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름달 Mar 27. 2024

총량의 법칙

두 팔 벌려 아이의 사춘기를 환영하는 마음을 갖는다.  

  미친 사람 총량의 법칙을 아는가. 어느 곳에 가든지 주변에 미치거나 이상한 사람은 정해진 비율로 존재한다. 오죽하면 주변에 미친 사람이 없으면 자신이 미친 사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라는 말도 있을까. 이렇듯 인생에 있어 총량의 법칙은 언제나 존재한다. 행운, 에너지, 사랑 등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것에 총량의 법칙이 있다는 것은 아쉽다. 언제나 샘솟듯이 나온다면 되려 무색해질까 싶다가도 언제 바닥나려나 하는 불안감도 있다. 그럼에도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했다. '총량의 법칙'이 무작정 나쁘지 않은 것은 반대의 경우에도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중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선호하는 것은 '지랄 총량의 법칙'이 아닐까. 사춘기 아이를 둔 부모에게 이만큼 반가운 것이 있을까. 참을 인(忍)을 마음에 새기도 또 새기면서 사춘기 아이를 견뎌낼 수 있는 것은 그 또한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어렸을 때 순하고 착한 큰 딸의 사춘기를 맞이하면서 '지랄 총량의 법칙'에 새삼 감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마음으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수십 번 외쳤을 때 아이의 사춘기는 수그러들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보이는 아이들의 양상도 너무나 달라서 어떤 행동을 할 것이라는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사춘기 아이는 기본적으로는 어른을 적대시하고,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상에 혼란스러워하며 분노하고 반항하는 마음을 갖는다. 혹은 또래와 자기를 끝없이 비교하며 자신감을 잃기도 하고 자의식이 야기한 불안감을 갖기도 한다. 옛말에 낙엽 떨어지는 것만 봐도 눈물을 뚝뚝 흘린다고 하는데 정말 눈에서 쉴 새 없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어느 때는 별 일 아닌 일에 까르륵 숨넘어가듯이 웃기도 한다. 소리를 지르는 아이도 있고, 부모와 대화를 차단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되려 부모에게 더 밀착되는 경우도 있다. 아예 조용하게 자기 안으로 숨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가지각색의 모습을 보이지만 어쨌든 사회와 어른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내적 갈등을 겪는 시기인 것은 확실하다. 문제는 사람마다 발달단계가 달라 사춘기가 찾아오는 정확한 시기를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에 있다.


  아이를 지나치게 통제하거나 반대로 지나친 존중과 사랑으로 키워 부모와 견충돌이나 갈등이  없이 자랄 사춘기가 늦게 찾아온다. 공부만 신경 써야 하는 고등학생 때 또는 성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자 계획해야 할 때 사춘기를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신체는 이미 성인이지만 정서적 감정적인 부분의 변화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삶에 대해, 자신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 뒤늦게 방황하거나 반항하기도 한다. 아이가 사춘기를 순하고 무난하게 보냈다고 믿은 부모는 뒤통수를 맞는 느낌일 것이다. 뒤늦게 찾아온 아이의 사춘기는 아이도 부모도 당황하게 한다.


  사춘기가 인간 삶에 있어서 반드시 오는 것이라신체가 급격히 성장할 함께 겪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시기에 부모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데 조금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 완벽한 독립을 하지 못했기에 고무줄처럼 밀어냈다가도 가까워질 있는 여지가 많다.  시기를 부모와 충분히 갈등하면서 조율할 수 있다면 마침내 서로를 존중하고 적당한 거리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사춘기의 아이와 잘 지내기 위해서는 결국 어느 순간부터 서로 독립할 준비를 하고 서서히 홀로 서서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사춘기가 아직 오지 않은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겁을 낸다.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아이와의 싸움이 너무 길어질까 겁내고 서로 멀어질까 두려워한다. 얼마나 많은 감정기복을 보일지 혹은 상처되는 말을 오갈지 걱정하고 불안해한다. 당연하다. 어쩌면 내 평생 지를 소리를 그때 다 지르고, 온갖 모진 말을 하기도 하면서 아이와 함께 오락가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총량의 법칙"이 있다. 저러다 말겠지 하면서 아이가 나에게서 도망가기 전에 내가 한걸음 뒤로 물러서야 한다. 서로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을지언정 절대 한 몸이 될 수 없음을 깨달으면서 그렇게 각자의 삶으로 회귀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주체적인 사람이 되는 아이를 응원하면서 나도 내 삶으로 온전히 방향을 틀어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가장 건강하게 서로에게서 독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는 아이의 사춘기를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너무 늦지 않게 오길 바라면서 말이다. (물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딸의 격렬한 사춘기 시절이 어느 정도 지나갔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상담, 성찰의 기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