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게 욕심 내는 이유
자식은 나의 자아실현을 위한 대상이 아니다.
얼마 전, 딸들과 함께 <성적을 부탁해 : 티처스>라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워낙 TV를 보지 않아서 어떤 취지의 프로그램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의대를 원하는 부모님과 고1 아이의 공부법과 성적 관련 이야기가 나와서 흥미로웠다. 고3 되는 딸이 있다 보니 남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어 더 집중했는지도 모른다. 4형제를 키우는 부모가 왜 의대를 고집하는지 궁금했다. 부모 중 한 명이 의사인가 싶기도 했다. 같이 보던 남편은 버럭버럭 하면서 왜 자식을 통해 자아실현을 원하느냐고, 분명히 부모 중 누구도 의사가 아닐 것이라 확신했다. 사연이 궁금했던지라 계속 보았다. 병원에서 일했던 부모의 경험으로는 의사가 병원에서 대빵인 것을 보고 4형제를 모두 의사로 키우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각각 분야를 다르게 하여 한 빌딩에서 4형제가 한 층씩 병원을 개업했으면 하는 꿈을 꾸고 있는 부모는 기승전 "의대"를 외치고 있었다. 그러자 그 프로그램의 패널인 강사 정승제는 그럼 청와대에서 일하려면 '대통령'이 되어야 하냐고 농담처럼 던졌다. 웃으면서 보았지만 뭔가 찜찜했다. 그 프로그램은 성적을 높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목표가 있기에 그 외의 이야기는 더 건드리지 않았다. 왜 의사가 되고 싶은지, 어떤 마음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열심히 보는 큰 딸에게 부담되지 않냐고 물었더니 무심한 답이 돌아왔다.
"남 이야기에 부담 가질 이유가 있나? 그냥 공부방법이 궁금해서 보는 건데요~"
"너도 의대 가야겠다. 의대 가자~"
"응. 그래요. 근데 굳이? 생각도 없는데?"
씨알도 안 먹히는 농담 끝에 흔들림없는 아이를 본다. 공부에 대한 부담감이 왜 없냐만은 진로에 대해서 우리 부부 누구도 강요하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프로그램을 보았나보다. 부모가 자식한테 욕심이 없을 수 있을까. 욕심 많았던 엄마였던 나 역시 무던히 노력하고 노력해서 조금씩 덜어내고 내려놓았던 욕심이기에 그 근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자식한테 욕심이 내는 이유가 뭘까.
나 역시 아이가 어렸을 때는 남의 눈이 중요했다. 잘 키웠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기에 남들이 인정해 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사실 어떤 부분에서는 확신이 서지 않아서 확인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예의 바르고 곧은 인성을 갖고 있으며, 배려하며 선한 마음을 지니길 바랐다. 더 나아가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고, 인기도 많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엄친딸이길 바라는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좋은 엄마로 인정받으려면 아이가 훌륭해야 했다. 잘 키우기 위해 많이 공부하고, 노력하고 시간과 공을 들였기에 아이가 인정받는 것을 내가 인정받는 것으로 동일시했다. 거기에 교사라는 직업까지 어깨를 눌렀다. 교사가 아이를 왜 저렇게 키우지라는 소리를 죽어도 듣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일을 통해 욕심을 버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알았다. 내가 얼마나 남을 의식하는 엄마였는지, 아이를 나의 자랑으로 또 성취물로 보여주고 싶어 했는지를. 서서히 욕심을 버리면서 아이를 아이 자체로 인정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꿈을 아이를 통해 실현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티처스>에 나온 부모를 전부 알지 못하지만 삶의 계획에 자식들이 포함되어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나와 아이는 다른 인격체인데 미래를 계획하는 데 있어 자식을 넣을 수 있다는 것이 낯설었다.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욕구를 완전하게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컸는데도 그렇다면 그것은 아이를 아직도 자신의 부속물 내지 자기 꿈을 이루어줄 대리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한다면 부모의 뜻대로 끌어가는 것은 멈추어야 한다. 아이는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어주는 존재가 결코 될 수 없다. 자아실현 실패의 아픔이 크다면 아이를 통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노력하여 극복하거나 성취해야 한다.
부모는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 아이에게 다양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지만 선택은 철저히 본인의 몫으로 두어야 한다. 대신 살아줄 것이 아닌데 어찌 아이에게 내가 원하는 길을 강요할 수 있을까. 자식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위험하게 느껴지고 같은 부모입장인데도 숨 막혀하는 나는 딸들을 의대는커녕 손꼽는 대학에 보내는 것도 힘들 수 있겠지만 상관없다. 아이가 원하는 삶을 존중하고 싶다. 자기 삶에 애착을 같고 지금 하고 있는 공부를 잘할 수 있게 돕고 싶다. 지금 충실해야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후회가 없으리라 생각하기에 공부하라고 하지만 아이가 다른 방향을 본다면 그 역시 존중해 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다만 쉽게 선택하지 않도록, 선택한 후에는 끝까지 책임질 수 있게 할 것이다.
욕심 없는 부모가 있을까.
욕심 많은 나로서는 그런 부모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이가 욕심을 내려놓게 만들기 전에 부모 스스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무던히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자식은 나의 아바타도, 자아실현의 도구도 아니다. 자식을 통해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난 그냥 나의 삶을 묵묵히 걸어가면 된다고 믿는다. 누구의 시선이나 인정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깨달음은 아이를 통해 늦게 그리고 아프게 찾아왔다. 그 덕분에 자유로워졌다. 나를 나로 바라보고 아이는 아이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 아이가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해도 괜찮다. (물론 좋은 대학을 가면 좋겠지만... ㅎㅎ) 아이가 단단한 내면의 힘으로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음을 믿고 응원할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부모의 역할은 거기까지이다. 그럼 아이도 나도 각각 다른 인격체로 각자의 삶에 충실할 수 있으리라.
**<성적을 부탁해 : 티처스>의 제작발표회 사진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