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견고한 어머니가 무척 어렵다.
엄격한 규범 없이도 사랑하기를, 사랑 위에 규칙이 쌓이길 원했다.
규칙이 사랑 그 자체인 관계도 있더라. 당신이 부과하고 청구하는 수많은 규범들 중 아들의 건강을 빌미로 끊임없이 음식을 보내어 '올바른 형태'의 식사를 요구하시는 일. 당신이 보내주시는 무수히 많은 음식을 더 이상 보관할 공간이 없다는 나의 대답이 거듭해서 묵살당하는 일. 그 일에 대응하여 듬성듬성한 냉장고가 꽉 찼다는 거짓말로 방어하는 일은 내 딴에는 일종의 적절한 간격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다. 당신의 말씀처럼 특정한 관계의 경우 일종의 거리감각이 필요하다.
혼자 서울로 올라온 첫날부터 식구가 늘어난 지금까지도 어머니께서는 틈만 나면, 혹은 틈을 내어 음식을 부치곤 하셨다. 어렸을 적부터 동네에서 이름난 일꾼이었던 어머니는 빠르고 규칙적이었으며 결단한 일에 망설임이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세 번. 온갖 밑반찬과 새로 구비하거나 남은 쪽파, 무 반통, 흙감자 같은 식재료들. 넉넉히 만든 호박 식혜 세 통. 명절마다 보내는 제사 음식. 이모할머니네 수확을 도와주고 얻은 흠과 두 상자. 세를 내어 준 이 씨 농부로부터 받은 쌀 두 가마니. 엄마 친구 딸 애란이에게 건네 줄 밑반찬 여럿 묶음. 새하얗고 거대한 스티로폼 상자 안에 투명한 비닐봉지로 감싼 음식들과 음식 사이사이에 숨 쉴 틈 하나 없이 채워 넣은 키친타월, 콩가루, 대추, 김가루, 그리고 터진 김치통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선명한 빛깔의 국물. 그러거나 말거나 쉴 새 없이 식사를 청구하고 부과하는 당신의 행위는 규범인 동시에 사랑이었다. 떨어진 반찬이나 부족한 음식 없냐는 전화는 특별히 내 사정을 고려하기 위한 절차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십 대의 나는 무척 즉흥적이었다. 무언가가 난데없이 흘러나오고 또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불쑥 나를 초과한 채 튀어 나가 버리는 일이 잦아서 일정한 규범과 형식을 갖추는 일에 꽤나 애를 먹었고, 애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는 일에 진력을 쏟았다. 아무런 장치가 없다면 하루에도 몇 번씩 미루어 둔 기분들이 똑똑, 차례로 노크를 하는 바람에 하나하나 응대하는 일만 끝내더라도 금세 퇴근시간이 되어버리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반쯤 비워 둔 청하가, 다 식어 버린 필스너 우르켈이 남은 반찬처럼 냉장고에 들쭉날쭉 꽂혀 있는 날들이 야근처럼 쌓여갔다.
컴컴한 계단을 올라 예고 없이 현관 앞에 놓인 하얗고 깨끗한, 그리고 거대한 직사각형의 스티로폼 택배 상자를 마주하는 날은 어김없이 그날의 기분을 잘 응대해 내는 일에 실패하곤 했다. 스티로폼 상자는 질긴 박스 테이프로 다섯 겹, 여섯 겹 격자 형태로 꽁꽁 싸매어져 있었기 때문에 굵은 커터칼로 힘주어 잘라내어야만 했고, 분리수거를 위해 테이프를 뜯어내다 보면 스티로폼 알갱이가 잘게 부스러져 온 바닥을 버적버적 굴러다니곤 했다. 비닐에 담겨 둥그스름한 형태로 꽁꽁 얼어버린 꼭 1인분 만큼의 미역국, 콩나물국, 된장국, 탕국 따위의 국거리들은 냉동실 문을 열면 어김없이 미끄러져 바닥에 우르르 쏟아지곤 했고, 그때마다 두터운 좌절감 같은 것들이 함께 쏟아지곤 했다.
냉동실 문을 열 때마다 쿵 떨어지는 음식을 멍하니 바라보면서도 나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음식과 음식 사이에 쉴 틈 없이 무언가를 채워 넣어 고정하는 방책도 생각해 보았지만, 내키지 않았다. 그보다는 택배 안에 든 음식들이 녹을 수 있으니 오늘은 일찍 귀가하라는 당신의 엄격한 문자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보란 듯이 불필요하게 자정을 넘겨 귀가를 하곤 했다. 들쭉날쭉 빈 병들이 꽂힌 냉장고를 일부러 정리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고, 그것을 꽉 찬 냉장고로 과장하여 부족한 음식을 묻는 전화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 그 행위는 당신께서 부과하고 청구하신 규칙, 혹은 사랑에 대해 다른 양식을 내놓으라 마라 역으로 요구하는 행위에 가까웠다. 냉장고에 잔뜩 쌓인 음식을 제쳐두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거나 MSG 가득한 음식으로 대강 끼니를 때우거나 하는 식의 '올바르지 않은 형태'로 불성실한 식사를 하는 행위는, 나로서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중요한 것은 냉장고 속 최소한의 여유공간을 지켜 내는 일이었다.
작년 추석 즈음 어머니와 전에 없이 험하게 다퉜다. 시작은 또 그놈의 냉장고였다. 규범 없는 사랑, 사랑 없는 규범 같이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단순한 갈등 구조의 오래된 누적은 서로가 핏대를 세워가며 본인이 피해자라 주장하게 만드는 작용이 있다. 피해의식은 곧 작은 혐오가 되고, 혐오는 손쉽게 방정식의 해를 찾아내고 섣불리 일반화하여 면전에다 대고 문을 쾅 닫아버린다. 대화의 어느 중간에 나온 '식사가 아닌 사료를 먹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표현이 우리 사이에 얽혀 있던 무언가를 조용히 붕괴시켰기 때문이었다. 내 것인 줄도 몰랐던 무언가가 주둥이를 거쳐 구체적인 음절의 형태로 곧장 튀어나가 버리는 장면들을 뒤늦게 곱씹어보면서 나 또한 긴 세월 동안 어머니에게 어떤 규범을 청구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규범 없이 사랑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이며, 동시에 어머니가 나를 대할 때 겪는 어려움의 근원이다. 이제와 당신을 정확하게 닮아 버린 나와 당신의 대화가 새벽 내내 침묵 주위를 겉도는 것은 당신도 내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리라.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어머니는 음식을 보내는 일을 깨끗하게 그만두셨다. 냉장고는 여전히 무언가로 가득 차 있고, 나는 여전히 어머니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