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밤의 꿈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장군이는 익숙한 모습으로 낯설게 굴었다. 크고 퉁퉁한 머릿속이 주인으로 꽉 찬 것처럼 굴던 껌딱지 녀석은 이제 장군? 이름을 부르면 선명한 눈알을 굴리며 너와 나 사이 어정쩡한 위치에 털썩, 주저앉아 물끄러미 나와 아내를 바라본다. 저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 낯설음의 형태를 며칠간 찬찬히 더듬어가다 보니, 비로소 그것이 그 녀석과 우리가 차곡차곡 쌓아왔던 유대가 찢어진 틈으로부터 새어 나온 구체적인 경계심임을 알게 되었다. 어딘가로 데리고 나가려 할 때, 특히 주차장 부근으로 향할 때면 그 경계심이 어김없이 아가리를 벌려 으르렁- 우리를 향해 구체화되곤 했다. 다시 그곳으로, 병원으로 돌아가게 될까 봐 겁이 났을 테지. 암. 이해하지. 이해하고 말고.
유기견이었던 장군이는 (아마) 세 살 무렵 우리를 만났다. 짧은 다리, 육중한 체구에 힘이 좋고 울음소리도 우렁찼던 녀석은 어울리지 않게 겁이 많아서 자신이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에도 소스라치듯 놀라 생선처럼 펄떡 뛰어오르는 일이 잦았다.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에 겁을 집어먹으면 눈망울을 축 늘어뜨린 채 사시나무처럼 떨며 변을 지리기도 했다. 단순한 고집인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책인지 모르겠지만 녀석은 자신이 정한 범위 밖으로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앉으라면 앉고, 멈추라면 멈추고, 기다리라면 언제까지고 기다리며 주인의 말을 듣기로 정한 것. 아내를 집에 혼자 두고 절대 산책을 나가지 않기로 정한 것. 나나 아내가 아닌 타인과는 절대로 산책을 가지 않기로 정한 것. 자신이 겁을 집어먹으면 주인이고 나발이고 혼비백산 달아나기로 정한 것까지도. 무엇이든 한 번 정한 일에는 한결같이 굴었다.
장군이가 실내에서 배변을 하지 않기로 정했기 때문에 우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휘몰아치건 술에 절어 떡이 되었건 하루 두 번 이상 꼭 산책을 나갔다. 장군이는 산천초목을 누비며 우리와 산책하는 일을 하루 중 가장 좋아했다. 흰 눈이 내리면 우리와 함께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하얀 눈밭을 뛰노는 일을 특별히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도심을 벗어나 숲 속으로, 호수공원으로 터전을 옮겨갔다.
팔 년 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산책한 덕에 유난히 겁 많고 경계심 많던 장군이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더니 어느새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깊숙이 스며들었다. 장군이가 보여준 무조건적이고 한결같은 애정 덕에 우리 부부는 삶에서 놓치고 있던 중요한 많은 것들을 깨닫기도 했다. 아마 장군이와 우리의 견고한 유대는, 특별할 것 없지만 정성을 다해 보냈던 하루가 꾸준히 쌓여 만들어낸 것이리라. 그 유대를 SNS에 공식적으로 전시하거나 푼수처럼 본인의 자부심을 이웃에게 으시댄 적은 없었으나 크르렁- 녀석의 커다란 어금니가 무언가를 찢고 튀어나오는 듯한 소리에 아, 긁혔구나. 생채기가 난 자신을 뒤늦게 발견하자 괜히 성질도 나고 야속하기도 하고 음. 뭐랄까. 경계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그동안 장군이라고 생각했던 무언가가 아닌, 그러니까 장군이가 아닌 다른 무엇 같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고얀 놈. 괘씸한 놈.
그저 건강하게만 여겼던 녀석은 특별할 것 없던 보통의 여름날, 예고도 없이 풀썩 주저앉았다. 뜬금없이 좋아하던 닭고기 간식을 거부하기 시작하더니 조금 후에는 짧은 뒷다리를 부르르 떨며 쓰러졌다. 빠르고 거친 숨소리, 불규칙적으로 떨리는 큼지막한 눈망울을 끌어안고 우리는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 컴컴한 도로를 바삐 내달렸다.
개들이 앓는 소리와 컹컹 짖는 소리, 긴 하울링* 소리들로 가득 찬 병원으로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하얗고 적막한 공간에 몇날 며칠을 홀로 갇혀 있는 일은 무척 두렵고 당황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배의 털을 강제로 밀린 채 아직 적인지 아군인지 정하지도 않은 타인에게 약점을 드러낸 자세로 하루 세 번 차갑고 낯선 기계덩어리를 뱃가죽에 대어 해괴한 꼴을 당하고, 또 긴 시간 동안 통증에 허덕이다가 잠이 들었다 깨니 자신의 복부가 헤집어져 거대하게 꿰매어져 있는 꼴이 얼마나 황당했겠으랴. 또 배신감이 들었으랴.
개 또한 인간들의 윤리, 사회문화적 규범, 경제체제, 물리학처럼 나름의 '반려견다움'을 구성하는 기초원리가 있을 텐데, 지나칠 정도로 순종적이었던 장군이가 처음으로 우리에게 이빨을 내보이며 으르렁 거린 걸 보면 아마 기초 미만의 어떤 절박한 환경에 던져졌다고 느낀 모양이다. 그래. 촌각을 다투는 상황 속에서 수술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해야 했던, 수십 번을 시뮬레이션하며 타들어가던 우리의 속을 네 놈이 알 리가 있겠니.
느닷없는 장군이의 시한부 선고를 수긍하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우고 쌓을지를 정하는 과정은 무척 버거운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오늘 하루를,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인데. 무에 그리 어려웠을까. 그저 우리 인간은, 종말을 저 멀리 미뤄두고 모른 체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가장 먼저 정해야 했던 일은 파열된 비장을 수술로 제거할 것인지였다. 급사 위험이 높은 수술이었고, 수술이 무사히 끝나더라도 혈관육종*은 3개월을 넘긴 사례가 드물다고 하셨다. 또한 악질적인 특성의 암이라 남은 시간 동안 온갖 고통을 견뎌내야 할 터였다. 병원비 또한 상상이상의 금액이었고. 그렇다고 이대로 두면 장군이는 며칠 버티지 못한다.
결정을 내리는 시간 동안 아내도 나도 미처 예비하지 못한 비극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지만 슬퍼만 하고 있기에 남은 시간은 짧았다. 수십 번을 시뮬레이션했다.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 녀석의 고통을 덜 생각은 못할망정, 마지막일지도 모를 시간을 홀로 차가운 방에서 검사만 내도록 받다가 수술방으로 보내는 것이 맞나? 그건 장군이의 평안과 안녕을 위하는 마음이라기보다는 장군이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다는 순전한 '우리의' 욕심 아닌가? 그랬다가 수술이 잘못되면? 그래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근데 생사의 갈림길인데 후회하고 말고 가 중요한가?? 반대로, 장군이의 고통을 줄이는 데에 힘을 쓰고 짧더라도 남은 시간을 함께 잘 보내고 순리대로 보내주는 것이 맞지 않나? 뭐가 맞다는 건가? 자연에 속한 존재인 인간이 의료적 행위로 장군이를 살리고자 하는 것 또한 자연의 일부인데, 순리라는 궤변으로 의료적 행위를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오만하고 모순적인 태도가 아닌가? 도대체 그건 누굴 위한 선택인가?
새끼 펭귄을 먹기 위해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도둑갈매기를 보고도 자연에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는 남극 다큐멘터리 감독의 뚜렷한 원칙 같은 것이 우리에게는 없었기 때문에 대화는 점점 길어지고 부풀어 오르면서 이야기가 복잡해졌다가 힘을 잃었다가를 수없이 반복했다.
"장군이의 의지를 존중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자." 또렷한 눈빛으로 아내가 침묵을 걷어내며 말했다.
장군이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실내에서 배변을 하지 않았다. 본인이 정한 일이었기 때문에 나나 아내가 아닌 의료진들과의 산책 또한 거부했으며, 우리는 하루 1회로 정해진 병원의 면회 지침에서 벗어나 늦은 밤과 새벽녘 병원을 방문해 고요한 탄천을 따라 장군이를 산책시키곤 했다.
새벽에 만난 장군이는 통증으로 흐리멍덩해진 눈을 하고서 우리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지만 휘청거리면서도 의욕적으로 배변할 곳을 찾아 절박하게 뛰어다녔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몸속의 독극물을 쥐어짜 내듯 한 움큼 씩 혈뇨와 혈변을 쏟아내곤 했다. 배변활동을 마치고 나면 여전히 흐리멍덩하지만 생기 어린 눈빛으로 그동안 입에 대지 않던 밥을 와구와구 찾아 먹고, 둥글게 똬리를 튼 채 몇 시간 동안은 잠에 집중하며 회복에 애를 썼다. 장군이는 그저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지금 이 순간,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결정하는 일이 녀석에겐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테지. 그래. 그러니 우리도 최선을 다해야지.
녀석을 터뜨려 버릴 것 같이 부풀어 올랐던 비장은 다행히 깨끗이 절제되었고, 아내와 나는 수술로 얻은 여분의 시간을 선물로 여기며 남은 시간을 정성을 다해, 밀도 있게 보내기로 했다. 항암 치료는 별 효용이 없었기에 '나는 차가운 병상이 아니라 내가 살던 집에서 죽고 싶습니다.'라는 누군가의 말에 따라 녀석을 집으로 데려와 호스피스*를 시작했다.
마냥 순종적이기만 했던 장군이는 점점 장군이가 아닌 무엇이 되어갔다. 통증 때문에 잠드는 일에 어려움을 겪었고, 위장과 식도가 종양으로 가득 차 밥을 먹는 일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제대로 걷는 일에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예전에는 본인의 '좋음'을 좇아다니는 일에 열씸이었다면 이제는 무언가에 대해 '싫다'라고 표현하는 일에 집요해졌다. 녀석에게는 흐릿한 습관과 자신이 정한 고집 같은 것만이 듬성듬성 남았다. 분명 음식을 싫어해 본 적이 없던 녀석이 주둥이를 힘주어 꾹 닫은 채 조금이라도 싫어하는 음식은(어째서?) 일절 거부했고, 비위관*을 통해 억지로 밀어 넣은 음식이나 약을 집요하게 게워내곤 했다. 기어이 몸속의 비위관을 반으로 잘라버려(어떻게?) 응급실을 가야 했던 일도 여러 번이었다. 장을 보고 밥을 먹이고 투약하는 일에만 꼬박 반나절이 걸리곤 했다. 고집불통 늙은이 같으니라고..
상태가 악화되면서 녀석은 그 좋아라 하던 산책도 똑바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통증이 심해지면서 3~4일 간격으로 펜타닐 패치*를 붙이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약효가 선명한 1~2일 차에는 어정어정 걸어 다닐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유난했던 그 해 여름은 본래도 더위에 취약했던 털복숭이 녀석에게 특별히 가혹했고, 장마가 끝날 무렵부터는 뙤약볕과 열대야를 피해 산책을 다니는 일에 우리도, 녀석도 억수로 애를 먹었다. 30분씩 하루 두 번 가던 산책을 10분씩 하루 네 번으로 늘리고 줄였고, 그럼에도 뜨거운 열기가 가시지 않은 바닥면과 텁텁한 공기에 허덕이다가 곧잘 쓰러지곤 했다. 매번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여전히 녀석은 실외 배변 중이다) 녀석을 위해 우리는 선선한 자정 무렵이 되어서야 집을 나서 호수공원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개모차 안에 엎어져 있는 녀석을 태워 가다가 고개를 들어 신호를 주면 잠시 내려주어 소변이나 대변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도였다. 개모차를 끌고 셋이서 고요한 새벽의 호수공원을 걷다가 멈췄다가 하는 시간이 30분, 1시간 늘어났고, 목을 제대로 들지도 못해 안에서 거죽처럼 축 늘어져 있던 녀석은 어느 날부터 또렷한 눈으로 개모차 위로 고개를 빳빳하게 들어 구석구석을 킁킁대기 시작했다. 살아있음을 직접 두 콧구멍으로 확인하겠다는 듯 개모차에서 당장 내려달라며 투박하게 나를 쿡쿡 쑤셔댔다. 2시간, 3시간 산책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장군이는 또 무언가를 정한 것처럼 매일을 1시간이 넘도록, 녹초가 될 때까지 두 다리로 직접 산책하기 시작했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녀석이 좋아했던 옛 동네를, 숲 속을 거닐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나면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듯 한동안 생기를 되찾고 힘을 내는 것 같았다. 나도 더 이상 녀석이 장군이가 아닌 무엇이 되어가는 걸까,라는 식의 종말을 염려하는 일이 잦아들었다.
88일 동안의 마지막 산책은 한여름밤의 꿈같았다. 셋이서 옹기종기 잔디밭에 누워 가을밤 아래 서로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기억이라거나 땀에 젖은 무더운 여름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시원한 웃음을 터뜨리던 장면이 선명하다. 가끔은 녹초가 되어 육중한 개모차를 끌고 있는 나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심 '지금 행복해. 고마워 주인.'이라는 의미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최대한) 씨익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고통스럽고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예정된 결말을 수용하고 겸허하게, 장군이와 우리의 현재에만 오롯이 집중했던 그 시간들은.
한 번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 일이 있고서 우리는 잔뜩 움츠러들어서 멀리 산책을 나가니 마니 무리가 되니 마니 실랑이하다가 바늘구멍이 큰 구멍이 될 때까지 고함을 지르며 싸우기까지 했지만 다음날 녀석은 쓸데없이 뭐 그런 걸 가지고 싸우냐며 고라니와 너구리를 좇아 가파른 절벽을 오르며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안락사를 고민해야 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우리는 이 가파른 절벽을 끝까지 올라 힘차게 달려 나가기로 했다.
쇠약해져 가는 와중에도 녀석은 생의 의지를 잃지 않고 끝까지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여느 반려견의 죽음과는 다르게 마지막 순간까지도 생기 어린 얼굴을 하고서 사소한 언질 하나 없이 떠났다. 보통은 전날쯤부터 곡기를 끊거나 주인에게 와서 나름의 인사를 전한다던데. 그날도 녀석은 산책을 나가자며 현관을 향해 두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가다가 순식간에, 내일쯤 다시 일어날 것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떠났다. 떠남에 최선을 다하는 모양이 있다면 바로 그런 모양이 아닐까. 장군이는 자신의 죽음을 이해하고 있었을까.
장군이는 멋진 개였다. 인연이 닿아 그와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마지막을 직접 보살필 수 있어 감사하다. 고된 여름을 지나 선선해진 가을을 잠시나마 함께 만끽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특별히 좋아하던 그때처럼 마지막으로 새하얀 눈밭을 함께 뛰어 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시간은 가을까지였다. 너무너무 그립고 보고 싶은 우리 장군이. 우리가 좋아했던 겨울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장군이가 우리와의 시간을 어떻게 느꼈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비록 다른 종이지만 한 생명으로서 충분한 행복과 안녕을 누렸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 평안히 쉬렴. 너무나 사랑하는, 머리 크고 겁 많은 나의 영원한 털복숭이 친구 장군아.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다시 만나랴> 라는 제목은 제가 애정하는 김환기 화백의 그림 제목입니다. 뉴욕 시절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그림이며, 그의 친구이자 <성북동 비둘기>로 알려진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라는 시의 글귀를 제목으로 차용한 것입니다. <저녁에> 의 구절은 아래와 같습니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 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용어해설**
* 하울링(howling) : 개과 동물들이 의사소통하기 위해 내는 크고 길게 지속되는 울음소리. 반려견의 경우 보통 주인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혈관육종 : 혈관 내피 세포에서 발생하는 악성 종양으로, 주로 심장, 비장, 간 등 혈액이 풍부한 장기에서 흔히 발생하며 초기 증상이 없고 빠르게 성장, 전이, 침윤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생존 기간이 매우 짧다.
* 호스피스(hospice) : 호스피스는 돌봄(care)의 종류이다. 만성적이거나, 말기이거나, 심각한 질병을 앓는 환자의 고통과 증상의 완화에 중점을 두고 환자의 감정적, 정서적 필요에 주의를 기울이는 돌봄의 철학이다.
* 비위관 : 코를 통하여 위장으로 넣는, 고무나 플라스틱 재질의 관. 위의 내용물을 빼내거나 음식물을 직접 먹기 힘든 환자에게 영양을 공급하거나 약물을 투여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 펜타닐(fentanyl) :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로 효과는 모르핀보다 100배 이상 강하며 건강한 일반인도 2mg의 극소량만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약물. 말기 암 환자처럼 지속적인 통증을 느끼는 환자들에게 주로 처방하며 피부에 붙여 양을 미세한 수준으로 조정하는 패치 형태로 많이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