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돌잔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었다, 인스타그램의 어떤 사진을 보기 전까지.
알고리즘에 걸려 뜬 돌잔치 사진은 화사한 꽃잎과 같았다. 엄마는 다른 세상 사람처럼 보였다.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좋고, 이런 1차원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사진의 무드에서는 아이의 칭얼거림과 똥기저귀, 시큰거리는 손목 통증 같은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보티첼리의 숲 배경 그림을 보면 신록의 푸르름과 결점없는 아름다움만 보이지 살갗을 물어뜯는 벌레나 발바닥에 박히는 돌멩이 같은 것을 감히 연상할 수 없는 느낌이랄까.
호텔 돌잔치의 근본 목적은 사진이다. 인생의 고락에서 즐거움(樂)에만 극단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 나에게는 그런 과잉의 기록이 필요했다. 당시에는 아이가 크면 내 상태도 '제자리'를 찾을 것이란 기대를 전혀 할 수 없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해도 거울을 보면 한숨만 나왔다. 지난 1년 동안 10년 치 중력을 몰아 받은 것마냥 얼굴살, 뱃살, 가슴이 축축 처졌다. 임신 중기부터 시작된 꼬리뼈 통증도 1년이 다 되도록 차도가 없었다. 다시 돌아오긴 힘들 것 같으니 가장 젊을 때라도 (바로 오늘!) 호사를 부려야 할 것 같았다. 여행 가도 내 사진은 손 꼽을 정도만 찍지만 그때 만큼은 사진에 진심이었다.
호텔 돌잔치 비용은 처음에는 합리적으로 보였다. 소규모 돌잔치였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지들의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것도 한몫했다. 한식집이든 다른 행사용 베뉴든 스냅 사진을 위한 비용이 더해지는 순간 으악하는 견적서가 나온다. 그럴바엔 돈 조금 더 주고 호텔에서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하게 된다. (나왔다, 보태보태병!)
조용한 분위기를 원한 마음도 컸다. 소리지옥에서 살고 있으니 돌잔치라도 좀 조용하게...
메모장의 지출 기록을 보니 700만원 가까이 들었다. 호텔 돌잔치 패키지와 드레스 대여비, 스냅사진과 메이크업 비용 등등으로 썼다. 처음 예산보다 꽤 불어난 금액이었다. 손님을 더 부르게 돼서 오버된 부분도 있지만 드레스나 사진 업체를 고를 때 가격을 고려하지 않은 탓도 크다. 가장 예쁜 업체가 가장 비쌌다.
호텔을 장소로 정한 이상 질주를 막을 브레이크가 없었다. 뭔가를 아껴보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내가 들인 돈과 수고가 매몰비용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총 비용을 생각하면 다른 업체보다 60만원이 더 비싸도 원하는 사진작가에게 찍는 게 이득이었다. 하나가 틀어져서 전체를 망칠 순 없었다.
그래서 결과물이 어땠냐 하면...썩, 그다지였다. 기대한 사진에는 내가 원한 임팩트가 없었다. 유명한 작가가 객관적으로 잘 찍은 사진이지만 무난했다. 생활냄새가 싹 지워진 행복에 겨운 가족사진은 아니었다. 어딘가 엉거주춤 했고 그랬기에 안쓰러웠다. 너무 애쓴 모습이 보여 역으로 고단한 일상이 유추됐다. 처음에는 작가의 포트폴리오 용으로 SNS 사진 공개에 동의했으면 촬영과 보정에 더 힘써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그냥 생긴 모습 대로 나온 것이었다.
사진 찍으며 이 악문 흔적은 팔뚝에서 보여졌다.
호텔 돌잔치는 치러야 할 홍역이었다. 당시의 나는너무 지쳤고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한번의 공주놀이로 (사촌언니가 놀라버린 '과한' 드레스!) 지난 1년에 피치톤 필터를 끼울 수 있다면 더한 것도 했을 것이다. 혼자 마음을 다스려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스스로를 보잘것 없이 여기고 있었기에 공인을 위한 이벤트가 필요했다. 돌잔치를 안 했어도 비슷한 돈을 쓰며 의미부여를 위해 몸부림 쳤을 것이다.
(그럴 일은 없지만) 넷째를 낳게 되면 다시 이런 돌잔치를 할 것이냐 묻는다면 절대 NO다. 그런 식으로 채워질 수 없는 자존감이라는 걸 알았으니. 아, 어쩌면 다시 호텔에서 해야 할 수도 있다. 쌍둥이 돌잔치에 초대받은 친지들은 돌반지를 2개씩 해오셔야 했다.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초대가 민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뒤늦게...) 미안한 마음은 식사에 힘을 더 주는 것으로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 물론 요란한 옷과 스냅사진 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