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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Mar 20. 2024

상담, 성찰의 기회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그 속을 알 수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길"이란 과거에 길이를 재는 단위로 한 길은 일반적으로 사람 1명의 키 정도이며 열 길이면 사람 10명 키에 해당하는 길이이다. 즉, 이 속담은 아무리 깊은 물이라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있지만 사람의 깊이는 알아낼 수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 살면서 점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남들이 날 어찌 알 것이며, 사람은 저마다 여러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점점 느낀다. 함께 한 시간이 길어 여러 면모를 보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들어가 보지 않은 이상 다 알 수 없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한때, 이 속담에서 나오는 "길"을 어떤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공간으로 생각하여 열 가지의 길은 알아도 한 사람의 마음에 도달하는 길은 모른다는 뜻으로 오해한 적도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대충 때려 맞추는 버릇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부끄럽지만 내 마음대로 해석을 덧붙인다. 열 개의 다른 길은 직접 여러 번 걸어보면 많은 것이 보이고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한편, 사람의 마음에 닿는 길은 세상에 존재할까 하는 속담이 아닐까 하며.

자식이라고 다를까. 내 뱃속에서 나와, 내 손으로 키웠으며 수많은 시간을 공유했음에도 다 알 수 없음에 한숨이 난다. 그러면서도 나 역시 나 스스로를 다 알지 못하고 끊임없이 읽고 들여다보면서 조금씩 알아가는데 자식을 다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상담기간이 다가오면서 자식에 대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개인적으로 상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인지부터 의문이 들었다. 부모는 자식을 얼마나 아는가. 혼란스러웠다. 누구보다 오래 보고 함께 지낸 시간이 길지만 아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객관적인 입장으로 아이를 관찰해서 보는지, 자신이 어떤 부모인지 객관적인 시선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아이의 성장과정, 주관적인 생각도 중요하지만 부모가 아이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가정 분위기와 육아방법을 냉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성향과 습관, 도덕성 등 가치와 관련된 많은 것에는 기준이 없다 보니 부모의 말은 가끔 모호하게 다가온다. "엄함"이나 "단호함"에 기준이 없어서 적지 않은 부모가 자신을 단호하다고 하여 방향을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아이의 성장과정, 성향을 부모의 주관대로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그전에 부모도 다시 깊게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내 아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주관적인 시선 때문에 아이의 기질적인 부분이나 성향을 놓친 것은 없는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는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기른 대로 행하는 아이의 모습을 본연의 모습으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에게서, 부모인 자기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야 한다. 주변 아이들 속의 내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는지도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내가 아는 내 아이의 모습이 그 아이 전부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아는 아이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내 품에서 자식을 밀어내고,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면에서는 그 과정이 참 아프다. 그럼에도 자식에게 먼저 "내려놓음"을 당하기 전에 부모 스스로 "내려놓음"으로 자식의 마음속에 닿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사람 마음으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지만 진심을 가득 담은 말이 아이의 마음에 닿을 수 있고, 존중하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그 심정이 닿을 수 있다면 아이는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내 자식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루리 작가의 <긴긴밤>에 나오는 사육사들이 노든에 대해 아는 것인 전혀 없었듯이 어쩌면 부모도 다 안다고 생각한 자식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있을지 모른다.

그들은 노든이 얼마나 먹고 얼마만큼 잠을 자는지를 알았고, 너무 춥거나 덥지 않도록 하는 방법도 알았다. 사람들은 노든에 대해 뭐든지 다 아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 그들이 노든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긴긴밤> 중

상담을 하기 전에  아이에 대해 깊게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그러다 보면 아이에게 닿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나이를 먹을수록 부모 마음대로 커주지는 않는 자식에게 실망하지 않을 수 있으며, 아이를 이해하기보다 그대로를 인정하는 부모가 될 수 있다. 부모인 나를 성찰하고, 아이를 성찰하다 보면 더 깊게 그리고 진하게 마음을 주고받는 건강한 관계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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