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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 Apr 12. 2024

재능 없는 꾸준함

부지런한 사랑

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 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재능과 꾸준함을 동시에 갖춘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창작을 할 테지만 나는 타고나지 않은 것에 관해, 후천적인 노력에 관해 더 열심히 말하고 싶다. 재능은 선택할 수 없지만 꾸준함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지런한 사랑'은 작가가 학자금 대출 2500만 원을 갚기 위해 월 구독료 만 원을 받고 매일 한 편의 수필을 구독자의 메일로 발송해 이를 책으로 엮어 만든 작품이다.


이슬아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그는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가다.

지난해 한국문학을 이끌 젊은 작가로도 인정받았다.

책을 읽은 사람들도 이슬아라면 번쯤 들어봤을 것. 누군가는 이슬아에게 젊은 박완서의 느낌도 받는다. 그는 현재를 왜곡하지 않고 말하고, 미래를 다정하게 열어주는 작가다.


왜 나는 이 작가와 이 작가의 글을 사랑하나.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고 위로를 받는다. 특별히 힘내자는 내용이 없지만 힘이 난다. 텍스트로 접한 글은 이미 작가에게서 떠난 글인데도 온기가 느껴진다.


우리는 글쓰기의 속성 중 하나를 알 것 같았다.
글쓰기는 게으르고 이기적인 우리를 결코 가만히 두지 않는다.
다른 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고, 스스로에게 갇히지 말자고 글쓰기는 설득했다.
내 속에 나만 너무도 많지는 않도록. 내 속에 당신 쉴 곳도 있도록.


나는 왜 이 문장들 사이에서 비집고 누워 자고 싶은가.

나는 부지런하지도 않고 사랑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책, '부지런한 사랑'을 집어든 시작은 내게 없는 요소들에 동경이 컸다.



나는 '천성이 게으르다'는 문장을 떠올렸다. 걸핏하면 누워있고 끈기 있게 공부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래서 부지런한 쪽보다는 게으른 쪽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런 나라도 어떤 날은 손과 발이 안보일정도로 움직인 날이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저녁 약속이 잡히기 전, 옷장에서 어떤 옷을 입을지 동동거릴 때 졸업 막학기를 앞둔 4학년으로써 가장 부지런해지는 순간이었다.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아인이는 정말 열정적이다. 느리지만 부지런하고 꾸준하다."


친구들은 분명히 내가 모르는 이면을 본 적이 있었다.


언젠가 글을 여러 편 쓰다 보면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순간적으로 드는 묘한 기시감이 드는 때가 그렇다. 분명 매번 다른 소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비슷한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왜 또 결론이 같을까? 비슷한 글이 또 생겼다. 내가 전할 수 있는 메시지는 이게 끝인 걸까? 진부해, 진부하다. 글을 쓰는 나조차도 내 글이 무료하다고 인식되는 순간, 더는 글을 쓸 수 없게 된다. 겨우 완성한 문장들에 회의적인 검열이 들어간다.


그러던 중에 "나는 냉정하고 이성적이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얼음으로 된 차가운 갑옷을 입은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려고 애썼던 시간이 있었다. 사랑한다는 마음이나 따뜻한 촉감을 외면하려고 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들조차도 누군가는 나를 다정한 사람으로 봤다.


그때 알았다. 내 글을 스스로 진부하다고 여겼던 이유는 타인은 존재 없이 '나'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안에 등장했던 다른 이들도 있었지만 존재감은 매우 작았다. 내가 그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개성 있는 나의 글을 쓸 때에는 내 안에 존재하는 티끌의 생각과 감정까지 끌어모아야 하는 줄 알았지만, 끌어어 모으고 또 쥐어짜다 보면 쓸 수 있는 이야기를 금세 바닥이 난다.

그럴 때 의식적으로 나를 향한 글쓰기에서 잠시 벗어나보는 것이다. 주변을 유심히 둘러보고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을 되돌아보고 흘러갔던 대화들을 곱씹어보면서 말이다. 내 안에 것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나의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알고 있으니까.


이슬아 작가는 내가 잊고 있었던 나의 면면을 떠올리게 한다.


'다른 이의 눈으로도 세상을 보게'하고 '스스로에게 갇히지 않게'해줬다.


아주 부지런히 글을 써봐야겠다. 내 안에 사랑이 담길 그릇을 부지런히 빚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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