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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Apr 17. 2024

함께 그리고 오래

기억의 힘이 세다는 것을 믿고 싶습니다. 

  어제는 말할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난 날입니다. 교실에서 '세월호 참사'를 아이들에게 알려주면서 눈물을 삼키고 또 삼켰습니다. 설명하기 위해 보여준 영상에서 단원고 학생들은 끝까지를 서로를 붙들고 웃고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가 묻더군요. 구조될 것을 믿었기에 웃을 수 있었던 거냐고. 다른 아이는 말합니다. 함께 있어서 힘을 내기 위해 웃은 것 같다고. 잘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차마 그들의 마음을 짐작하기조차 어렵기에 아이들에게 말해주는 것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주기가 다가오면서 저도 모르게 '벌써 10년이네.' 했다가 잠시 숨을 멈추었습니다. 어떻게 '벌써'라는 단어를 썼는지 무심하고 무감각한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났습니다. 희생자분들의 가족이었다면, 아이들의 교사였다면 그 10년의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텐데 말입니다. 그분들이 마주한 10년은 어땠을까요. 

어떤 사람은 '아직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야 하냐고 합니다. 그만했으면 한다고 합니다. 남일이라 생각해서일까요. 그러나 세월의 무게가 슬픔과 아픔으로 무거워지기만 합니다. 시간이 쌓일수록 해소되지 않는 질문들이 늘어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기억의 힘을 믿으라고, 기억해야 한다고. 기억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무엇일까 하면서 또다시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누구는 기억함으로 안전한 사회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누구는 유사한 재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라고도 합니다. 아직 진행형인 세월호를 기억함으로 진상 규명을 하게 하기 위함일까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줄 때도 사실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더 혼란스러웠습니다. 나는 무슨 목적으로 이야기를 해준 것일까 하며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아직도 답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우리가 '벌써' 혹은 '아직도'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그날의 아픔을 잊는다는 것은 안전에 무감해지는 것이고 유가족들에게 자리는 더 이상 내어주지 않는 것이라고. 유가족의 상처를 보듬어줄 능력이 없고 과연 누가 무엇이 그들을 회복하게 도울 수 있을까 고개를 저으면서 기억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그들과 함께 한다는 약속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은 흘러갈 테지만 아픔의 줄지 않을 것입니다. 슬픔이 흐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함께 기억해 주고 들어주고 또 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큰 고통과 좌절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뱉어내고 또 뱉어내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 장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마음으로 함께 함으로 외롭게 서있게 하지는 않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그게 얼마큼 힘이 되어주고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패배감과 좌절감에 젖어 그분들의 손을 놓지는 않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고 또 기억함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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