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누룽지
장군이가 떠난 후, 미처 가져가지 못한 장군이의 유난한 겁을 빨아들이기라도 한것처럼 누룽지는 이전보다 더욱 겁이 많아지고 예민해졌고, 짖는 일 또한 잦아졌다. 아내와 나는 예전처럼 주변에 폐를 끼칠까 염려하며 거듭 사과하는 대신에 누룽지와의 삶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어디까지 낮추어야 하는지...?), 일어나는 사건을 그대로 수용하고 그때그때 해결해가며 우리 나름의 평안을 찾아가고 있다. 누룽지는 급격하게 나아지지는 않지만 우리의 평안을 통해 누룽지도 자기 나름의 범위 안에서 스스로의 공간을 찾아 규칙을 짓고, 그 곳에서 나름의 안정을 찾아간다. 우리의 불안으로부터 비롯된 과잉한 욕심을 내려 놓고 있는 그대로를 인식하고 해결해 나가다 보니 이전보다 누룽지의 불안이 더 잘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장군이라는 한 생명의 처음과 안녕을 직시하며 그 끝을 오롯이 책임진 경험 덕에 아내와 나는 이별에 대한 두려움, 어떤 근원적인 두려움을 수용할 수 있는 힘을 얻지 않았나 하는, 감사한 생각을 한다.
이사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 광교에서 삼송으로 (으레 그렇듯) 갑작스럽게 이사를 갔다. 장단점이 분명한 결정이지만, 그대로 다 좋다.
가족
결혼 8년째로 접어들었고, 아내의 강경한 의지로 최근 2세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대충 난임센터에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 쉽지 않은 과정이다. 안쓰러움이 크다. 좋은 소식이 있으면 좋고, 아니어도 어쩔 수 없지. 그대로 다 좋다. 아내가 남긴 편지에 적힌 몇 개의 문장들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생이라는 짧은 착시 속에서 아내를 만나고 사랑하게 된 일이, 일상을 함께 하는 일에 그저 감사하다.
커리어
이전의 10년을 돌아보고, 다음의 10년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값진 경험들이 많았다. 커리어와 관련해서는, 장고 끝에 성수동에 위치한 핀테크 스타트업의 (또) 초기멤버(사번 2번)로 새로이 합류했다. 최근 몇 년 간 다양한 규모의 조직을 경험하며 개인적으로 느끼는 점은, 나의 경우 분명한 관점을 가진 과정이 잘 통제된 조직 속에서 성실히 일했을 때 보다 근본적인 문제해결 경험이 쌓인다는 점이다. 문제 해결 과정은 대개 '특정한 결과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무엇을 감수할 것인지'를 계속해서 결정하고 끊임없이 기회를 포착하려는 과정이며, 병목구간에서 선두 그룹에 올라타기 위해 볼품 없는 자세로 악착같이 올라타고 또 넘어지는 과정에 가깝다. 어차피 할거냐 말거냐의 문제라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쾌속하게 결정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거리를 좁혀나갈 수 있도록 의사결정해야 한다. 정보의 민주화와 시스템의 복잡도 증가로 위기는 점점 더 분명하게 구분지어 제목 붙이기 어려워진다. 그러한 구조 속에서는 틈만 나면 결과를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해대는, 쉽게 엉뚱한 쪽으로 부풀어 가는 나 같은 캐릭터에게는 꼭 필요한 경험이다. 살아온 환경과 경험은 다르지만 멋진 태도를 갖춘 분들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고 있다. 재밌다. 감사한 일이야.
올바른 자세
다시금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바르지 않은 자세와 명확하지 않은 움직임은 지금 짊어져야 할 현재를 회피해 온 세월의 흔적이다. 올해는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워 하던 '한 번에 하나만 하기'와 '가장 어려운 일을 하루의 시작에 처리하기'를 그 어느 해보다 조금 더 잘 해내고 있어서 뿌듯한 마음이다. 살아온 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자유
나의 경우는 해결하고 집착하려는 마음이 지나치게 성실해지면 혐오를 낳곤 했다. 무언가를 정의하는 일(고정값, 안정화, 최적화)에 골몰하다가 인과관계나 방정식 따위에 무척이나 집착하게 되고, 결국 고장나버리는 횟수가 늘어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서 이러한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 년 간 고군분투했다. 올해 들어서야 어느 정도 시야가 명료해지고, 어쩌다가 습관이 되었는지 모르는 맹목적이고 낡은 방정식을 하나씩 인지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인과관계라는 함정, 사건의 관계 속에서 문맥(상황, 경험, 사회, 문화, 진화, 인간 종 DNA 등)을 경시하고 약간의 변수를 통제함으로써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자각없는 수많은 후견지명들과 자의식의 증식. 대부분의 경우 거시적 관점의 기회를 제거해버리는 위험이 높았던 것 같다. 미래에 대한 통제가 아니라, 현재에서 위험(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위험까지도)을 감수하고 꾸준히 시행착오를 짊어지는 방식이 미래의 확률분포에 '실제로' 영향을 줄 수 있다. 흥미를 가지고, 작게 기본을 직접 실행해보고, 그 곳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보고, 쏟아지는 사건을 감내하면서 성실히 하루하루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나 자신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게 되며, 그것은 곧 현재에 대한 집중력으로 이어진다. 원하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쉽다. 비로소 상상하는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2025년에는 그것이 '그림을 그리는 일'로 이어졌고 조금 더 공식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일견 엉뚱한 결말 같아 보이지만 오랫동안 나는 무언가를 정의하는 일, 예술을 염원해오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아마 나만 모르고 있었나 봄). 자신을 남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너무 소모하고 있다는 말로부터 이제야 조금씩 자유로와지는 것 같다.
기회와 비용
자본 증식과 관련하여, 꼭 필요한 만큼만 계량한 생활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어 본 결과 적당히 안정적인 방정식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극단적인 하나의 안정성과 함께 극단적으로 재미와 기회를 중요시 하는(시행의 비용을 극단적으로 낮출 수 있는), 양 극단을 동시에 추구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다. 2025년 한해는 그 구조를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하나씩 실험해보던 와중에 덜컥 이우환 작가의 그림을 한 점 구매했고, 작은 이 점(dot)은 분명 양으로든 음으로든 '공식적인 그림 그리기' 프로젝트의 중요한 양분이 될 것이다.
가치 제고
약간은 미쳐야 한다. 완전히 돌아버릴 의지도, 용기도 부족한 나는 6:3:1 정도로 "보통의 일:특이한 일:미친일" 비율을 유지하려고 애쓰는데, 재미있는 점은 1 중에서 살아남은 것들은 결국 3으로 편입되어 총합(sum)의 가치를 높여준다는 사실이다.
아름다움
실제로 마주한 김환기 작가님의 우주 시리즈는 무척 고요하고 고독했으며, 아름다웠다.
교류
서로의 진심 어린 대화와 조언 속에서도 얻어가는 것이 없는, 수용하거나 더 넓어지지 않는 사람들과는 점점 더 교류가 어렵다. 잡으려 해도 허공에 흩어진다. 진솔함은 이러한 것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값지다.
숫자
4월부터 출퇴근 시간에 30분 이상 책 읽기를 178일 중 119일(68%) 실행했으며, 양자물리학, 경영, 뇌과학, 기타 순으로 읽었다. 4월부터 하루 6천보 이상 걷기를 실행했고 219일 달성했다. 일평균 7,380보를 걸었으며, 4~8월은 평균 1만보 수준에서 9월~12월은 평균 6천보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림을 주 0.7회 그렸다. 하루 20분 이상 명상을 365일 중 351일(96%) 수행했다. 재활 목적으로 하루 30분 이상 스트레칭/코어 운동을 365일 중 318일(87%) 수행했다. 근 10년 만에 다시 시작한 런닝은 주 3회 목표였으나 30일 미만(19% 미만)으로 수행했고, 일평균 3km 정도를 달렸으며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다. 격주마다 글쓰기는 브런치 게시글 4개에 그쳤다. @Thanks to routinery
숫자(new)
출퇴근 중 독서 80%, 일평균 8,000보, 그림 주 2회, 명상 99%, 재활 운동 근력 운동으로 전환, 운동 하루 40분 이상 80%, 런닝 주 3회 일평균 5km, 브런치 글쓰기 격주 1회.
인공지능
AI가 휩쓴 한 해였다. 언어(LLM)로 구성된 지식의 접근성 면에서는 확실히 상용화 수준, 어중간한 주니어가 필요 없는 수준임을 체감한다. LLM 없이 그동안 어떻게 일을 해왔었는지 잊을 정도로. 바이브 코딩으로 대표되는 AI 에이전트를 활용한 제품개발은 이제야 상용화를 위한 최소 출발선에 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기술의 생산 인프라 비용이 감소하면서 데이터 플랫폼이 등장하고 가시성과 접근성이 높아지며 수많은 Usecase들이 발굴되는 지점. 많은 제로투원 과제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AI를 활용한 제품개발방법론을 팀에 이식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고, 실효적인 생산성 향상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을 체감하고 있다. 이제야 AI의 장황함을 잘 통제하기 위해 훌륭한 검토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있고, 이에 드는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궤도에 오른 제품개발팀 미만으로 낮추는 구간에 특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필요한 만큼 정밀하게 자동화할 수 있는 구간이 생각보다 적다는 생각도 한편으로 든다. 실제로 그런 것인지, 환경의 영향인지는 조금 더 시간이 쌓여야 윤곽이 잡힐 것 같다. 올해는 회사와 개인 프로젝트에서 실효적이고 반복가능한 무언가를 얻고, 또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삶의 기술
각자의 세계 자체는 외부에서 접근할 수 없으며, 세계 외부와의 상호작용은 의미 있는(useful) 잡음(noise)에 가깝다. 잡음은 필요하기도, 불필요하기도 하다. 그저 각자의 고유 세계는, 인생은 지독하게 고독하다. 그 사실을 수용할수록 더 자유로와진다. 현재가 똑바로 보이고 하루가 더 소중해지지고 아내와의 관계는 돈독해진다. 삶은 보다 더 아름다워진다.
낡은 습관
걱정과 불안은 '지금 여기'에 없다. '감정'과 '생각'은 내가 아니다.
'아니오'는 에고를 키운다.
작품(artworks)
지름길은 없다. 미래에 빠르게 닿으려는 노력이 현재를 붕괴시킨다. 붕괴된 현재와, 이를 복구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설명력(correlation)은 특정 시기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의 세계에서 빛, 초록, 숲, 파도, 회복, 현재는 중요한 회복 지점이다. 이원론에서 벗어나 세계를 안쪽에서부터 바라보기 시작하면 현재, 과거, 미래는 인간의 의식 내부적인 관점에서 중첩되어 있다. DNA로부터 내려 온 생성형 모델(brain)의 가설을 주관적으로 검증(상호작용)해 온 사건들을 (나의, 사회의, 인류의) 기호를 활용하여 공통의 사실로 명명하고, 공간이 확장되어 감각 기관이 검증(통제)할 수 있는 확률이 낮아지면 거리가 멀다고 하며, 감각기관을 벗어난 수준의 먼 공간에서 검증한 사건을 과거라 이름 짓는다. 아직 검증하지 않은 가설들의 잠정적 확률 분포를 미래라고 부른다. 모든 물리학은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는 해석이며, 이 껍질을 뒤집어 벗겨내면 남은 것은 '공'이다. 엔트로피는 희미함을 알리는 지표이다. 사물다운 사물은 매우 장기적인 사건에 가깝다.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사물다운 사물이 되고 싶어 우리는 현재를 붙잡고 시간을 만들어 의식과 자아를 탄생시켰고 문명을 발달시켰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우리는 착시된 미래에 빠르게 닿기 위해, '미래' 자체를 통제하고 조작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한 지나치게 성실한 노력이 현재를 붕괴시킨다. 비밀은 그저 '지금 여기'에 고요하게 남아 있다.
더 나은
감사한 일, 감사한 분들이 많다. 주어진 하루가 감사하다고 느끼는 빈도가 늘어난다.
한 문장
모든 주어진 상황을, 일어나는 사건들을 내가 온전히 선택한 것처럼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