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개월 된 쌍둥이를 돌봐줄 입주이모를 고용했다. 교포(조선족) 이모의 쌍둥이 월급 시세는 최저 300만원이었다. 놀라운 금액이었다. 지금은 애 한 명만 봐도 3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고 하니, 다른 의미로 놀라운 액수일지도. '아 2년 전만 해도 할 만한 금액이었구나.'
입주이모가 있었던 시간은 6개월이었다. 그동안 이모 3명이 바뀌었다. 모두 내가 내보낸 게 아니고 본인들이 그만두시겠다고 한 거였다. 두 번째 이모의 통보를 듣고 난 뒤 나는 길바닥에서 엉엉 울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무너졌던 순간은 그때였다. 구하기 힘든 쌍둥이 이모를 어떻게 구하나 싶었고, 구인기간 동안 고생할 생각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가 그렇게 별로인가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 24시간 한 공간에서 붙어지낸 이모가 한 퇴사(?) 통보는 내가 인간적으로 별로라는 평가인 것 같았다. 한 번도 아니라 잇달아 그랬다는 건 더더욱. 멘탈이 완전히 박살났다.
나라고 이모들이 좋았던 건 아니었다. 타인은 지옥이었다. 하긴 가족의 생활습관도 견디기 힘들 때가 있는데 문화가 다른 생판 남과 함께 지내는 게 결코 쉽지 않다. 특히 A이모와 함께 한 4개월은 쉽지 않았다. 이모는 가래를 수시로 뱉었다. 가래 끌어올리는 소리는 어떻게든 참아도 뱉어내는 소리는 견딜 수 없었다. 이모는 결코 침을 깔끔하게 뱉지 않았다. 마치 혓바닥에 붙은 1mm도 안 되는 비닐을 떼어내야 한다는냥 '푸, 푸' 소리를 연거푸 내며 비말을 발사하듯 튕겨냈다. 그 침이 세면대 수전과 큰 아이의 양치 컵에까지 닿았을 거라는 생각을 떨치기 위해 주문을 외워야 했다.
물을 '펑펑' 쓰는 습관도 불만이었다. 이모가 설거지를 하면 기본이 30분이었다. 잔류 세제를 남기지 않겠다며 헹구고 헹구고 또 헹궜다. 처음에는 깨끗해서 좋은 줄 알았다. 그런데 저녁 설거지 하는 데 1시간이 걸리는 걸 보고 이건 아니지 싶었다. 설거지를 하느라 다른 일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모는 자원 쓰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액수의 크고 작음을 떠나 그 태도는 공공시설 세면대 앞에 붙은 '우리는 물부족 국가입니다' 라는메시지를 보고 자란 내게 불편한 감정을 일게 했다. 일단 날마다 두루마리 휴지를 1통 이상 썼다. 도톰한 두께인데도 코를 한 번 풀 때마다 다섯 바퀴쯤 돌린 다음 사용했다. 옷 단 한 벌을 빨기 위해 세탁기와 건조기를 썼다. 억제의 역설적 작용으로 안 보려 할수록 그런 행동이 더 눈에 들어왔다.
짧게 있었던 B이모는 생활습관에서 걸리는 건 없었지만 너무 노련해서 나를 조련하려 했다. 기선제압을 위해 은근하게 나와 우리집을 무시하는 언행을 했다. 일단 사는 아파트 시세와 자가 여부를 물었다. 그리고 나를 처음부터 '00엄마'라고 불렀다. 관행처럼 사용되는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바란 게 아니다. 호칭 정리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의례적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 이모는 첫날부터 나를 동네 새댁 다루듯 했다.
이모의 주 대화소재는 전에 있던 집들이 얼마나 대단했고 자신이 얼마나 인정 받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이모는 예전 집의 지위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듯 보였다. 직전 집의 자기 방이 우리집 안방보다 크고 TV와 침대도 있었지만 괜찮다고, 오히려 우리집이 작아서 청소하긴 편하겠다고 했다.
나를 아랫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일에도 소홀했다. 안고 있던 쌍둥이 2호가 자면 자는 동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화장실에 가서 본인의 머리를 만졌다. 애만 재우면 자기 할 일이 더는 없다는 듯이. 그만두게 해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지던 차에 도와주러 오신 친정엄마와 이모의 갈등이 일어났다. 집에 CCTV가 있는데도 사실관계와 다른 얘기를 내게 했다. 그녀는 이런 취급 받고는 일 못한다며 '친정엄마가 별로 돈 많아 보이는 것도 아닌데'라는 말을 남기고 다음날 짐을 싸서 떠났다.
물론 애정을 느낀 지점도 있다. 갓난쟁이 쌍둥이 보는 일은 정말 고되었고 남편의 도움이 1도 없었기 때문에 이모님은 유일한 기댈 곳이었다. 그녀들은 정말이지...인내심이 대단했다. 아이가 칭얼거려도 화내지 않고 끝까지 달래줬다. 응당 겪어내야 할 일이라면 담담하게 해내는 태도를 그녀들로부터 배웠다. 게다가정말 아이를 예뻐해줬다. 특히, A이모는천성이 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쌍둥이 1호를 볼 때 짓는 미소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복에 겨운표정이었다. 그 얼굴을 보면 감사함에 벅찼고 '가래 그까짓 것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잘 한다는 정보를 받았지만 이모님들은 음식 안 한지 오래 됐다고 요리하기를 거절하셨다.
A이모가 손목이 아파 쉬겠다고 그만둔 (알고보니 50만원 더 주는 곳으로 간 것이었다) 다음, 입주이모는 그만 구하기로 했다. 더이상 이 모든 법석을치르기 싫었다. 조금의 기다림 끝에 인근에 사는 좋은 출퇴근 한국 이모를 만나 쌍둥이가 어린이집 가기 전까지 함께 했다.
쌍둥이 입주 이모 시장은 정 붙이고 있는 필드가 아니었다. 노동강도가 세고 페이가 높은 만큼 짧고 굵게 치고 빠지는 시장이다. 그래서 일이 고되거나 더 좋은 조건 있으면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일이 흔하다. 애 한 명 케어하며 아이 중학교 될 때까지 돌봐주는 이모님들과는 풀이 다르다.
그러니까 '내가 300만원이나 주면서 이렇게 처참한 기분을 느껴야 하나' 라고 괴로워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집은 쌍둥이 외에도 큰 애가 있었기 때문에 더 기피할 수밖에 없는 집이었다. 돈을 더 주거나 이모님 노동강도가 줄게 가사 이모를 따로 두거나 하면 됐다. 비용 부담 때문에 그것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들이 떠난 것이었다.
최근 타워팰리스 신생아 입주 도우미 공고의 월급 450만원이 화제가 됐다. 세금도 안 떼고 현금 450만원이 통장에 꽂히면 웬만한 직장인 월급보다 많다. 나는 이게 화제가 된 게 이상했다. 타워팰리스라서 특별히 많이 주는 게 아니고 시세가 이미 그러한 것인데.(그 금액이면 한국인 이모를 구한 것일 거다. 입주이모 페이는 국적에 따른 차등임금이 적용된다.)쌍둥이라면 500~600을 줘야 한다. 이게 현실이다.
다시 쌍둥이 신생아 돌보는 시절로 돌아가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짧게라도 출퇴근 이모님 2분을 모시는 게 낫겠다 싶다. (그러면 구인도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잠을 푹 자든지 숨 돌리러 바깥 나들이를 하든지 할 테다. 입주 이모님과 단 둘이 집에 갇혀 보낸 시간은 숨통이 조이는 24시간이었다. 물론 일을 해야 하는 그들도 쉽지 않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