혀 차마 떠나지 못하고 자꾸 되돌아보는 그리움의 발자국인 것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는 많은 것이 응축되어 있다. 주인공 인희가 자신을 희생하는 것도 결국은 가족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가족을 향한 시선은 언제나 태양처럼 뜨겁고 바다처럼 광활하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모성본능이 그녀의 내면 가득 흘러넘친다.


주인공 인희는 마지막 장면에서 딸을 바라보며 나직이 읊조린다.


“연수야, 너는 나고, 나는 너야.”


한 생을 힘겹게 살다 가신 내 어머니의 한숨과 눈물이 아슴아슴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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