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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bu Jul 25. 2024

최선을 다하지 말자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제발 좀 하지 말자..

며칠 전에 상담 선생님으로부터 이 말을 처음 들었다. 당시 내가 무언가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에 선생님께서는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하면 안 돼요"라고 말씀하셨다. 듣자마자 완전 얼탔다. 잘못 말씀하신 줄 알았다. "엥? 보통 반대 아닌가요?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해라 그래야 뭐 후회가 없다 막 그러잖아요 잘못 말씀하신 거 아니에요?"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되묻자 선생님께서는 허허 웃으시며 이렇게 답변하셨다. "할까 말까 고민되는 이유는, '해서는 안 될 이유'를 은연중에 알고 있기 때문이죠. '해야 할 시점'은 '할까 말까' 고민될 때가 아니라 '해야겠다'라는 확신이 들 때라고 생각합니다." 


WOW..  저 명제가 과연 나에게도 해당될까 싶어서 몇 초 동안 생각해 봤는데, 맞는 것 같았다. 고민될 때는 '해서는 안 될 이유'를 알고 있어서 고민되는 거였다. 그리고, 하고 나서 후회가 없었던 것들을 생각해 보면 '해야겠다'라는 확신이 들었던 순간에 결단을 내린 일들이다. 


지난 몇 년간, 내 몸을 제대로 건사할 여유조차 없었음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활동을 찾아보고 그것들을 할지 말지 고민했었다. 그때 벌인 일들 중 반 정도가 '해야겠다'라는 확신에 의해서가 아닌, '할까 말까?'의 고민에서 결국 '말아야 할 이유'를 외면하고 시작한 것들이다. 이성적으로는 여기서 더 일을 벌이면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내 욕심과 야심을 그때의 나는 꺾을 수가 없었다.. 다 재밌어 보이고, 다 내가 성장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인데 어떻게 포기해..라는 생각으로 죄다 저질러버려서 그 대가를 호되게 치렀고, 치르고 있고, 앞으로도 치르게 될 예정이다.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를 100이라고 할 때, 100을 외부 활동에 모두 쏟아버리니 그 외의 것들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더라. 친한 사람들의 생일 축하를 못 해줄 때도 많았고, 소통할 에너지가 바닥나 원래도 잘 안 보던 연락을 더 안 보게 되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멀어졌다.

'시간이 없다'라는 이야기는 핑계인 줄만 알았는데, 책들을 실제로 '읽을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하게 되면서 '시간이 없다'라는 말을 체감했다. 주말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스터디 과제물을 감당하느라 가족들과 잠깐 바람 쐬러 나가는 일도 생략하게 되었다. 


이렇게 일상을 잃어버리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최선을 다하지 말자 


김영하 작가님의 인생 모토는 '절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이다. 100%를 쏟아부어서 나를 소진시킨다면, 다른 무언가를 할 여유와 여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문보영 시인님은 '준최선의 롱런'이라는 제목으로 산문집을 펴냈다. 멀리서 보면 최선보다 준최선이 가성비가 더 좋을지도 모른다고, '번아웃되지 말고 최선 직전에서 어슬렁거리면서 간을 보자' '대충 하는 것은 아닌데 최선을 다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서 묵묵하게 롱런하자'고 말한다. 

지당하신 말씀들이다.. 특히 삶의 외각에 있는 것들에 너무 최선을 다하지 말자. 삶의 중심에서 나를 지탱해 주는 것들은 '최소한의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ex : 밥 건강하게 잘 챙겨 먹기, 방 정리하기, 운동하기, 목적 없이 산책하기, 사색하기(?), 책 읽고 글쓰기)과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교류(ex : 좋아하는 사람들과 세 달에 한 번은 만나기, 전화로 두 시간 수다 떨기, 블로그 정독하고 댓글 달기, 가족이랑 외출하기)로 구성되는 것 같다. 이외의 것들은 삶의 외각에서 활력/성취감을 더해주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워주거나, 타인의 인정과 관련된 것들로, 올해 무분별하게 벌여놓은 스터디와 대외활동들은 이와 관련되어 있다. 덕분에 내 삶의 근본적인 것들을 소홀히 하게 됐고, 중심이 무너졌고, 자주 무기력해졌고, 속박감에 답답했다. 


외곽을 가꿀 때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성취감이 분명 있지만, 그것에 치우쳐 삶의 내실을 다지지 않으면 어느 순간 회의감에 빠진다. 이렇게 번아웃을 겪으면서, 이전엔 흘려들었었던 아이유 님의 인터뷰가 떠올랐고 참 공감됐다. '주변을 잘 돌봤나?' '스스로를 잘 돌봤나?' '내 집이 잘 정돈되어 있나?' 무엇 하나 떳떳하게 "네"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새로운 분야, 새로운 지식, 새로운 활동이 주는 자극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 같다. 기존의 것들을, 일상적인 것들을 유지하고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들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난 몇 개월, '갓생 살고 있으시네요'라는 말만 수십 번은 들은 것 같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중심은 점점 무너지고 있었지만 보이는 삶은 알찼으니까. 심지어 나조차도 중심이 무너지고 있었다는 걸 몰랐으니까, 새롭게 벌인 일들이 그저 재밌었고, 세상엔 죽기 전에 해봐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안다. 재밌을 것 같다고 다 해보는 건, 내가 얼만큼 감당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자기 몰이해에서 비롯된 자만이고 야심이고 욕심이라고. 이렇게 치우친 삶은 갓생이 아니라 망생이라고. 진정한 갓생은 나의 몸과 마음을 지키고 주변을 돌볼 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그래서 결론은....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하지 말자

뭔가 좀 바쁠 것 같으면 일 좀 벌이지 말자

일상을 잃어버리면서까지 최선을 다해서 살지 말쟝

다들 대충대충 적당히 사세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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