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쓸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사춘기를 걸쳐 질풍노도의 시기를 견디게 해 준 것은 "일기"였다. 무작정 휘갈겨 쓰다 보면 감정이 해소되었고 글을 쓰는 행위는 마치 혼자만의 깊은 동굴에 들어가는 것과 동일했다. 살기 위해 미친 듯이 썼던 시절이 있었다. 숨 쉬는 것만큼이나 글쓰기는 나에게 살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이었다.
교사로서 엄마로서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자 가르치는 아이들의 부모들과 육아의 어려움을 나누고 싶었고 나만의 팁을 공유하고 싶었다. 여러 육아서적에서 나온 좋은 방법을 발췌하여 나누는 것을 시작으로 교실의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필요한 것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매일 글로 올리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어섰다. 교사와 엄마 사이에 놓인 줄에 올라서서 함께 하고 싶었다. 교사라서 알 수 있는 부분들, 엄마라서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을 잘 버무려서 우리 아이들에게 멋진 밥상을 함께 차려내고 싶었다.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진심이 가득한 글로 육아동지가 되고 싶었다. 다행히도 진심을 알아주시는 분들이 많아 행복했다. 잘 쓰지 못해도 마음을 담은 글이 전달이 잘 되리라는 믿음이 생기기도 했다.
어느 날, 아이의 글쓰기 선생님에게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또 글을 올리면서 소소하게 독자들이 생기는 것 같아 기뻤다. 글을 올리는 것이 즐거웠다. 한두 번, 교육잡지와 도서관 잡지에 글을 기고할 수 있는 영광도 있었다. 글을 쓰는 힘이 되어주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글을 올리자는 약속을 꽤나 잘 지켜나갔는데 어느 순간, 무너졌다.
무너진 계기는 사실 별거 없다. 브런치를 통해 직업작가가 아님에도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을 참 많이 보게 되었고 현실의 벽을 느꼈다. 글마다 특성이 있지만 삶의 내음이 가득했고, 문장마다 생명력이 넘쳐났다. 내 글이 소박한 밥상 위에 매일 먹는 밑반찬 같은 존재라면 다른 사람의 글은 메인 요리 같았다. 그렇다. 한계를 느꼈고 순간 재미가 없어졌다. 투박하기 그지없는 데다가 뭔가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만 그득한 글, 자기중심적인 교육관이 가득한데 그게 또 유행 타지 않는 오래된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자기반성을 넘어선 비하까지... 재미가 없어진 것이야 이유가 수없이 많다. 어느 순간부터 늘지 않은 독자의 수, 좋아요의 하트 개수, 어느 곳에서도 연락이 없다는 것 등등... 어쩌면 나의 한계를 느끼게 한 것은 글솜씨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한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시작했으면서도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욕심이 글 쓰는 재미를 잡아먹었다.
뇌리를 스치는 서늘한 기운. 내가 언제부터 작가였다고? 글을 잘 써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과 아이들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변질된 목표에 한숨이 나왔다. 물론, 아직도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이 많다. 글 잘 쓰는 사람이 엄청 부럽다. 부럽다 못해 질투까지 난다. 그렇다고 시간을 엄청 투자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문장을 매끈하고 아름답게 뽑아낼 능력도 없다.
아이들에게 늘 하는 잔소리가 떠올랐다. 공부는 어쩌면 무식한 방법이 제일 효율적인지 모른다면서 무조건 많이 하고, 반복하고, 시간을 들이되 꾸준함을 이어가야 한다고, 샛길은 없다고 하던 그 말을 2024년에 나에게 돌려본다. 그냥 꾸준히 글쓰기를 이어가자라는 다짐과 함께 아이의 성장에서 필요한 부분을 서로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잃지 않기로 했다. 초심을 되새겨본다.
가끔은 글쓰기에 지칠 수도 있고 재미없을 수도 있지만 나를 위한 동굴이자 메아리를 통해 교육에 대한 생각을 전할 수 있는 공간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스쳐가는 바람에도 괜히 흔들려보는 얇고 보잘것없는 새싹의 마음이지만 줏대 있게 교육에 대해, 아이에 대해 글을 쓴다. 그러면서 한번 더 생각해 보고, 고칠 것은 고쳐가면서 고여서 썩는 물이 되지 않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부족하고 투박하기만 한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24년에도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응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