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하는 기사에 흔들리지 않는다.
뉴스 기사를 보고 아찔했다. 너무 무딘 엄마가 아니었는지, 단단한 내면을 강조하다가 아이가 놀림받는 것도 몰랐던 것은 아닌지 싶어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연달아 나오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에 뒤숭숭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물론 우리 딸들은 나보다 태평했다. 유행에 떨어질까 봐 길거리에서도 유심히 아이들이 입고 다니던 브랜드를 살피는 나의 걱정을 기우였던가. 남들이 뭘 입는지, 자기가 무슨 브랜드를 입었는지 전혀 모르는 첫째와 한동안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내셔날지오그래피는 일명 가오 잡는 애들이 입는 것이라 거부했던 둘째는 남들이 뭘 입던지 하는 자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를 외치는 나는 강해 보여도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엄마인가 보다.
패션에 하나도 관심 없는 첫째는 두꺼운 느낌이 싫고 혹은 잠잘 수 있는 푹신함이 싫다면서 얇고 긴 패딩 하나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2년을 보냈다. 덜덜 떨고 다니는 것이 안쓰러워 결국 설득하고 또 설득하여 팡팡한 오리털 패딩을 하나 사 입혔다. 혹시나 하고 유행하는 숏패딩 이야기를 꺼내보았는데 엉덩이가 시려서 싫다고 일언지하에 잘랐다. 브랜드도 상관없고 색깔만 흰색이면 된다는 아이의 요구를 나 역시 묵살한 채 검은색으로 털이 빵빵한 것을 사다 주었다. 워낙 잘 흘리고 잘 묻히는 녀석이라 검은색에 대한 수긍도 빨랐다.
둘째는 나름 눈썰미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혹시나 하고 물어보았다. 숏도 하나 입으면 좋지 하는 아이를 위해 여러 개의 패딩을 보던 중 혹한의 날씨가 이어졌다. 결국 구경만 하다 끝이 났고 작년에 입던 롱패딩을 고수하게 되었다.
옷투정 안 하는 딸들이 고맙기도 하면서 계속 나오는 기사제목들에 불안하고 화딱지가 난다. 어쩜 부모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실은 뉴스가 아닌가. 사실인데 사실이라 믿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런 기사가 부모를 흔들리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부모가 아이의 롱패딩을 물려 입는다는 기사를 처음 보았을 때는 어벙벙했다. 딸들보다 훨씬 큰(?) 나는 절대 딸들의 패딩을 물려 입지 못하는데 하면서 자괴감에 시달렸다. 부모들이 다들 날씬한가 보네 라는 어이없는 결론은 그렇지 못한 형편인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었다. 그런 해석을 깨는 것은 연달아 나오는 기사였다. 혹시 딸들이 우리 집 경제상황을 고려하거나 엄한 부모에게 먹히지 않을 이야기라 말도 못 꺼내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먼저 물었지만 남들이 뭘 입던지, 어떤 브랜드가 유행이던지 내가 좋은 옷을 입으면 된다는 단호한 답을 받았다. 학원 다니기 시작한 둘째는 일 년 365일 학교 생활복만 입고 다니는 언니에게 공감된다고 했다. 옷 고르는 것이 귀찮은 데다가 시간까지 까먹게 된다면서. 그러면서도 새 옷 사는 것을 좋아하는 둘째다. 물론 브랜드 안 따지고 자기 마음에 맞으면 좋다고 하는 아이라서 부모 입장에서는 고맙기만 하다.
생각보다 딸들은 단단했다. 민감한 나이지만 주관이 뚜렷하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자세가 나보다 훌륭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여러 뉴스 기사에 내 마음만 뒤숭숭한 것은 부모이기 때문인지 내면이 덜 단단해서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뚜렷한 중심을 가지고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느새 갈대처럼 흔들리는 것을 보면 이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기사를 탓하고 싶다. 여러 부모들의 애간장을 태우게 하고, 뭔가 더 하지 않았을 때 죄책감을 안겨주는 내용들을 보도하는 그들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 어쩌면 나의 흔들림에 대해 누군가에게 잘못을 돌리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웃어넘기거나 요즘 애들 말로 뭐래~ 하면서 하는 부분이었는데 잠시나마 불안해했던 모습을 감추고 싶었다.
미디어가 발달한 요즘, 부모에게 숙제가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중심을 잘 잡고 단단한 내면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풍파에 모두가 휩싸이고 흔들려도 부모는 중심을 지켜야 한다. 아니다. 어느 정도 흔들림을 감지하고 몸이 기우뚱할 수 있지만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자리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너무 힘들다, 부모가. 그러나 아이가 어렸을 때까지 만이다. 바른 가치관이 형성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단단한 내면을 가질 수 있게 옆에서 지지해 주면 오히려 나중에는 아이가 부모의 중심을 지켜준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지만 딸들은 나의 중심이 흔들려서 휩쓸리고자 하는 것을 막아주고 지켜준다. 많은 사회 속 현상과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엄마의 정신을 차리게 한다. 너무 곧아서 속물 같은 엄마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것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어쩌랴, 그렇게 키운 것이 나인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의 가치와 중심을 단단하게 서게 해주고 있음이 감사하다.
참, 롱패딩은 패션템이 아니라 생존템이라는 누군가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역시, 세상에는 깨인 사람이 많다. 유행을 선도하고 주도하려는 언론에 휩쓸리지 않는 깨인 사람들이 멋져 보인다.
**사진출처 : 아디다스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