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타쿠나 Apr 29. 2024

AI 시대이지만 구식 사교육 계속 시키겠습니다.

섣불리 학원 끊은 것에 대한 후회


나는 철학과를 나왔다. 간혹 예의없는 사람들은 점수 맞춰 갔냐, 좋아서 갔냐고 대놓고 물을 만큼 의아하고 특이한 전공으로 보이는 과다. 그런 모욕이 일어나는 이유는 철학이 죽은 학문처럼 인식되기 때문이다. 써먹을 데 없고 돈이 되지 않는다.


학교에 다니면서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리스 철학을 배울 때였다. 시험을 위해 만물의 근원이 물,불,흙,공기로 이뤄졌다는 엠페도클레스의 이론을 외우고, 뒤이어 그 중의 짱이 물인지 불인지 수(數)인지를 논쟁했다는 그리스 철학자 계보를 암기하는 데 현타가 왔던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면담을 신청해 교수님 연구실에서 얘기를 나눴다. 이미 아닌 것으로 결론난 그 과정을 원소기호 외우듯 암기해 시험지에 쓰는 게 무슨 소용인지 회의가 든다고 했다. 교수님의 대답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굉장히 주의 깊게 듣고 최선을 다해 해답(을 향한 과정)을 공유하려 했던 태도만 기억에 남는다.


요즘 아이들은 공부를 참 많이 한다. 진정으로 학원다니느라 놀 시간이 없다. 의대광풍에 대해 쏟아지는 기사와 시사물을 보면 초등 중학년이 중등수학을 푸는 게 그리 드문 일이 아닌가보다. 앞서가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너무 많은 공부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아이들에게 시키는 그 공부가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를 달달 외우는 것과 다를바 없는 게 아닐까 싶은 의문이 든다. AI가 킬러로봇이 돼 우리의 삶과 문명을 위협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그 분야 대부(제프리 힌턴 박사)의 경고가 뉴스가 되는 시대다. 5년, 10년을 예측하고 장담할 수 없는데 수학 선행이 몇년 앞서냐 뒤처지나로 아웅다웅하는 게 부질없어 보이기도 한다.

 힌턴 박사는 구글을 떠나며 "자신이 평생 이룬 AI 관련 성과가 후회스럽다"는 말을 남겼다.


어느날은 '달리는' 시류에 올라타지 아야겠다는 생각이 충동적으로 들었다. 아이 학원비가 회수 가능한 투자인지 의문스러웠다. 영어만  벌써 최신 스마트폰만 있으면 실시간 AI로 언어장벽을 절반 쯤 허물 수 있다. 몇 년 지나 영어 공부에 올인하는 모습이 비웃음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밑빠진 독에 물 붓듯 들여야 하는 사교육비가 아까워졌다. 꽤 결단력 있게 교과 학원을 끊었다.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언젯적 국영수 올인이야! 하는 목소리가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을 이겨냈다.


그,러,나 1년도 지나지 않아 결기는 후회로 바뀌었다. 부랴부랴 아이 레벨테스트를 보러다니느라 바빠졌다. 변심의 계기는 순진하고 단편적이었던 내 관점을 알아차린 데 있었다.


알고보니 나는 제법 낙관적이고 사회에 대한 신뢰감이 높은 인간이었다. 과거의 공부 방식을 등지려면 이것이 앞으로 쓸모없어 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확신의 근거는 기술 발전에 따라 교육 제도와 평가 방식도 기민하게 변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사회와 제도, 교육은 각기 다른 변화 속도를 갖는다. 사실 교육은 작동 원리가 다르다고 보는 편이 맞을지도. 사회나 제도가 직선 방향으로 움직이는 데 반해 교육의 변화는 자전하는 편에 가깝다. 뭔가 달라진 것 같으면서도 자꾸 기시감이 든다. 학력고사가 수능으로 바뀌고, 입학 전형에 수시모집 비율이 는다고 한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함수와 방정식, 역사와 물리이론임은 변하지 않는다.


교육의 변화는 하나의 혁명이다. 시대가 송두리째 변해야 시대의 것과 이질적인 배움과 평가가 이뤄진다. 조선시대의 과거제도와 수능시험 만큼의 차이가 그제서야 생겨난다. 지금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 혁명적 전환의 직전 단계라고 볼 수 있는가? 당장 2028년 대입 개편안만 봐도 수능은 건재하다. 과목을 어떻게 이합집산 하느냐의 변화이지 근본을 뒤엎는 혁명이 아니다. 교과 과목을 손놓을 수가 없다, 손놓아서는 안 된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학벌이 무의미해진다니까요?"라고 지적한다면, 되물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존에 해오던 공부 대신 뭘하면 좋겠습니까, 해야 합니까, 학력과 학벌의 고고익선 대신 어떤 능력을 갖춰야 도움이 됩니까? 정말로 알고 싶다.


무의미해 보이는 사교육은 최소한의 보험 같은 것이다. 별 수가 없으니 그리스철학의 4원소 같은 배움이라도 일단 해두고 본다. 원래 제도는 현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기후위기가 인류생존의 구체적 위협임에도 여전히 실효성 있는 대책이 없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만약 학벌과 학력의 카르텔이 일부나마 질긴 생명력을 유지한다면... 혼자 눈치게임에 실패하는 꼴이다.


시중에 AI 시대에 필요한 인재상을 설명하는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지의 시대를 다들 불안해 한다는 방증이다. 그 책들이 실로 구체적이고 믿을 만한 지침을 알려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런 식으로 파악하고 대비할 수 있는 '격변'의 시대라면 이렇게 초조해 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그런 책들을 온라인의 사주풀이 보는 마음으로 읽는 편이다. 완전히 무시하지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이따금씩 떠올리는 정도로만.


AI 시대에 일자리를 찾는 이들을 위한 조언을 해달라는 요청에 일론 머스크조차 한동안 대답을 못 한다. 마침내 나온 답변도 원론적 방향을 제시할 뿐이었다.


통제감을 버리려 한다. 앞서나간 준비로 시대를 는 혜안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놓으려 한다. 내가 알 수 없고 대비할 수 없는 변화도 있다.


이때 관습 대로의 행동은 애처로운 축에 가깝다. 미련하고 시대에 뒤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뭐라도 해보려는 마음일 테니 말이다. 이를테면 지구가 멸망한대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고, 적군의 신식무기인 총포 섬광이 눈앞에 번쩍여도 화살을 쏠 수밖에 없는 심정이랄까.


이런 생각을 하니 사교육이 예전처럼 밉지 않다. 성적과 레벨에도 과몰입하지 않는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 쓰고보니 교육비 쓰는 동기는 애초에 중요하지 않을지도. 주인공은 추리려 해도 100만원은 금세 가까워지는 학원비다.

매거진의 이전글 입주 도우미 300만원 주고 멘탈 녹아내린 사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